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60) 선비 정신과 닭의 품성
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60) 선비 정신과 닭의 품성
  • 유지희 기자
  • 승인 2015.05.28 11: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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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민제 칼럼니스트
선비와 닭은 통하는 바가 있다. 선비는 글을 많이 읽어야 한다. 그런데 극히 소수를 제외하고는 읽을 책이 부족했다. 선비들은 책을 필사했다. 한 권의 책 필사는 하루에도 끝나지만 며칠 동안 수고를 해야 한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인 조헌은 젊은 날 여행지에서 한 선비를 만났다. 선비의 집 등불 아래서 『격몽요결』을 베꼈다. 그의 베끼기는 하루 밤을 지내고 새벽의 닭이 울 때 비로소 다 이루어졌다. 선비들은 좋은 책이 있으면 닭이 우는 새벽까지 멈추지 않고 필사한 것이다.

어려서부터 독서에 심취한 조헌도 그 같은 선비였다. 특히 그는 스승인 율곡 이이가 쓴 『격몽요결』 전도사였다. 공부하는 사람을 만나면 『격몽요결』을 읽으라고 권유했다. 그는 임금에게 자신의 스승으로 율곡 이이, 우계 성혼, 토함 이지함을 들었다. 『격몽요결』은 율곡이 해주의 석담에 은거할  때 쓴 책이다. 조선 후기의 학자인 서찬규는 문집인 『임재집』에 닭이 울 때까지 책을 베껴 쓴 조헌을 소개하며 자신의 책 읽는 과정도 상세히 기록했다.

조선의 독서왕인 정조도 새벽에 닭이 울 때까지 책을 보는 날이 많았다. 『일득록』에는 새벽까지 책을 본 임금의 정황이 설명돼 있다. '눈 내리는 밤에 글을 읽는다. 또는 정신이 맑은 새벽에 책을 본다. 조금이라도 나태한 생각이 들면 달빛 아래서 입김을 불며 언 손을 녹이는 한사(寒士)와 궁유(窮儒)를 생각한다. 정신이 번쩍 뜨이지 않은 적이 없다.'

선비도, 임금도 독서를 열심히 하면 새벽닭과의 만남을 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세상사를 닭과 비유해 경계하는 글도 적잖다.

 
조헌이 스승으로 모신 토정 이지함은 포천 현감 시절에 가난에 시달리는 백성 구제를 위한 상소를 올렸다. 상소의 한 표현이 '해동청 사지사신 즉증노계지불약의(海東靑 使之司晨 則曾老鷄之不若矣) 한혈구 사지포서 즉증노묘지불약의(汗血駒 使之捕鼠 則曾老猫之不若矣)'이다. '해동청에게 새벽을 알리는 일을 맡긴다면 늙은 닭만도 못하고, 한혈구에게 쥐 잡는 일이나 시킨다면 늙은 고양이만도 못하다'는 것이다. 적재적소의 인재등용을 강조한 말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권호문은 『송암집』에서 '양계불육이 진군자자퇴소인(養鷄不育狸 進君子者退小人)'이라고 했다. '닭을 키울 때는 살쾡이를 기르지 말고, 군자의 길을 열어주려면 소인배를 먼저 물리치라'는 뜻이다. 살쾡이와 함께 있는 닭은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다. 청렴한 정치를 하려는 사람도 옆에서 방해하고 힘들게 하면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다.

당나라 시인 이상은은 저속한 행위의 꼴불견으로 주위의 흥치를 깨는 것을 '살풍경(殺風景)'이라고 했다. 그가 든 살풍경은 꽃을 보며 도를 추구하는 것, 꽃구경 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 이끼에 자리를 펴는 것, 수양버들 가지를 잘라내는 것, 꽃 아래서 잠방이를 말리는 것, 봄놀이 때 음식을 많이 갖고 가는 것, 석순에다 말을 매는 것, 달빛 아래 횃불을 잡는 것, 기녀와의 연회에서 세속 일을 말하는 것, 과수원에 채소를 심는 것, 산을 등져 누각을 짓는 것, 꽃 시렁 아래에 닭과 오리를 기르는 것이다.

일에는, 만남에는 어울리는 게 있다. 산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은 어렵다. 물고기는 강이나 바다에서 찾아야 한다. 옛사람의 닭을 활용한 문구는 '적절한 곳, 적절한 행동이 바른 삶'이라는 큰 틀에서의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다.  


■ 글쓴이 백민제는?
맛 칼럼니스트다.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10년의 직장생활을 한 뒤 10여 년 동안 음식 맛을 연구했다. 특히 건강과 맛을 고려한 닭고기 미식 탐험을 했다. 앞으로 10여년은 닭 칼럼니스트로 살 생각이다. 그의 대표적 아이디어는 무항생제 닭을 참나무 숯으로 굽는 '수뿌레 닭갈비'다. www.supu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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