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49) '닭싸움 황제'와 불법행위
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49) '닭싸움 황제'와 불법행위
  • 유지희 기자
  • 승인 2015.05.05 2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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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민제 칼럼니스트
닭싸움은 민속으로 전승돼 왔다. 경상남도 지역에서 왕성하게 행해졌다. 그렇다면 왕실에서는 닭싸움을 했을까. 조선 왕실에서는 성행하지 않았다. 성종 17년(1486년) 3월 22일 실록에서 읽을 수 있다. 성종이 즉위한 후 매를 키우는 응방을 없앴다. 그러나 다시 매사냥에 관심을 보여 송골매를 기르기 시작했다. 이에 신종호가 반대하며 아뢴다.

"당나라 덕종이 초년에는 길든 코끼리를 놓아 보내고, 닭싸움을 폐하고 정치에 뜻을 기울였습니다. 그 결과 산동(山東)의 교만하고 거센 병졸이 모두 순종하였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 돼 사냥을 일삼았고, 건중(建中)의 난(亂)이 일어났습니다. 전하의 성명(聖明)으로 어찌 이렇게야 되겠습니까? 그러나 그 조짐을 경계하여야 합니다."

위 기사에서 볼 때 왕실에서도 닭싸움을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성행하지 않았음을 유추할 수 있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임금과 닭싸움에 연관된 글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는 유희를 즐기지 않는 유교를 국시로 정한 나라의 정책과도 관련이 있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꾸준히 전승되었다. 고려시대 이규보가 쓴 『동국이상국집』, 이색의 『목은집』에 닭싸움 내용이 있다. 조선시대의 세시풍속을 다룬 『동국세시기』에는 제주에서 추석에 닭붙잡기놀이(捕鷄之戱)를 한다고 기록됐다. 『춘향전』에서도 닭싸움 시키는 소년이 등장한다.

우리나라 왕실에서는 인기를 얻지 못한 닭싸움을 중국 임금들은 크게 즐겼다. 당나라의 현종, 목종, 문종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현종은 양귀비와의 사랑이야기로 잘 알려졌다. 그는 초반에는 경제부흥과 국방력 강화로 백성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말년에는 도교와 35세 연하의 양귀비에 빠져 무능한 군주로 전락했다. 서도와 음악 등 예능적 능력이 탁월한 그는 닭싸움에도 매료됐다. 그의 시대가 중국에서 닭싸움이 가장 성행했고, 규모도 컸다. 백성들은 그를 '닭싸움 황제(鬪鷄皇帝)'로 불렀다.

문화나 유행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황제가 투계에 빠지자 대신들이 즐겼고, 온 나라의 백성이 너도 나도 닭싸움에 관심을 가졌다. 투계가 단순 놀이에서 직업으로 발전했다. 닭을 살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은 나무로 닭을 만들어 놀았다. 물론 현종의 닭싸움 관심에 대해 다른 해석도 있다. 혼란한 세상에서 닭싸움은 전쟁 상황을 암시하는 표현으로 본다. 닭은 유(酉)이고, 현종이 공교롭게 을유년(乙酉年)에 태어났다. 따라서 닭싸움은 전쟁이고, 곧 전쟁의 화근이 자라고 있음을 암시한다는 해석이다. 이 풀이를 해도 현종과 닭싸움은 분리할 수는 없다.

 
중국에서의 닭싸움은 불법과 연계되곤 한다. 춘추시대에 이미 싸움에서 이기려고 불법을 자행했다. 닭 날개에 겨자가루를 묻히고, 쇠로 만든 가짜 며느리발톱을 부착했다. 『춘추좌전(春秋左傳)』의 소공 25년(昭公 25年) 기록이다.

계평자와 후소백이 닭싸움을 시켰다. 계씨가 자기 닭에 개자(芥子)를 발랐다. 후씨는 자기 달의 발톱에 금 골무를 달았다. 계평자는 싸움 때 겨자 가루가 상대 닭의 눈에 들어가게 하려는 의도였다. 닭은 시각이 아주 발달했다. 발달한 눈을 겨자를 넣어 멀게 하려는 것이었다. 후소백도 금쇠붙이를 발가락에 붙여 상대 닭에게 치명상을 입히려고 했다. 둘 다 불법을 동원해 닭싸움에 임한 것이다.

결국 닭싸움에서 겨자를 사용한 계평자가 이겼다. 화가 난 후소백은 계평자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노나라 임금인 소공은 후소백을 지원했고, 계평자는 다른 제후들과 연합했다. 내란에서 계평자가 이기고, 노나라 임금은 제나라로 피신했다. 이처럼 혼란시대가 되자 노나라에 머물던 공자가 제나라로 터전을 옮긴다. 계평자와 후소백의 일화는 불법행위에 대한 경고다.

오락은 사행성이 있다. 취미활동이 승부가 되면 치열해지고, 돈이 걸리면 도박성이 된다. 닭싸움도 판돈이 커지면 도박 위험이 있다. 이 경우 계평자와 후소백과 같은 불법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용맹한 닭의 습성을 본받되, 도박의 개연성을 멀리하는 게 바람직하다.

■ 글쓴이 백민제는?
맛 칼럼니스트다.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10년의 직장생활을 한 뒤 10여 년 동안 음식 맛을 연구했다. 특히 건강과 맛을 고려한 닭고기 미식 탐험을 했다. 앞으로 10여년은 닭 칼럼니스트로 살 생각이다. 그의 대표적 아이디어는 무항생제 닭을 참나무 숯으로 굽는 '수뿌레 닭갈비'다. www.supu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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