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29) 닭과 송골매, 고양이와 천리마
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29) 닭과 송골매, 고양이와 천리마
  • 한지은 기자
  • 승인 2015.04.08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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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민제 칼럼니스트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다. 신이 아니기에 앞날이 궁금하다. 새해 운수를 보는 관습은 조선시대에도 유행했다. 대표적인 게 책으로도 나온 『토정비결』이다. 이 책은 조선 중기의 학자 이지함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필자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역학 수학 의학 천문 지리 등 다양한 것에 관심을 가진 이지함은 많은 일화를 남긴 기인(奇人)이다. 그래서 책을 저술했거나 단초를 제공했을 가능성은 있다.

기인인 그는 당시 유생과는 다르게 상업에 관심을 기울여 해외 통상과 광산 개발을 주장했다. 백성의 윤택한 삶을 추구한 그는 서울 마포 강변의 흙담집에서 평생을 청빈하게 지냈다. 그래서 호가 토정(土亭)이다. 그는 훗날 영의정이 되는 조카 이산해를 가르쳤다. 명문가의 후손인 이지함은 유일(遺逸)로 천거돼 포천 현감이 되었다.

57세에 첫 직장을 얻은 이지함은 백성을 위한 행정을 고민했다. 궁핍한 생활에 찌든 백성을 구제할 아이디어를 상소한다. 그 중의 하나가 적재적소 인물 기용이다. 『만언소(萬言疏)』와 『토정유고(土亭遺稿)』에 실린 내용이다.

해동청 사지사신 즉증노계지불약의(海東靑 使之司晨 則曾老鷄之不若矣)
한혈구 사지포서 즉증노묘지불약의(汗血駒 使之捕鼠 則曾老猫之不若矣)

'해동청이 새벽을 알리면 늙은 닭만도 못하고, 한혈구가 쥐를 잡는다면 늙은 고양이만도 못하다'는 뜻이다. 해동청은 우리나라 고유의 매다. 아주 용맹해 사냥을 잘한다. 연해주와 함경도 해안에서 주로 서식하는 데 큰 원숭이나 고니도 사냥하는 능력이 있다. 중국의 황제들은 지상 최고의 매를 얻기 위해 전쟁도 불사했다.

 
『청장관전서』의 주인공 이덕무는 털빛이 흰 것을 송골(松骨)이라 하고, 털빛이 푸른 것을 해동청(海東靑)으로 분류했다. 세종 때 김문기는 해동청을 기르는 일의 중단을 건의한다. 임금이 창덕궁에서 해동청을 보고 더위를 피하는 데, 나라에 흉년이 들고 명나라에 선물 보내는 것도 중지됐으니 키우지 말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세종은 "해동청을 키우는 것은 명나라에 진헌하기 위함만은 아닌 우리나라의 전통이다. 내가 즐기는 놀이다"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혈마(汗血馬)인 한혈구(汗血駒)는 하루에 천리를 달린다는 명마다. 『한서(漢書)』의 「무제기(武帝紀)」에 나온다. 장군 이광리가 대원(大宛)을 정벌하고 세상의 명마 한 마리를 노획했다. 그런데 말의 어깨에서 땀이 피처럼 흘러서 한혈마라고 했다. 천리마인 한혈마는 조선의 선비들도 인용했다. 영조 때 대제학을 지낸 이관명은 어린 셋째 아들의 능력이 한혈마에 버금간다고 했다.

토정 이지함이 말한 해동청과 한혈구는 최고를 의미한다. 최고의 능력을 가진 사람도 적소에 써야 빛을 발한다. 사람마다 잘할 수 있는 분야가 다르다. 이를 천하에 소문난 매라도 닭이 하는 일을 하면 능률이 떨어지고, 천리마라도 고양이가 하는 일은 잘할 수 없음으로 설명했다.

이지함은 또 '황계가엽호 묘가가호(況鷄可獵乎 猫可駕乎)'라고 했다. '닭은 사냥할 수 없고, 고양이는 수레를 끌 수 없다'는 것이다. 매, 닭, 말, 고양이를 등장시켜 인재의 적재적소 등용이 백성을 살리는 길임을 상주했다. 필자의 능력은 '닭갈비를 숯불에 굽는 것'이다.


■ 글쓴이 백민제는?
맛 칼럼니스트다.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10년의 직장생활을 한 뒤 10여 년 동안 음식 맛을 연구했다. 특히 건강과 맛을 고려한 닭고기 미식 탐험을 했다. 앞으로 10여년은 닭 칼럼니스트로 살 생각이다. 그의 대표적 아이디어는 무항생제 닭을 참나무 숯으로 굽는 '수뿌레 닭갈비'다. www.supu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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