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44) 닭이 알리는 특별사면
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44) 닭이 알리는 특별사면
  • 한지은 기자
  • 승인 2015.04.30 1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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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민제 칼럼니스트
특별사면이 관심을 끈다. 특사로도 불리는 이 제도는 형의 선고를 받은 특정한 사람에 대해 법무부장관이 상신하고, 국무회의에서 심의하고, 대통령이 행하는 정치행위다. 특별사면은 광복절 삼일절 대통령 취임일 등 나라의 기념일에 많이 실시한다. 특별사면은 불합리한 판결로 억울함을 당한 사람을 구제하고, 나라의 이익을 위해 법률적 진실에 앞서 정치적 판단이 필요할 수도 있는 게 배경이다.

이에 대해서는 긍정과 부정이 엇갈린다. 완벽할 수는 없는 인간의 판단으로, 고통 받을 수도 있는 사람의 처지를 되살피는 것은 바람직하다는 시각이다. 또 교통법규 위반 등 민생에 관련된 경우, 경제 활성화를 위한 조치 등도 때에 따라서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경영인과 정치인의 잦은 사면은 돈과 권력이 없는 서민에게는 특별사면을 부정적으로 보게 한다. 또 궁극적으로는 시민의 준법의식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특별사면은 옛날부터 있었다. 주로 귀양 간 정치인에 대한 동료들의 구명운동의 결과였다. 다산 정약용도 유배 10일 만에 특별사면을 받은 적이 있다. 그는 당시 심정을 『다산시문집』에 남겼다. 

귀양 열흘 만에 받은 특사교지(在謫十日特蒙赦旨)

탱자 꽃핀 성 마을에서 대궐 꿈을 꾸는데/천상금계 보이더니 금방 사면 되었네/
이웃이 선물한 술이 아직 남아 있고/나그네는 시 몇 수도 짓지 않았네/
비 내린 산에는 매실 풍성하고/여름으로 가는 역로에는 버들가지 무성하네/
임금의 후덕한 은혜를 입었지만/황혼이라 감히 갈 수 없어라

옛사람의 사면은 닭과 연관이 있다. 정약용도 꿈에서 하늘의 금계를 본 뒤 석방되었다. 금계는 하늘에서 계절의 흐름을 담당하는 별인 천계성(天鷄星)을 상징한다. 동양에서는 이 별이 나타나면 나라에서는 사면령을 내렸다. 수서의 『형법지』에는 '죄수를 석방할 때는 창합문 밖 오른쪽에 금계와 북을 설치한다. 북을 일천 번 친 뒤 죄수를 풀어준다'고 하였다. 『송사(宋史)』 「의위지」에도 '하늘의 천계성이 움직이면 나라에서 사면령을 내린다. 육조(六朝) 이래로 금계를 사용했다'는 구절이 있다. 당나라에서는 특별사면 때 붉은 옷을 입은 관리가 금으로 만든 금계를 들었다.

 
닭이 사면과 관련된 것은 메신저 기능 때문이다. 고대인들은 닭이나 오리 같은 새가 하늘의 뜻을 지상에 전하고, 사람의 마음을 하늘에 올리는 역할을 할 것으로 믿었다. 그 믿음이 별과 맞물려 사면의 형태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하늘과의 소통을 하는 닭은 금으로 치장했다. 사람의 정성을 보여준 것이다. 금계는 병풍이나 장막에도 등장해 지배자의 권위를 더했다. 『당서(唐書)』의 「안록산전」에는 금계병풍이 나온다. 당나라 현종이 근정루에 올라가서 장막 왼쪽에 금계대장(金鷄大章)을 베풀고, 그 앞에 특별히 설치한 의자에 안록산을 앉게 했다. 군권을 쥔 안록산을 회유하기 방법이었다.
 
하지만 사면이 되어도, 자중하는 선비도 있었다. 정약용은 열흘 만에 석방이 되자 기뻐하면서도 임금 곁으로 가지 않을 뜻을 비친다. 사면이 되었지만 죄인이기에 임금을 모실 수 없다는 의미다. 정약용은 이를 '황혼이라 감히 갈 수 없다'고 노래했다. 미인과의 즐거운 만남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는 이 표현은 죄인이 왕을 감히 모실 수 없다는 양심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조선 중기의 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금계방사(金鷄放赦)'라고 했다. 금계와 사면의 관계를 설명한 그는 특별사면에 대한 시각을 당나라 태종의 생각을 빌려 표현했다.

한밤중이면 양기(陽氣)가 움직인다. 이 까닭에 닭이 반드시 날개를 치고 울면서 기쁜 소식을 전한다. 나라도 경사가 있으면 죄수를 석방한다. 천계성(天鷄星)이 움직이면 반드시 사령(赦令)을 내린다. 이 같은 이치로 북쪽 전문(殿門)밖에 금계(金鷄)를 상징으로 세웠다. 금계방사(金鷄放赦)다.

하지만 사면은 바르지 않은 사람의 바람이다. 이 행위가 어찌 하늘의 별을 감동시킬 수 있겠는가. 당나라 태종은 "한 해에 사면령 두 번만 내리면 좋은 사람은 벙어리가 된다"고 하였다.

옛사람은 금계를 세워 하늘에 죄인 석방을 고했음을 알 수 있다. 『당서(唐書)』의 「예의지(禮儀志)」에는 사면령 내리는 날 의식이 적혀있다. 넉 자쯤 되는 나무로 닭을 만든 뒤 머리를 금으로 장식하고, 입에는 비단으로 만든 기를 물린다. 그리고 채반(采盤)에 높이 세웠다. 하늘의 천계성(天鷄星)을 상징한 것이다. 그러나 당나라 태종인 이세민은 특별사면령이 한 해에 두 번 이상 내려지면 선량한 사람이 수긍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 글쓴이 백민제는?
맛 칼럼니스트다.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10년의 직장생활을 한 뒤 10여 년 동안 음식 맛을 연구했다. 특히 건강과 맛을 고려한 닭고기 미식 탐험을 했다. 앞으로 10여년은 닭 칼럼니스트로 살 생각이다. 그의 대표적 아이디어는 무항생제 닭을 참나무 숯으로 굽는 '수뿌레 닭갈비'다. www.supu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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