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27) 의적 홍길동 가족과 닭
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27) 의적 홍길동 가족과 닭
  • 이보미 기자
  • 승인 2015.04.03 1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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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민제 칼럼니스트
홍길동은 소설 속 주인공일까, 실존 인물일까. 일부에서는 그를 실존 인물로 보고, 일부에서는 허구라고 생각한다. 조선시대 홍길동은 분명히 존재했다. 그는 1440년 전라도 장성현 아차곡에서 태어났다. 가계도 확실하다. 아버지는 이조판서 홍상직이고, 어머니는 기생이다. 이복 형은 홍귀동과 홍일동이다. 홍일동은 조선 초기 정변에서 세조의 편에 서 고위직인 지중추부사에 오른 인물이다.

『조선왕조실록』에 홍길동 기록도 나온다. 관에서 그를 잡으려는 내용이다. 그러나 허균의 소설 속 홍길동과 실록에 등장하는 인물과의 일치성 여부는 알 수 없다. 또 판서 홍상직의 서자 홍길동이 소설의 모델이 되었는지도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적 홍길동이 실존 인물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스토리텔링 시대에 그의 이야기만큼 심금을 울리는 것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 속 홍길동과 실록 속 홍길동, 조선 명문가 족보 속의 홍길동을 같은 인물로 생각해본다. 소설 속 홍길동의 형 가능성도 있는 홍일동은 일화가 많다.    

문신인 그는 정삼품의 무반인 상호군으로 근무한 뒤 지중추부사 시절 선위사로 사신을 영접하다가 과음으로 숨졌다. 그는 운문과 시에 두루 능했다. 또 예술 감각이 뛰어난 듯싶다. 한 잔 마시고 취하면 풀피리를 부는 데 비장한 소리에 스스로 취했다. 예술의 세계에 깊게 빠졌다. 서거정이 지은 『필원잡기』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는 평상시에 혼자 오래된 거문고를 어루만졌다. 그런데 줄은 있지만 악보는 없었다. 이에 대해 홍일동은 '나의 거문고는 세상에 전하지 않는 도연명(陶淵明)의 지취(志趣)를 얻었다. 옛날에 백아(伯牙)가 거문고를 타자 오직 종자기(鍾子期)만이 그 뜻을 알았다. 나의 거문고는 도연명이 나오지 않으면 세상에서 알 사람이 없다'고 했다."

서거정은 글에서 그를 기인으로 표현했다. 예술성이 뛰어난 천재는 달관의 모습도 가끔 보인다. 유학자인 그는 불교에 심취한 세조와 의견이 달랐다. 어전회의에서 나라의 불교정책에 대해 비판했다.

 
이에 세조는 거짓 화를 냈다. "이놈을 죽여서 부처에게 사례하겠다." 세조는 좌우에 명하여 칼을 가져오게 했다. 그러나 홍일동은 태연하게 말을 계속했다. 임금의 명을 받은 신하가 칼로 정수리를 두 번이나 문지르는 흉내를 냈으나 그는 돌아보지도 않았고, 두려운 빛도 보이지 않았다.

세조는 그에게 술을 은 항아리에 가득 담아 내려주었다. 벌컥벌컥 마신 그에게 세조가 "죽음을 두려워하는가"라고 물었다. 홍일동은 "죽는 것이 마땅하면 죽고, 사는 것이 마땅하면 사는 것입니다. 감히 죽고 사는 것으로써 마음을 바꾸겠습니까"라고 초지일관했다. 임금이 기뻐하며 담비 갖옷을 주며 위로했다.

홍일동은 조선의 대표적인 대식가로 알려져 있다. 『필원잡기』에 따르면 그는 진관사에서 생활할 때 떡 한 그릇, 국수 세 주발, 밥 세 바릿대, 두부국 아홉 주발을 먹었다. 그가 산 아래 왔을 때 식사를 대접하는 이가 있었다. 홍일동은 또 찐 닭 두 마리, 물고기국 세 주발, 생선회 한 쟁반, 술 마흔 잔을 먹었다.

세조가 이 소식을 듣고 사실여부를 확인했다. 홍일동은 사실임을 아뢰었고, 세조는 장사(壯士)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평상시에는 미숫가루를 먹고 맑은 술만 마셨다. 밥을 먹지 않았다. 그가 홍주에서 폭음으로 죽었을 때 사람들은 배가 터져 죽은 것으로 생각하였다.

서거정은 뜻과 능력이 있었으나 제대로 펼치지 못한 불운아로 해석했다. 필자는 『필원잡기』를 읽으면서 눈에 밟히는 게 닭 두 마리였다. 대식가 홍일동은 그 많은 음식을 먹은 뒤에 찐 닭 두 마리를 다 먹었다. 닭은 공부하고 나라 일을 하는 선비들에게 단백질을 공급하는 고급 음식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글쓴이 백민제는?
맛 칼럼니스트다.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10년의 직장생활을 한 뒤 10여 년 동안 음식 맛을 연구했다. 특히 건강과 맛을 고려한 닭고기 미식 탐험을 했다. 앞으로 10여년은 닭 칼럼니스트로 살 생각이다. 그의 대표적 아이디어는 무항생제 닭을 참나무 숯으로 굽는 '수뿌레 닭갈비'다. www.supu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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