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45) 권근의 고민… 닭을 살릴까, 벌레를 살릴까
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45) 권근의 고민… 닭을 살릴까, 벌레를 살릴까
  • 이보미 기자
  • 승인 2015.05.01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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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민제 칼럼니스트
고려 말과 조선 초의 선비는 고뇌가 깊었을 것이다. 선택을 강요받는 시대에 산 인생이기 때문이다. 상당수 학자가 고려에의 충절을 선택했고, 많은 학자가 새 나라에서 새 시대를 여는 길에 동참했다. 가치관에 따라 선택을 달리했지만 서로에게 등 돌리는 세태는 인간적으로 심히 괴로웠을 것이다.

여말선초의 중심인물 중 한 명이 권근이다. 이색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정몽주에게도 수학한 그는 친 고려인물로 분류됐다. 그는 창왕 2년인 1389년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이 때 가져온 글 중의 하나가 정쟁의 불씨가 되어 유배되었다. 그는 극형이 예정되었는데, 실력자인 이성계가 구원해줬다. 이로 인해 이성계와도 친밀한 사이가 된 권근은 새 나라의 창조에도 동참한다.

성리학에 조예가 깊고, 문장이 좋은 그는 훗날 문인의 최고 영예인 대제학에 이른다. 혼돈의 시대를 산 그는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한 듯하다. 그 흔적을 양촌선생문집의 시, '병아리'에서 읽을 수 있다.

병아리 사랑하여 조심히 기르는 것은
인을 안다는 유훈을 잊지 않기 위함일세
너 새벽 알림을 잘 지키니
내 함부로 죽이지 않으리라
꿈에서 흰 닭을 보고 천명을 알았거니
단약 먹고 신선되는 법 배우기 어려워라
잘 되고 못 됨은 예부터이니 어느 때 그치랴
노두가 묶인 닭 보고 슬퍼함이 마땅하네
<번역: 이병훈>

선비의 정신을 잃지 않으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그가 병아리를 키우는 것은 상징성이 있다. 닭을 어짐의 대명사로 본 까닭이다. 권근은 병아리를 키우면서 인(仁)의 실천을 다짐한다. 배경은 한나라의 한영이 지은 『한시외전(韓詩外傳)』이다. 공자의 노년 시절 노나라 임금이 애공이다. 『논어』에도 자주 등장하는 애공에게 신하 전요가 말했다.

"왕께서는 닭을 보신 적이 있지요. 머리에 갓이 있음은 문(文)이고, 발에 며느리발톱이 있는 것은 무(武)입니다. 적을 맞아 용감히 싸우는 것은 용(勇)이고, 먹이가 있으면 동료를 부르는 것은 인(仁)이고, 밤을 지켜 시간을 잃지 않는 것은 신(信)입니다."

 
닭의 다섯 가지 덕을 빗대 선비로서의 마음가짐을 다진 것이다. 새벽을 알리는 닭의 존재를 소중히 여긴 그는 분수에 맞는 처신도 잊지 않는다. 꿈에서 흰 닭을 보고 천명을 알았다는 표현이 그것이다. 중국 진나라의 정치가인 사안이 병이 들자 친구에게 말한다.

"옛 재상인 환온이 생각납니다. 나는 그가 정변에 휘말릴 것을 항상 염려했습니다. 어느 날 꿈에 내가 환온의 수레를 탔습니다. 16리쯤 가다가 흰 닭을 보고 멈췄던 기억이 납니다. 환온의 수레에 탄 것은 그 지위를 이어받음이요, 16리는 올해가 고관자리를 맡은 지 16년째라는 뜻입니다. 흰 닭은 12지지중 닭인 유(酉)인데, 공교롭게 금년 태세(太歲)가 닭의 해인 유입니다. 아마 나는 몸이 회복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안은 왕에게 상소하여 퇴직한 뒤 곧 죽었다. 『진서(晉書)』 「사안열전(謝安列傳)」의 내용이다. 권근은 이 부분을 인용하여 사람의 목숨이 하늘에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은 죽어서도 신선과 같은 삶을 꿈꾼다. 하지만 이는 허황된 것임도 말한다. 단약 먹고 신선되는 게 어렵다는 부분이다. 단약(丹藥)은 먹으면 신선이 된다는 약이다. 약 1700년 전인 동진 시대에 갈홍이 『신선전(神仙傳)』을 지었다. 세상에 전해지는 신선의 행적과 장생불사 이야기를 편집한 설화집이다.

여기에 닭과 관련해 재미있는 내용이 있다. 신선이 되고 싶었던 회남왕(淮南王) 안(安)은 단약을 복용했다. 그가 죽자 먹다 남은 단약을 마당에 놓았다. 이를 닭과 개가 핥아먹고 모두 하늘로 올라갔다. 그 후로 하늘에서 닭이 울고, 구름 속에서 개가 짖었다. 이는 꿈속에서나 가능한 허황된 일이다. 권근은 시에서 이를 지적한 것이다.

권근은 시 마지막 부분에서 지식인의 고뇌를 드러낸다. 잘 되고 잘못 됨은 옛날부터 계속되는 세상사라는 것이다. 그는 이와 함께 모두를 좋게 하는 선택은 없음을 노래한다. ‘노두가 묶인 닭 보고 슬퍼함이 마땅하네’는 둘 다 유리하게는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권근의 처지와 관련하면 고려와 조선 모두를 좋게 하는 방법은 없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이는 두시(杜詩)의 박계행(縛鷄行)에서 차용한 것이다.

한 사람이 닭을 시장에 팔러 갔다. 두보가 사연을 물었다. 그 사람은 "닭이 벌레와 개미를 쪼아 먹는 것이 보기 싫습니다"라고 했다. 두보는 "닭과 벌레는 같은 동물입니다. 어느 것은 잘 대하고, 어느 것은 야박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닭을 풀어 주시오"라고 했다. 두보는 고민했다. "닭과 벌레 모두 온전할 수는 없다. 벌레가 살면 닭이 굶어죽고, 닭이 살면 벌레가 죽는다. 어떤 선택이 바른 것인가. 잘 되고 잘못 됨이 끝날 때가 없도다."

■ 글쓴이 백민제는?
맛 칼럼니스트다.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10년의 직장생활을 한 뒤 10여 년 동안 음식 맛을 연구했다. 특히 건강과 맛을 고려한 닭고기 미식 탐험을 했다. 앞으로 10여년은 닭 칼럼니스트로 살 생각이다. 그의 대표적 아이디어는 무항생제 닭을 참나무 숯으로 굽는 '수뿌레 닭갈비'다. www.supu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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