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46) 병아리의 경쟁과 먹을거리
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46) 병아리의 경쟁과 먹을거리
  • 이보미 기자
  • 승인 2015.05.02 2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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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민제 칼럼니스트
곳간에서 인심 난다. 인격이 아무리 훌륭해도 굶으면 베풀 수 없다. 시민이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면 나라가 안정된다. 예부터 위정자는 백성을 잘 먹이는 것을 정치의 근본으로 생각했다.

세종은 백성이 먹거리를 하늘로 여겼다. 세종 4년, 나라에 큰 흉년이 들었다. 왕은 단기적으로 구휼미를 내 백성의 목숨을 건지고 중장기적으로는 곡식 품종개량, 의창제도를 손보고 토지제도의 불합리한 점을 개선했다. 세종이 심혈을 기울인 과학기술, 약재 보급, 한글창제, 세제 개편 등은 생산성을 높이고 그 혜택이 백성에게 고루 주기 위한 방법들이었다. 백성이 잘 먹으려면 살림이 넉넉해야 한다. 생산성이 높아야 인정을 베풀어 문 앞에 사람을 모이게 할 수 있다.

성호 이익은 먹을 것과 경쟁의 관계를 살폈다. 자원은 유한한 데 사람이 많으면 경쟁이 일어난다. 먹거리 부족으로 인한 경쟁은 종의 감소로 이어진다. 사람에게는 큰 스트레스다. 경쟁에서 낙오된 사람은 자손을 키우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생산성이 높아 식량이 많다면 먹거리를 인한 경쟁을 줄어들 것이다. 

이익의 『성호사설』에는 '계추(鷄雛)'라는 글이 있다. 계추는 병아리다. 병아리를 통해 자신의 가치관을 설명한 것이다. 그는 송나라 유학자 정자(程子)의 말을 빌려 서두에 강한 메시지를 담았다. 정자는  병아리를 볼 때마다 '갓난아이를 보호하듯 한다'는 뜻을 생각하며 행동하고 싶어했다. 서경 『주서(周書)』의 「강고(康誥)」 편에는 '갓난아이 보호하듯 하면 백성이 편안하다(若保赤子 惟民其康乂)'는 구절이 있다. 정자는 이 말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익은 정자의 생각을 높이 평가하며 자신의 견해를 보인다.

먼저, 병아리를 통해 여린 백성을 보았다. 백성을 보호되어야 할 연약한 존재로 보았다. 

병아리가 털과 날개가 완전히 자라기 전에는 하늘에서는 솔개와 매의 위협에, 땅에서는 생쥐와 족제비의 위협에 숨죽이고 있다. 삵괭이와 고양이는 닭장에 침입하고, 청개구리 꼬마들은 기왓장과 돌을 던져 생명을 불안하게 한다. 모두가 병아리의 큰 적들이다. 그러므로 돌보는 사람이 조금만 방심하면 온갖 걱정이 여기저기에서 밀려든다.

다음, 생명의 위협에서 벗어난 병아리의 번식은 먹을거리에 달린 것으로 보았다. 백성은 먹을 게 있어야 제대로 삶을 꾸릴 수 있다는 것이다.

병아리는 많이 부화된다. 숫자가 많은 만큼 먹을거리가 부족하다. 털도 변변치 않아 추위를 막기에는 모자란다. 그런데 추위에 발발 떠는 근본 원인은 배를 채우지 못한 탓이다. 쌀과 가루 등 먹거리가 충분해 배고프지 않다면 암탉이 힘껏 날개를 펼치고 병아리를 덮어주고, 안아줘 추위를 면할 수 있다. 먹을 것을 찾아 바삐 다니지 않게 되어 고달픔을 면할 수 있다. 먹을 것이 뜰에 있으면 바깥으로 나가지 않아도 된다. 바깥의 들짐승 위협 걱정도 적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병아리의 건강이다. 먹을거리가 많으면 위생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 세계도 마찬가지다.

 
병아리끼리 모이를 뺏으려고 하면 약한 놈은 배부르게 먹지 못한다. 이로 인해 몸이 점점 약해지고 피로와 병이 더 심해진다. 그러나 모이를 넉넉히 뿌려 주면 여러 마리가 다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그러면 병든 병아리도 기력을 회복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어떤 이는 '남은 밥을 병아리에게 주면 변을 제대로 못 봐 죽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변은 도로 미끄러워진다. 꽁무니 밑 보드라운 털에 변이 많이 맺히면 배설구가 막혀 죽게 된다. 나는 남은 밥알이 병아리에게 해로운 줄 안다. 그러나 자주 먹이고 부지런히 보호해준다. 배설구가 막혔으면 보드라운 털을 잘라주면 변을 쉽게 본다. 이렇게 키우면 병아리가 쉽게 성장한다.

이익은 병아리 이야기 말미에 본론을 담는다. 지배층이 서민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함을 적시한다. 그 결과 백성은 비참하게 삶을 마감한다는 것이다.

대개 백성은 여러 가지 고통을 겪는다. 그러나 잘 살고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이를 잘 알지  못한다. 백성은 이미 온갖 고통을 받고 또 배도 고프다. 이 같은 상황인데 어찌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다가 도랑과 구렁에 엎어져 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익은 바른 정치는 갓난아이를 보호하듯 백성을 살피는 것으로 보았다. 요즘은 조선시대와는 달리 권력의 견제 기능이 강화됐다. 제도적으로는 거의 완벽하다. 하지만 제도는 사람이 운용한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편법으로 운용되면 무용지물이다. 서민과 중산층의 먹거리를 충분히 확보하는 정치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것이 이익이 꿈 꾼 이상사회일 것이다.  

■ 글쓴이 백민제는?
맛 칼럼니스트다.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10년의 직장생활을 한 뒤 10여 년 동안 음식 맛을 연구했다. 특히 건강과 맛을 고려한 닭고기 미식 탐험을 했다. 앞으로 10여년은 닭 칼럼니스트로 살 생각이다. 그의 대표적 아이디어는 무항생제 닭을 참나무 숯으로 굽는 '수뿌레 닭갈비'다. www.supu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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