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50) 목계지덕 리더십
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50) 목계지덕 리더십
  • 유지희 기자
  • 승인 2015.05.06 1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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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민제 칼럼니스트
리더의 조건 중 하나는 경청이다. 잘 들은 뒤 냉정히 판단하고, 과감한 추진력을 보여야 한다. 세종이 성군이 될 수 있었던 밑바탕은 경청이다. 임금은 취임 사흘 만에 인사권에 대해 파격적인 이야기를 한다. "내가 인물을 잘 모른다. 경들과 상의해서 벼슬을 내리겠다." 이는 대신들의 의견을 잘 듣겠다는 의지다.

잘 들어야 능력 있는 사람을 발탁해 나라 발전을 촉진시킬 수 있다. 주나라의 유학자인 순자는 「인재론」에서 '덕이 있는 사람을 뽑고, 아첨하는 자는 버리라'고 했다. 군주가 모든 사람을 알 수는 없다. 그렇기에 열린 귀를 강조한 것이다.

고대 중국은 닭싸움이 성행했다. 황제부터 서민까지 몰입했다. 황제는 닭싸움 전문가를 양성했다. 황제와 제후들이 관심을 가진 닭싸움으로 리더의 조건을 설명한 글도 있다. '최고의 싸움닭은 자랑하지 않는다'는 '목계지덕(木鷄之德)'이다. 기원전 8세기 무렵의 일인 『장자(莊子)』의 「달생」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싸움닭 명조련사 기성자가 있었다. 그는 주나라의 선왕을 위해 싸움닭을 키웠다. 선왕이 열흘 뒤 싸움을 시킬 수 있는가를 물었다. 그는 "아직 안됩니다. 닭이 허세를 부리며 자신의 힘만 믿는 까닭입니다"라고 보고했다. 열흘이 지났다. 선왕은 "이제는 싸움닭을 출전시켜도 되는가"라고 물었다. 기성자는 이번에도 "안 된다"고 했다. "여전히 상대를 노려보는 눈에 기운이 들어간 탓"이라고 했다. 열흘이 지나자 왕은 또 한 번 닭의 상태를 물었다. 기성자가 보고했다. "이제는 싸움닭으로서 모습이 거의 갖춰졌습니다. 다른 닭이 울어도 의젓할 뿐입니다. 멀리서 보면 나무로 깎은 닭처럼 보입니다. 다른 닭들이 감히 덤비지 못하고, 보기만 해도 달아날 것입니다."

리더는 위엄으로 적을 제압한다. 싸움닭의 완성은 움직임이 없는, 상대 닭이 아무리 소리 지르고 덤벼도 페이스를 잃지 않는 냉정함이다. 이것이 리더의 모습이다. 싸움닭은 목계(木鷄)처럼 정중동이어야 한다. 인간사회의 리더도 중심을 유지하면서 차분하게 듣는 게 힘이다. 이 같은 위엄에 주위 사람이 따르고 존경하게 된다. 힘만 가지고, 권력만 가지고 복종을 강요하는 사람은 진정한 리더가 아니다. 이는 역학구도가 바뀌면 금세 무너지는 일시적인 관계에 불과하다.

조선시대에 임금이나 고위 관료에게는 그 업적에 따라 사후 시호를 내린다. 초창기에는 왕과 왕비, 종친, 정2품 이상의 문무관과 공신에게 내렸다. 그러나 후대에는 대상이 확대된 시호 제도에서 쓸 수 있는 글자는 모두 301자이다. 이중에 무공을 자랑한 왕이나 위대한 장군에게 는 무(武)자가 많이 부여됐다.

 
이순신 장군에게 내린 충무공(忠武公), 세종의 시호인 영문예무인성명효(英文睿武仁聖明孝) 등이다. 시호에서의 무(武)는 힘을 상징한다. 무력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전제조건이 있다. 완력으로 굴복시키는 게 아니라 덕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이미지가 내포돼 있다. 단순 무력이 아닌 덕을 갖춘 힘이다. 이것이 진정한 리더의 모습이다.

기성자가 말한 나무조각 같은 닭은 평정심이 가득한 모습이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자기절제를 한 닭을 보고 경쟁 닭들은 기선을 제압당한다. 기가 충만한 모습에 감히 싸울 엄두를 내지 못한다. 비범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상대와 눈높이를 같이하며 모든 이야기를 들으려는 리더에 대해 허튼 일을 할 사람은 많지 않다. 노자는 이를 화광동진(和光同塵)으로 표현했고, 손자의 병법에서는 부동여산(不動如山)으로 적었다.

겸손함의 미덕이고, 태산처럼 움직이지 않는 여유의 행보다. 노자는 '부드러움과 유연함이 강하고 센 것을 이긴다'고 했다. 『삼국지』에서는 죽은 제갈량이 산 사마중달을 혼내는 게 동양에서 생각한 리더다. 좋은 성품, 경청, 바른 판단력, 강한 추진력으로 인(仁)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여기에 하나 더 필요하다. 목계지덕(木鷄之德)이다. 최고의 싸움닭은 뽐내지 않는 법이다.

강하면 부러지기 쉽고, 칼을 많이 휘두르면 적이 많아진다. 한 번 이긴다고 영원한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물러설 수도 없는 게 인간사회다. 국제정세는 더욱 그렇다. 요즘 미국과 일본의 틈새에서 한국 외교가 고전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외교관, 리더의 목계지덕의 실력과 리더십이 필요하다.


■ 글쓴이 백민제는?
맛 칼럼니스트다.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10년의 직장생활을 한 뒤 10여 년 동안 음식 맛을 연구했다. 특히 건강과 맛을 고려한 닭고기 미식 탐험을 했다. 앞으로 10여년은 닭 칼럼니스트로 살 생각이다. 그의 대표적 아이디어는 무항생제 닭을 참나무 숯으로 굽는 '수뿌레 닭갈비'다. www.supu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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