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25) 병아리 10마리와 나폴레옹 모자
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25) 병아리 10마리와 나폴레옹 모자
  • 한지은 기자
  • 승인 2015.04.01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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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민제 칼럼니스트
'병아리부터 셈 하지 마라!(Don't count your chickens before they're hatched.)' 미국 속담의 하나다. '달걀이 병아리로 부화하기도 전에 숫자를 세지 마라'는 뜻이다. 우리 표현으로는 '김칫국부터 마시지 마!'이다. 말이 행동에 앞서는 사람을 질책하거나 경계할 때 쓴다. 실천이 아닌 상상 속에 사는 사람이 있다. 공상가는 이런 생각을 한다.

닭 한 마리가 알을 낳고, 알들이 부화하면 수십 마리 닭이 생긴다. 닭들이 또 알을 낳고, 병아리로 부화된다. 양계장을 늘리면 조만간에 큰 부자가 된다. 해외에서도 양계사업을 하면 금세 글로벌 경영인이 된다.

이 같은 생각을 중년들은 한 번쯤 해봤을 수도 있다. 초등학교 시절, 시골에서 자란 필자는 닭 몇 마리가 항상 마당에서 모이를 쪼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봄이면 닭이 십 수 마리의 병아리를 껴안고 있었다. 그 때 생각했다. 달걀 20개를 부화시키면 병아리 20마리가 된다. 몇 달이 지나면 병아리는 큰 닭이 되어 알을 낳는다. 달걀 수십 개를 부화시킨다. 그러면 1년 안에 수백 마리의 닭을 갖게 된다.

한 때는 토끼의 증식을 생각했다. 시골 집 마당 한쪽에는 토끼집이 있었다. 매일 풀을 뜯어다가 토끼에게 주었다. 토끼는 번식력이 아주 강하다. 몇 달이 지나면 많은 새끼를 낳았다. 이 새끼들은 금세 자랐다. 토끼를 장에 내다 팔았다. 그때도 생각했다. 토끼를 팔게 아니라 몇 년 키우면 수천 마리가 될 것 아닌가. 그렇다면 아버지가 농사짓는 것보다 돈을 더 벌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께 말씀을 드렸다. 그러나 아버지는 수백 마리 토끼를 키울 장소가 없고, 수백 마리 닭을 키우려면 사료비도 걱정이라고 하셨다.

필자의 어린 시절 꿈은 실천되지 못했다. 그저 머릿속으로만 모래성을 쌓았다가 지우곤 했다. 미국 속담을 접하면서 불현듯 어린 시절 생각이 났다. 미국 속담은 허황된 상상을 경계한다. 닭이 태어나기도 전에 부자가 된 듯한 착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단계를 밟아 행동하면 공상이 아닌 현실이 된다.

 
닭고기 기업인 하림의 김홍국 회장은 이를 실천하고, 금자탑을 쌓았다. 김홍국 회장이 글로벌 기업을 이룬 첫 단추는 병아리 10마리였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외할머니로부터 병아리 10마리를 선물 받았다. 이게 씨알이 돼 고등학교 때는 닭 4,000마리를 키우는 축산인이 되었다. 고향 이름을 딴 황등 농장은 국내 최고의 닭고기 기업 하림으로 발전했다. 회사는 더욱 커져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입지도 다졌다. 

2015년에 김홍국 회장은 또 한 번 주목을 받는다. 경매시장에서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1세의 모자를 26억원에 낙찰 받은 것이다. 모자 경매 가격 사상 최고액이다. 이 모자는 모나코 왕실에서 경매로 내놨다. 나폴레옹이 부대의 말을 관리한 수의사에게 선물한 모자를 모나코 왕실에서 매입, 보관하고 있었다. 김홍국 회장이 모자를 구입한 것은 나폴레옹 정신과 관계 있다. 김회장은 평소 '불가능은 없다'고 한 나폴레옹의 신념을 기업인이 가져야 할 정신으로 높게 평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이 모자는 하림의 신사옥에 전시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보는 직원과 방문객은 도전정신과 실천의 삶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될 것이다. 중학교 시절, 영어 교재에서 보았던 나폴레옹의 모습. 아마 김홍국 회장도 그 때는 나폴레옹과의 인연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병아리 10마리를 발판 삼아 노력하고 실천한 삶은 영웅과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 글쓴이 백민제는?
맛 칼럼니스트다.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10년의 직장생활을 한 뒤 10여 년 동안 음식 맛을 연구했다. 특히 건강과 맛을 고려한 닭고기 미식 탐험을 했다. 앞으로 10여년은 닭 칼럼니스트로 살 생각이다. 그의 대표적 아이디어는 무항생제 닭을 참나무 숯으로 굽는 '수뿌레 닭갈비'다. www.supu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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