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53) 천지창조를 한 신화 속의 세 마리 닭
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53) 천지창조를 한 신화 속의 세 마리 닭
  • 한지은 기자
  • 승인 2015.05.15 1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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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민제 칼럼니스트
닭은 천지개벽 신화에도 나타난다. 날지 않고 지상에서 사는 닭은 새벽을 알리는 존재다. 어둠을 물리치고 밝음을 불러오는 태양의 새이다. 닭의 신성성을 믿은 고대인들은 천지창조 신화에서 닭을 등장시켰다.

제주도의 무속신화인 '천지왕 본풀이'도 한 예다. '풀이'는 무속에서 해원, 즉 답답함을 풀어내는 의미가 있다. 이는 곧 맺힘과 풀림의 의례나 주술적 성격을 뜻한다. 많은 신화에서는 주술적 능력이 일반적으로 나타난다. '천지왕 본풀이'는 천지창조의 장엄한 스토리에 풀림의 주술적 내용이 더해진 신당(神堂) 신화다.

이 같은 신화 내용은 제주도 곳곳에서 채록된다. 말하는 이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줄거리는 같다. 서귀포의 호근리에서 채록된 이야기에는 날짜가 3월 13일로 나오는 등 약간씩 다르다.

"신당인 에비국하로산 또는 영산인 한라산 설명옥에서 을축(乙丑) 삼월(三月) 열사흘 날 자시(子時)에 솟아났다. 그때는 밤과 낮이 구분되지 않았다. 천황닭(天皇鷄), 지황닭(地皇鷄)이 우니 밤과 낮이 갈라졌다."
 
제주도 창세의 혼란을 설명한 신화에는 세 마리의 닭이 등장한다. 현대까지 구전된 제주의 살아있는 신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태초에는 하늘과 땅이 분리되지 않고 맞붙어 있었다. 세상은 어둠만이 있었다. 갑자년 갑자월 갑자일 갑자시에 갑자기 하늘의 머리가 자방으로 열렸다. 을축년 을축월 을축일 을축시에 갑자기 땅의 머리가 축방으로 열렸다. 이 때 하늘과 땅 사이에 금이 생겼다. 금은 점점 벌어졌다. 산이 솟고 물이 흐르면서 하늘과 땅의 경계가 더욱 분명해졌다.

하늘에서 청이슬이 내리고 땅에서 흑이슬이 솟았다. 둘이 만나자 음양이 통해 만물이 생성됐다. 천황닭이 목을 들고, 지황닭이 날개를 치고, 인황닭이 꼬리를 쳐 크게 우니 갑을동방에서 동이 트기 시작했다.

옥황상제 천지왕이 해와 달을 두 개씩 보내왔다. 천지가 개벽했다. 그러나 질서가 없어 극히 혼란스러웠다. 천지왕이 지상에 내려와 총명부인을 배필로 맞으려고 했다. 가난한 총명부인은 남편감인 천지왕을 대접하기 위해 부자인 수명장자에게서 쌀을 꾸었다. 수명장자는 쌀에 모래를 섞었다. 모래밥을 씹은 천지왕은 수명장자의 집을 불태웠다.

 
천지왕은 하늘로 올라갔고 총명부인은 두 아들 대별왕과 소별왕, 두 딸 대월왕과 소월왕을 낳았다. 총명부인은 장성한 두 아들에게 박씨 세 개를 심게 했다. 박은 하늘까지 뻗었고, 두 아들은 하늘로 가 아버지 천지왕을 만났다. 천지왕은 형인 대별왕에게 이승을, 동생인 소별왕에게 저승을 다스리게 했다. 그러나 동생의 욕심으로 소별왕이 이승을, 대별왕이 저승을 다스리게 됐다.

소별왕이 이승에 와 보니 극히 혼란한 상황이었다. 해와 달이 두 개이고, 풀이나 나무나 짐승도 말을 했다. 인간 세상에는 도둑과 불화와 간음이 성행하고 있었다. 사람을 찾으면 귀신이 대답하고, 귀신을 찾으면 사람이 뒤돌아봤다.

소별왕은 대별왕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저승에서 온 대별왕은 활과 해와 달을 하나씩 쏘아 떨어드렸다. 송피가루 닷 말 닷 되를 뿌려 짐승과 초목이 말을 못하게 하였다. 또한 귀신과 인간을 구별시켰다.

대별왕은 일을 여기에서 멈췄다. 더 이상 수고하지 않고 저승으로 갔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지금까지 역적과 도둑과 간음 등 불협화음이 지속되고 있다. 반면 저승은 공정한 세계가 되었다.
 
신화의 세 마리 닭에는 천지인(天地人) 사상이 배여 있다. 천황닭은 하늘, 지황닭은 땅, 인황닭은 사람을 각각 상징하기도 한다. 닭은 신격화 되어 천지창조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이는 빛을 부르는 닭, 새벽을 알리는 닭의 영험함을 믿고 싶었던 고대인의 생각이기도 했다. 어둠은 혼돈이고 빛은 질서다. 우주질서, 천지질서는 빛이 있을 때 바로 잡힌다. 새벽을 알리는 닭은 고대인에게 상서로운 가금류가 아닐 수 없다.

■글쓴이 백민제는?
맛 칼럼니스트다.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10년의 직장생활을 한 뒤 10여 년 동안 음식 맛을 연구했다. 특히 건강과 맛을 고려한 닭고기 미식 탐험을 했다. 앞으로 10여년은 닭 칼럼니스트로 살 생각이다. 그의 대표적 아이디어는 무항생제 닭을 참나무 숯으로 굽는 '수뿌레 닭갈비'다. www.supu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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