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나닌교와 시치고상
히나닌교와 시치고상
  • 독서신문
  • 승인 2015.04.20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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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에세이'
▲ 이하빈 작가

[독서신문] 일본에서 매년 봄이 되면 이색적인 풍습 하나가 떠오른다. 일본어로 숫자 7,5,3을 가리키는 '시치고상'이 그것이다. '시치고상'은 3,5,7세가 되는 해에 아이들이 무사히 잘 자랐다는 것을 축하해주는 풍습이다.

아이들의 '죽음' 하면 떠오르는 동요 가사가 있다. '바람아, 바람아, 불지 마라. 비눗방울 창공에 떠 있도록. 비눗방울 사라졌네. 날지 못하고 터져버렸네. 태어나자마자 부서져 사라졌네. 바람아, 바람아, 불지마라. 비눗방울 창공에 떠 있도록.' 일본의 노구치 우조(1882~1945) 시인이 쓴 것이다. 어린 딸을 잃은 애절한 마음을 시에 담은 것이다. 당시 이 동요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널리 퍼져 있었다. 의학이 발달되지 않았던 이 시기에 많은 아이들이 병으로 죽거나 장애 때문에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헤이안시대에 교토에서 귀족들은 자녀들의 무병장수를 위해 종이 인형을 만들어 강물에 띄워보내곤 했다. 그 후 나무 상자에 촛불을 넣어 강물에 띄우는 식으로 바뀌어, 액운을 흘려보내려 했다. 이렇게 흘려보낸 악귀들이 아이들을 잡아간다고 하며 아이들이 강가에서 노는 것을 금지시키기도 했다.

한편 에도시대에는 서민들의 생활고 때문에 아이를 죽이는 마비끼라는 풍습도 있었다. 태아에서 7살까지는 완전한 인간이 아니라 신이 맡긴 생명체로 신이 다시 데려갈 수도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혹시 사람 구실을 못할 정도로 장애아로 태어나면 신에게 돌려보낸다는 감각으로 아이를 낳자마자 죽이는 풍습도 있었다. 출생 후 어느 정도 생존의 확신이 설 때까지 출생 신고도 하지 않았다. 장애아라면 빨리 신에게 돌려보내야 정상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일단 맡았던 아이지만 도저히 키울 수 없으니 신에게 돌려준다는 것이었다. 서양 선교사들로부터 잔인한 살인이자, 인권유린이라고 맹 비난을 받을 만했다.

20세기 초반만 해도 일본도 개발도상국처럼 영양 부족, 빈곤, 의학지식 부족 등의 원인으로 아이들의 생존율이 낮았다. 그래서 어린이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풍습이 '시치고상'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시치고상 때는 장수를 상징하는 거북이, 대나무, 소나무, 학의 그림이 그려진 봉지로 싼 사탕을 아이들에게 먹인다.
종이 인형으로 액운을 흘려보내는 풍습은 오늘날 히나닌교 장식의 관습으로 이어졌고, 그 의미도 달라졌다. 3월 3일이면 히나닌교(히나 인형)를 집안에 장식하는 풍습이다. 단 하루만 장식하고 하루가 지나면 정리를 해둬야 딸이 혼기를 놓치지 않고 시집을 간다고 믿고 있다.

매년 3월이 되면 이렇게 장식했던 인형을 딸 혼수품에 넣어 대물림을 한다. 제일 위 상단에 장식된 인형의 얼굴은 일본의 전형적인 귀족풍인 달걀형이다. 그 옆에 남자 인형과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이 신랑, 신부를 연상케 한다. 1단에서 7단까지 인형을 계단식으로 장식하는데 가장 위에 있는 인형을 그 아래 계단의 인형들이 지켜준다고 한다. 이렇게 각 가정에 장식된 히나닌교는 그 집안의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

봄마다 얼굴을 내미는 히나닌교, 그리고 거기에서 연상되는 '시치고상'의 풍습이 국경을 초월해 우리 모두의 과거를 되돌아보게 하는 것 같다.

/ 도쿄(일본)=이하빈(르포 작가, 동경싱싱아카데미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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