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가 보인다, 분인주의와 존재의 본질
미래가 보인다, 분인주의와 존재의 본질
  • 한지은 기자
  • 승인 2015.03.27 15: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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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우리의 근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데뷔 10년을 맞은 저자 히라노 게이치로는 현대인의 정체성이라는 주제에 꾸준히 시선을 두고, ‘개인’의 개념이 점점 사라져 가는 근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시공을 초월하는 인간 본연의 가치, 상실과 희망의 이야기를 완성해냈다.

2033년 여섯 명의 우주인을 태운 NASA의 우주선 ‘던’이 인류 최초로 유인 화성탐사에 성공한다. 대지진으로 어린 아들을 잃은 아픔 경험을 딛고 ‘던’의 우주비행사로 지원한 일본인 외과의사 사노 아스토는 2년 반의 임무를 마치고 지구로 귀환함과 동시에 영웅 대접을 받지만, 곧 그가 화성에서 겪은 모종의 사건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다.

인간처럼 행동하고 사고하는 홀로그램이 등장하고, 콘택트렌즈형 모니터를 통해 그 자리에서 상대의 신원을 파악하며, 거리 곳곳의 CCTV에 찍힌 얼굴로 시시각각 모든 행적이 감시되는 사회. 이 책에서 그려지는 2030년대는 꼭 막연한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지금의 과학기술과 실제 사례 등을 통해 얼마든지 유추할 수 있는, 말 그대로 ‘별로 멀지 않은 미래’의 모습이다.

CCTV의 공개화로 이름이나 ID뿐 아니라 얼굴로도 신원 검색이 가능해지면서 피부에 넣은 보형물을 조정해 생김새를 조금씩 변형할 수 있는 가소성형 기술도 등장한다. 즉, 끊임없이 서로를 감시하면서 동시에 그 눈길을 피하려 노력하는 시대이다.

이와 같은 사회현상 속에서 갈수록 모호해질 수밖에 없는 개인의 정체성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 작가는 ‘분인주의’라는 새로운 사상을 내놓는다. 여러 개로 나눌 수 없는 고유의 개인이 실은 무수한 분인의 집합체로 이뤄져 있으며, 상대와 상황에 따라 분인의 정체성이 달라진다는 이 개념은 작품 속 미래세계에서는 이미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돼 폐쇄공간과 한정된 인간관계 속에서 고뇌와 갈등을 겪는 우주비행사들의 정신적 문제를 설명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인간의 몸은 하나뿐이니 그걸 나눌 방법은 없지만, 실제로 우리 자아는 상대에 따라 다양하게 나뉘어. 당신과 마주하는 나, 부모님과 마주하는 나, NASA에서 노노와 마주하는 나, 실장과 마주하는 나. ……원만한 관계를 위해서는 아무래도 바뀔 수밖에 없지. 이런 현상을 개인의 분인화라고 하는 거야. 그리고 그 각각의 내가 분인이지. 곧 개인은 분인의 집합인 셈이고. ―이런 사고방식을 분인주의라고 해.                                                                                       -본문 중에서

우주탐사 계획을 둘러싼 정치적 이해관계, 그릇된 애국심을 부추기는 전쟁과 테러, 유명인에 대한 매스컴의 속성 등 다양한 소설 속 주제를 하나로 묶는 이 분인주의는 곧 주인공 아스토의 개인적인 고뇌로도 연결된다. 화성에 다녀온 인류의 영웅으로서, NASA 소속의 우주비행사로서,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는 한 가정의 남편으로서 아스토가 갖고 있는 각각의 분인이 충돌하며 빚어지는 갈등이 셈이다.

예측 가능한 미래의 한 면을 제시하며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던』은 철저한 조사와 사실 검증을 바탕으로 한 뛰어난 상상력의 결실이자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로서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라 할 수 있다.

■ 던-중력의 낙원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펴냄 | 600쪽 | 15,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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