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봄, ‘사랑의 손편지’를 쓰자
이 봄, ‘사랑의 손편지’를 쓰자
  • 조석남 편집국장
  • 승인 2015.04.01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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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석남 편집국장

[독서신문 조석남 편집국장] 며칠 전 손으로 쓴 편지를 한 통 받았다. 요즘 대부분 인쇄된 편지를 보내기 때문에 손으로 직접 쓴 편지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이유로 어쩌다 ‘손편지'를 받으면 반가운 마음이 들며 가슴이 설레기까지 한다.

필자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편지를 주고 받으며 펜팔을 하는 게 하나의 트렌드였고, 전화라는 문명의 이기도 대중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편지가 일반적인 소통 수단이었다. 그 시절 편지를 보내고 또 답장을 기다리며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키우고 사람 사이에 낭만을 느낄 수 있어서 인간관계가 더 따뜻하고 돈독하지 않았나 싶다.

이메일과 휴대전화 문자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편지는 어쩌면 박물관 속 골동품처럼 케케묵은 과거의 도구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메일과 휴대전화 문자는 사람의 감정을 전달하기에는 편지보다 못하다. 특히 워드프로세서로 친 깔끔한 인쇄체의 편지보다는 온 정성을 다해 손으로 직접 쓴 편지는 쓰는 사람의 숨결까지 느낄 수 있어 받는 사람이 더 많은 감동을 받을 것이다.

편지를 주고받음은 사람 사이 ‘정'의 교환이다. ‘나더러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 나를 두고 먼저 가시었소….' 1998년 경북 안동의 묘에서 412년 만에 햇빛을 본 고성 이씨 집안 부인의 한글 편지는 진한 부부의 정을 담고 있어 읽는 이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어니언스가 부른 가요 ‘편지'는 30여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잔잔한 감동을 준다. 풋풋한 옛사랑이 가슴 저리는 추억으로 다가온다. ‘말없이 건네주고 달아난 차가운 손/ 가슴속 울려주는 눈물 젖은 편지….'

이처럼 편지는 진한 감동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베르테르의 편지'는 못다 이룬 사랑에 가슴앓이하는 그 시대 젊은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미국 줄리아드 음대에 입학한 최초의 동양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씨는 음악을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지만 어머니가 써주신 10장의 ‘손편지'를 끼고 다니며 힘든 시간들을 이겨냈다고 한다. 필자도 대학시절 고향으로부터 꼬박꼬박 날아온 ‘어머니의 편지'를 지금껏 ‘가보'처럼 보관하고 있다. 누군가가 그리우면 가장 먼저 찾는 것이 남겨진 편지이다. ‘손편지'는 척박하고 메마른 세상에 그늘 같은 쉼터가 된다. 고달픈 출근 길, 우연히 발견된 "아빠, 힘내세요"라는 딸아이의 편지보다 더 신나고 힘나는 격려는 없을 것이다.

세계적인 명문대학인 미국 MIT(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는 글쓰기 교육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글쓰기 강사 교육용 예산으로 1년에 200만 달러를 쓴다. 이공계 대학이 주축인데도 글쓰기에 엄청난 예산을 투여하는 것은 아무리 훌륭한 연구를 해도 글로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면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천재성이 묻혀버리기 때문이다.그래서 MIT는 과학기술 발전에 도움이 될 값진 연구 성과를 널리 알리기 위해 글쓰기를 전 학년에 정규과목으로 두고 ‘글쓰기와 의사소통센터'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글쓰기를 활용한 소통능력의 중요성은 누구나 익히 알고 있지만, 사실 글쓰기는 쉽지 않다. 특히 요즘처럼 인터넷과 SNS의 범람으로 단문과 단순한 의사표현에 익숙한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먼저 깊이 생각해야 한다. 또 읽는 사람을 항상 고려해야 한다.

좋은 글쓰기에는 편지만한 게 없다. 한 통의 편지를 쓰기 위해서는 무엇을 쓸 것인지, 받는 사람은 어떻게 느낄 지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담아야 하고, 게다가 중간중간 문맥이나 단락을 부드럽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편지는 역시 ‘손편지'다. 차가운 키보드를 두드려 쉽게 지우고 쓴 이메일과 달리 펜을 들고 하얀 종이에 꾹꾹 눌러쓴 편지를 보면 누구나 진심을 느낄 수 있다. 미사여구를 나열하거나, 유명한 글귀를 인용하면 멋스러움은 있을지 몰라도 감동을 자아내지는 못한다. 그래서 편지는 ‘꾸미는 데서 시들고, 진실한 데서 피어난다'고 한다.

<독서신문>은 얼마 전 『편지가 꽃보다 아름답다』라는 ‘북 레터' 형식의 책을 출간한 바 있다. 예쁜 편지지를 앞 부분에 넣어 ‘친필'로 ‘사랑'을, ‘행복'을 담아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할 수 있도록 했다. ‘북 레터'라는 새로운 상상이 메마른 사람들의 가슴 속을 단비처럼 적셨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담은 것이었고,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독서신문>은 창간 46주년을 맞은 올해에도 ‘사랑의 손편지 쓰기'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갈 계획이다.

‘마음의 꽃' 편지는 닫혔던 세상을 녹이는 희망이 된다. 짤막해도 친필로 전하는 메시지는 큰 격려가 된다. 고된 직장생활에 지친 아빠에게, 온 몸에 성한 데가 없으면서도 자식만을 걱정하시는 엄마에게, 오랫동안 못 뵌 스승님께, 마음을 열지 못했던 친구·선후배에게, 사랑하는 마음만은 꼭 전하고 싶은 연인에게 이 봄, 한 통의 ‘손 편지'를 보내보자.

못 쓰는 글씨이면 어떤가. 맞춤법·철자가 좀 틀리고, 문장이 더러 꼬이면 어떤가. 정성이 가득 담긴 ‘손편지'라면 받는 사람에게 감동을 안겨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세상은 그만큼 더 풍요롭고, 아름다워질 수 있을 것이다.

편지는 말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과거와는 다르게 말이 조금씩 가벼워지면서 글의 강점이 더욱 부각되기도 한다. 이에 따라 글로 쓴 편지만이 줄 수 있는 감정이입에 사람들은 감동을 받게 된다. 편지를 쓰기 위해 일일이 편지지와 봉투를 구입했을 것이며, 그 편지에 쓴 글들을 하나하나 써내려갔을 것이며, 또한 상대방을 생각하며 말보다는 다른 깊음으로 한번 더 생각해서 작성했을 편지에서 더욱 많은 감동을 받는 건 당연할 것이다.

펜촉에 잉크를 콕콕 찍어 쓰는 낭만은 이제 아스라한 추억이 됐지만, 볼펜이면 어떻고 연필이면 어떤가. 내 마음을 다 풀어내 바닥이 훤히 보일 때까지 ‘손편지'를 써보고 싶은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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