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52) 황제와 거지의 신분을 평등화시킨 닭 요리
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52) 황제와 거지의 신분을 평등화시킨 닭 요리
  • 이보미 기자
  • 승인 2015.05.14 1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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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민제 칼럼니스트
청나라에서 주목할만한 군주가 건륭제(1711~1799년)다. 그는 10여 차례 정복사업으로 오늘날 중국 영역의 그림을 그렸다. 서역의 위구르를 정복하고, 티베트, 버마, 베트남, 네팔에도 진출했다. 강력한 권위를 지닌 그는 조선의 숙종과 비교할 수 있다.

숙종(1661~1720년)은 조선 후기에 약해진 왕권을 강화한 임금이다. 숙종은 환국 정치로 신하들을 통제했다. 그러나 숙종은 강화된 왕권을 내치용으로만 활용했다. 반면 건륭제는 해외 원정으로 영토를 넓혔다.

숙종과 건륭제의 또 하나 공통점은 '미행' 이야기다. 임금이 대궐을 몰래 나와 평복으로 갈아입고 민심을 살피는 게 미행이다. 숙종과 건륭제에게는 미행에 관한 야담이 많이 전한다.

중국인이 귀한 음식으로 생각하는 닭요리 '푸구이지(富貴鷄)'가 있다. 고급 요리인 푸구이지는 이름과는 달리 '거지 닭요리'로 통한다. 닭의 내장을 뺀 뒤 버섯 등의 야채를 넣는다. 다음 연잎에 싸 황토를 발라 구워내는 푸구이지는 기름기 적은 담백한 맛과 독특한 요리법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푸구이지는 건륭제의 미행과 관련이 있다. 

청나라 때 중국 강남의 소흥 근처에 걸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었다. 배고픈 이들은 인근 마을에서 닭서리를 하곤 했다. 어느 날 배고픈 거지가 닭 한 마리를 훔쳐 달아났다. 급한 마음에 제대로 된 조리도 못한 채 구워서만 먹으려고 했다. 그 때 멀리서 고관의 행차가 다가오고 있었다.

불안한 거지는 털을 뽑은 닭을 재빨리 황토를 묻혀 불 속에 던졌다. 황토를 칠해 놓으면 닭이 타지 않기 때문이다. 또 사람들이 닭임을 알지도 못한다. 거지는 행차가 지나간 후 불 구덩이를 뒤졌다. 돌처럼 딱딱해진 황토 덩어리를 깨뜨렸다. 닭의 맛이 일품이었다. 새로운 맛에 빠진 거지는 계속 훔친 닭을 황토를 칠해 구워먹었다.

 
미행을 즐기던 건륭제가 하루는 소흥에 왔다. 몇 명의 경호원과 암행하던 건륭제는 밤이 깊어 강가에서 노숙을 했다. 경호원들은 건륭제가 모기와 들짐승을 피할 수 있도록 큰 규모의 모깃불을 피웠다. 오랜 시간이 지나자 닭 익는 냄새가 났다. 고소한 냄새는 시간이 갈수록 진동했다. 참을 수 없는 유혹에 건륭제 일행은 냄새의 진원지를 찾았다.

냄새는 모깃불 아래에서 나고 있었다. 경호원들은 모깃불 밑을 팠다. 황토가 칠해진 닭이 모깃불에 익어가고 있었다. 경호원은 황토를 깼다. 그동안 대궐에서도 맛보지 못한 천하일품의 별미를 만끽했다. 이때부터 중국에서는 통닭에 황토를 발라 구운 요리가 유행했다.

요리도 귀한 황제가 먹었기에 '푸구이지(富貴鷄)'로 불렸다. 요리를 먹으면서 부귀해지기를 소망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이와 반대로 거지가 개발했기에 걸인의 닭을 뜻하는 '쟈오화지(叫花鷄)'라고도 불렀다.

오랜 기간 이어져온 맛은 중국의 개방화와 함께 더욱 빛을 보고 있다. '자오화지(叫化鷄)' 보다는 '푸구이지(富貴鷄)'로 일반화 됐다. 중국의 경제성장 덕분에 예전과 차이 나는 표현을 하게 된다. 푸구이지가 음식의 신분차별을 없앤 셈이다. 황제도, 거지도 먹는 음식이 된 것이다.

사회의 문제를 단순화시키면 양극화다. 잘 사는 사람은 더 잘 살고, 못 사는 사람은 더 어려워지면 사회가 불안해진다. 사람들은 신분이나 경제력에서 격차가 커지면 의욕을 잃게 된다. 그래서 어느 정부를 막론하고 중산층을 두텁게 하려는 정책을 편다. 이런 점에서 푸구이지는 새롭게 볼만하다. 거지도, 황제도 먹는 음식이 됐기 때문이다. 푸구이지는 빈곤층을 없애고 상류층을 두텁게 하는 의미가 있는 요리다. 닭에서 읽는 사회학이다.


■ 글쓴이 백민제는?
맛 칼럼니스트다.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10년의 직장생활을 한 뒤 10여 년 동안 음식 맛을 연구했다. 특히 건강과 맛을 고려한 닭고기 미식 탐험을 했다. 앞으로 10여년은 닭 칼럼니스트로 살 생각이다. 그의 대표적 아이디어는 무항생제 닭을 참나무 숯으로 굽는 '수뿌레 닭갈비'다. www.supu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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