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4년(연산군 10년)에 갑자사화가 일어난다.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의 복위문제와 얽혀 일어난 사화다. 훈구사림파가 중심이 된 부중 세력이 대거 숙청된 사건이다. 사형이나 부관참시를 당한 사람이 122명이고, 전체 탄압 받">
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47) 병아리 백숙인가, 닭 사육인가
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47) 병아리 백숙인가, 닭 사육인가
  • 이보미 기자
  • 승인 2015.05.03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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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민제 칼럼니스트
의금부가 박은의 종을 국문했다. 박은과 친하게 사귄 사람을 물으니 이행, 이유녕, 이적, 이영원, 홍원충, 정희량이라고 하였다. 임금이 전교했다. "모두 장 1백으로 결단하여 배소를 분정하라. 이미 분정 받은 자는 잡아와서 장 2백으로 결단하여 배소로 도로 보내라." <『연산군일기』 10년 6월 19일>

1504년(연산군 10년)에 갑자사화가 일어난다.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의 복위문제와 얽혀 일어난 사화다. 훈구사림파가 중심이 된 부중 세력이 대거 숙청된 사건이다. 사형이나 부관참시를 당한 사람이 122명이고, 전체 탄압 받은 피화인은 239명에 이르는 비극적 사건이었다. 

홍문관응교 이행은 갑자년 피바람이 일기 시작한 4월에 폐비 윤씨의 복위를 반대하다가 충주로 유배된 상태였다. 이행은 장 2백을 맞고 다시 배소로 갔다가 2년 뒤에는 거제도로 위리안치 된다. 훗날 좌의정에 오른 뒤 다시 귀양을 가 죽음을 맞은 그는 『용재집』을 남겼다.

그는 충주 귀양시절에 '닭장'이라는 시를 지었다. 유배는 사람마다 처지가 달랐다. 조선시대 많은 정치인에게 유배는 거주이전의 자유 제한이 많았다. 특히 정계 실력자는 귀양지에 가는 도중이나 유배지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언제 복귀할지 모르기에 관리나 선비들이 꾸준히 신경을 쓴다. 반면 정계 복귀가 불투명한 사람은 찾는 이도 없고, 희망도 없어 더 고달픈 나날을 산다.

이행은 서슬퍼런 비상정국에서 반대편에 선 사람이다. 여유로운 귀양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 왕에게 미움을 받은 사람이다. 그 모습은 궁색함으로 나타난다. 아침저녁 끼니가 궁색하고, 국도 없이 거친 밥을 먹었다. 이 무렵 그의 형인 이울종이 중병아리 세 마리를 보내줬다.

이를 본 부엌의 아낙이 칼을 치켜들며 잡아먹자고 한다. 중앙의 관료가 귀양을 가면 고을 수령은 대개 아전이나 관노의 허름한 집을 숙소로 정한다. 이행도 이와 비슷하게 주거지를 제한 받은 듯하다. 부엌의 아낙은 관노의 가족일 듯 싶다. 이에 이행은 죽이려는 아낙을 "잔인하다"고 한마디 한다. 측은한 마음에 병아리들을 뜰아래 풀어주었다. 병아리는 삐악거리며 애처롭게 울었다.

이행이 병아리를 풀어준 것은 너무 어린 탓도 있는 듯하다. 이행은 두 마리는 고작 주먹만 해 암수 구별조차 안 된다고 했다. 한 마리는 중닭이 되어 붉은 벼슬이 솟은 상태다. 그러나 불쌍하게도 왼쪽 날개가 부러져 있었다. 약한 중닭은 사람을 보면 화들짝 놀랐다.

이행은 백숙이 될 처지였던 병아리들을 키우기로 한다. 마당에 풀어서 키우면 사료를 대지 않아도 되는 경제성도 따진다. "너희를 풀어주는 게 어렵지 않다. 모이를 찾으며 벌레까지 쪼아 먹으면 나는 모이 비용을 안 대어도 된다. 너희 또한 건강하게 잘 자랄 테니까."

그러나 천적인 들짐승을 경계한다. 동쪽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를 의식한다. 우는 소리도 사나울 정도로 난폭한데, 병아리는 발톱도 약해 고양이에 맞설 수 없다. 아예 상대가 안 되는 병아리를 위해 닭장을 짓는다. 몇 자 남짓 되는 땅에다 작은 나무 울타리로 닭장을 설치한 것이다. 그리고 '너희를 거두어 날로 잘 보호하고, 나락 모이 주어 잘 기르겠다'고 시를 쓴다.

 
이행은 병아리 집을 지으면서 귀양의 시름을 잠시 달랬다. 그러나 시의 말미에는 대궐과 한양의 동료, 가족으로 귀결된다. '내가 성급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풍우 칠 때 먼저 울기를 기다리노라(我非太早計 風雨待先鳴)'는 표현이다.

장자의 제물론(齊物論)에는 '그대는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는구나. 달걀을 보고 밤에 시각을 알려주길 바라다니'라는 구절이 있다. 성급하게 결과 얻기를 바라는 사람을 경계한 것이다. 이행은 자신은 성급한 마음이 아님을 이야기한다. 병아리가 금세 큰 닭이 될 것을 바라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친구나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함께 할 때 먼저 울기를 희망한다는 것이다.

풍우(風雨)는 풍우대상(風雨對牀)의 준말이다. 친한 벗이나 형제와 다정히 보내는 시간을 뜻한다. 백거이, 위응물 등 당나라 시인들이 우정이나 우애의 표현으로 종종 사용했다. 우애가 돈독한 송나라의 소동파와 소철 형제도 각자 부임지로 가며 풍우(風雨)로 아쉬움을 표현했다. 풍우대상은 시간이 흐르면서 오랜 이별 뒤의 다시 만나는 기쁨을 의미하는 말로 정착했다.

이행은 풍우를 쓴 것은 두 가지로 풀이할 수 있다. 하나는 비바람 부는 날, 사무치는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정을 잊게 닭이 빨리 울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또 하나는 빨리 시간이 흐르고, 나라가 안정돼 한양으로 되돌아가 가족과 친구를 만나기를 희망하는 마음이다.

이행의 시는 차분하다. 그 무렵 선비들의 시가 다소 화려한 경향이 없지 않았으나 그는 들뜨지 않은 참신한 표현을 했다. 격조가 높은 시를 쓴 그는 박은과 함께 해동의 강서파(江西派)로 불린다.

■ 글쓴이 백민제는?
맛 칼럼니스트다.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10년의 직장생활을 한 뒤 10여 년 동안 음식 맛을 연구했다. 특히 건강과 맛을 고려한 닭고기 미식 탐험을 했다. 앞으로 10여년은 닭 칼럼니스트로 살 생각이다. 그의 대표적 아이디어는 무항생제 닭을 참나무 숯으로 굽는 '수뿌레 닭갈비'다. www.supu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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