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41) 동해의 여인국과 닭의 무정란
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41) 동해의 여인국과 닭의 무정란
  • 이보미 기자
  • 승인 2015.04.27 16: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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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민제 칼럼니스트
바다는 두려움과 희망이다. 드넓은 바다는 세상을 경영할 무한자원이다. 반면 험난한 파도와 열악한 환경은 공포의 대상이다. 사람은 예부터 바다를 무대로 살았다. 문명이 강에서 바다로 이동했다.

나일강 문명은 고대 페니키아인이 바다로 전했고, 그리스와 로마인은 지중해를 역사의 터전으로 일궜다. 스페인, 영국인들은 대서양에서 문명을 꽃피웠고, 네덜란드, 포르투갈을 필두로 한 유럽인들은 뱃길을 타고 아메리카와 아시아로 들어왔다.

한국인도 고려 때까지는 바다 경영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조선은 해금 정책을 취했다. 진출하지 않는 바다는 두려움이었고, 알고 싶은 곳이었다. 이는 신비한 상상력으로도 이어졌다. 옛사람들은 동해 한복판에 여인국이 있는 것으로 믿었다. 이수광이 지은 『지봉유설』에는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동해에 여인만 사는 나라가 있다. 남자가 없는 이곳에서는 여자가 바람과 통하여 아이를 낳는다. 북쪽의 나라에서는 여인이 우물에 몸을 비추면 임신을 하여 아기를 낳는다. 여러 책에 나온 이 같은 이야기를 사람들은 허황되다고 생각한다. 필자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닭, 거위, 오리는 암컷만 있어도 알을 낳는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 있다. 세상에는 눈으로 보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 있는 게 사실이다. 여인국은 음기만 있는 게 아닐까. 그렇기에 오직 딸만 낳은 것이리라.

이수광은 닭과 같은 가금류의 예를 들어 인간의 무성생식에 대해 일말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다. 무성생식은 남자가 없어도 여자가 출산할 수 있는 것이다. 동물세계에서는 수컷 없이 암컷이 새끼를 낳기도 한다. 이를 안 이수광은 남자가 없는 여인국을 부정하면서도 혹시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예를 든 닭의 알은 생식력이 없다. 수탉이 없어도 암탉은 알을 낳는다. 그런데 수탉의 정자가 수정되지 않은 무정란이다. 그가 생각한 비유는 적절하지 않은 것이다.
 

 
이수광이 읽은 책은 『삼재도회』와 『후한서』 등으로 보인다. 『삼재도회』는 명나라 왕기가 쓴 백과사전이다. 왕기는 1607년에 이 책을 완성했다. 이수광은 세 차례 사신으로 중국에 다녀온 뒤 1614년에 『지봉유설』을 지었다. 당시 중국에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베트남, 타이, 자바, 말레이시아는 물론이고 프랑스, 영국까지 소개했다. 지적 호기심이 왕성한 이수광이 『삼재도회』와 『후한서』 등에 게재된 조선의 여인국에 대해 평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수광은 중국인들처럼 조선 동남해상에 여인국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동남쪽 바다에 선박이 표류했다. 여인들만 사는 나라였다. 많은 여인이 남자들을 데리고 갔다. 모두가 죽었는데 단 한 명이 밤에 몰래 배를 훔쳐 돌아왔다. 이로써 여인국이 세상에 알려졌다. 이 나라의 여인들은 벗은 몸으로 남쪽의 바람을 맞으면 아이를 갖게 된다.

『후한서』의 동옥저를 소개한 대목에도 여인국이 나온다. 전해오는 바에 의하면 동쪽 바다에 여인의 나라가 있다. 남자가 없는 이 나라에는 신성한 우물이 있다. 이를 엿보면 임신을 한다.

옛사람이 인식한 여인국의 위치는 어디일까. 『후한서』는 한반도 북쪽의 동해로 보았다. 함흥이나 경원에서 바라보는 먼 바다다. 『삼재도회』에서는 한반도 동남쪽으로 상정했다. 부산이나 울산에서 더 남쪽 방향에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에 대해 이수광의 한 세대 후 사람인 이형상은 『탐라순력도』에서 위치를 구체화시켰다. 제주도에서 동쪽 일본까지 2천 여리, 11시 방향으로 8천 여리에 있는 것으로 보았다.

여인국 전설은 현실의 버거움과 미지의 세계에 환상이 결부된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다. 옛날 바다는 지금보다 더 위험했다. 바다에서 생계를 잇는 많은 남성은 돌아올 수 없었다. 육지와 고립된 먼 바다의 섬에서는 남성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여인국 전설로 자리잡은 듯하다. 인간은 무성생식을 할 수 없다. 여인국 전설처럼 표류한 뱃사람은 육지로 돌아올 수 없었을 것이다. 여인만 사는 곳에서는 남성으로서의 남자와 일손으로서의 남성이 모두 필요했을 수 있다.

■ 글쓴이 백민제는?
맛 칼럼니스트다.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10년의 직장생활을 한 뒤 10여 년 동안 음식 맛을 연구했다. 특히 건강과 맛을 고려한 닭고기 미식 탐험을 했다. 앞으로 10여년은 닭 칼럼니스트로 살 생각이다. 그의 대표적 아이디어는 무항생제 닭을 참나무 숯으로 굽는 '수뿌레 닭갈비'다. www.supu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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