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35) 달걀귀신과 병아리 스토리텔링
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35) 달걀귀신과 병아리 스토리텔링
  • 한지은 기자
  • 승인 2015.04.18 02: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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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민제 칼럼니스트
닭은 유머와도 관계가 깊다. TV의 개그 프로그램에서 닭을 소재로 한 스토리가 끊이지 않는다. 시중에서 유행하는 닭에 관한 유머를 보자. '닭이 벽에 부딪혔다면?', '닭의 아내는?', '수탉은 왜 길을 건너지 않았을까?' 등이다.

답을 생각한다. '닭꽝~', '닥쳐!', '치킨이 아니기 때문에'이다. '닭꽝'과 '닥쳐'는 소리를 흉내낸 유머다. '치킨이 아니기 때문에'라는 답은 학습력을 따졌다. 치킨은 원래 암탉을 의미했고, 수탉은 콕(cock)이나 루스터(rooster)로 표현한다.

이밖에도 닭의 유머는 무척 많다. 오늘 아침에 페이스북에서 받은 유머를 소개한다. '세상에서 제일 비싼 닭은?' <코스닥>, '세상에서 제일 빠른 닭은?' <후다닥>, '세상에서 가장 열정적인 닭은?' <불닭>, '세상에서 가장 인정 많은 닭은?' <토닥토닥>

전통시대에서는 닭이 유머의 대상보다는 의인화의 상대였다. 각국의 개국설화에는 알에서 태어난 인물이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동명성왕, 박혁거세, 김알지 등의 탄생설화에 알이 등장한다. 고대에는 고귀한 존재를 알에서 깨어난 것으로 각색해 신성시한 것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면 닭이나 계란의 의인화는 달걀귀신으로 바뀐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개국 군주에서 서민의 한을 담은 대상이 된다.

그러나 다른 귀신들에 비해 공포감은 덜하다. 처녀귀신, 몽달귀신, 총각귀신에 비해 한을 적게 품고 있다. 달걀귀신도 공포감 조성을 위해 흰 베옷을 주로 입지만 옷은 바뀌기도 한다. 괴나리  봇짐을 지고 이동하는데 눈, 코, 입이 없고 달걀 형상을 하고 있다. 또 말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원하는 것도 없고 어디론가 바쁘게 걷는 게 특징이다. 다만 달걀귀신을 만난 사람은 며칠 내에 병으로 죽게 된다.

이 같은 이야기는 전국적으로 퍼져 있다. 주로 어둠이 내리면 치안이 불안한 산길, 으슥한 골목,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 화장실 등이 이야기의 무대다. 기가 약한 사람에게 자주 보인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비슷한 유형으로 달걀도깨비도 있다. 달걀귀신과 출몰하는 지역은 같다.

다만 도깨비가 형상하듯, 장난기가 많다. 데굴데굴 굴러서 사람을 골려준다. 끊임없이 사람에게 말을 한다. 달걀귀신은 말을 하지 않아 무서움을 들게 한 반면 달걀도깨비는 재잘댐으로써 상대적으로 인간에게 친근하게 다가온다.

 
달걀귀신과 달걀도깨비는 조심하는 생활을 강조한 데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옛 어른들은 밤에 손톱이나 발톱을 깎지 못하게 했다. 달걀귀신이 나온다고 했다. 이는 조명이 안 좋던 시절의 밤에 손톱을 깎다 살을 베일 수 있음도 고려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외부의 활동도 밤에는 자제하기를 바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예전에는 치안이 무척 불안했다. 도처에 도적도 많았다. 특히 밤에 산길을 걷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이 같은 점을 경계하고자 달걀귀신을 등장시켰을 가능성이 있다. 두루뭉술한 달걀처럼 위장한 도둑이 재물을 빼앗고 인명을 살상할 수 있다. 재빨리 도망친 그들에 대한 기억은 얼굴의 특징도 잘 모르는 뒷모습일 뿐일 수 있다. 달걀처럼 분명하지 않은 그들의 형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달걀귀신이 나왔을 것으로 보인다. 달걀도깨비는 어른이 아이를 훈육하기 위해 지어냈을 수 있다. 밤늦게까지 골목길을 방황하지 말고 일찍 귀가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보면 달걀은 스토리텔링의 좋은 소재다. 요즘의 닭 농가는 스토리텔링 학교로 변신도 한다. 닭 사육 현장을 교육의 장으로 활용한다. 유치원과 초등학생에게 닭과 달걀에 관한 스토리로 관심을 갖게 한다. 병아리의 심장소리를 청진기로 듣게 한 뒤 느낌을 말하게 한다. 달걀로 요리하고, 쿠키 만드는 프로그램에서 꼬마들에게 스토리를 들려준다. 또 꼬마들에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한 뒤 발표의 장을 제공한다.

■ 글쓴이 백민제는?
맛 칼럼니스트다.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10년의 직장생활을 한 뒤 10여 년 동안 음식 맛을 연구했다. 특히 건강과 맛을 고려한 닭고기 미식 탐험을 했다. 앞으로 10여년은 닭 칼럼니스트로 살 생각이다. 그의 대표적 아이디어는 무항생제 닭을 참나무 숯으로 굽는 '수뿌레 닭갈비'다. www.supu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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