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들의 ‘미생’ 이야기
철학자들의 ‘미생’ 이야기
  • 한지은 기자
  • 승인 2015.03.27 15: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서신문] 직장 스트레스로 나날이 다크서클이 발끝까지 뻗어 나가는 이 시대의 직장인들은 말한다. “성인군자나 박학다식인 사람이 온다 해도 회사생활은 못 버틸 거야”라고. 그래서 그들이 직장으로 왔다.

사회 초년생 케빈 플라톤은 광고·홍보 분야의 세계적 대기업 코기톱에서 영업부장으로 일하고 있는 친척 장 클로드 소크라테스 덕분에 인턴사원으로 일하는 행운을 얻는다. ‘창의력으로 정복하라!’는 모토에 걸맞게 이 회사의 장 필립 디외 사장 휘하 전 임직원은 쟁쟁한 철학자들로 구성돼 있다.

인력자원실의 책임자 니체, 직원들의 근무 상태를 실시간 ‘감시’하고 ‘처벌’하는 보안감시실장 푸고, ‘현장 참여’를 늘 강조하는 영업고객관리실장 사르트르, 사장의 노련한 자문역 마키아벨리, 충성파 비서실장 테레즈 다빌라, 끊임없이 싸움을 벌이는 영업1과장 볼테르와 영업2과장 루소, 낡은 아이디어의 재생산을 혐오하는 개발1과장 부르디외, 원본의 대량복사 책임을 맡은 자료복사과장 벤야민, 파업 전단을 만드는 노조위원장 마르크스, 시험적으로 채용돼 35년째 시도만을 계속하고 있는 비정규직 사원 몽테뉴, 고장 난 기계들을 해체하고 수리하는 유지보수 담당 사원 데리다, 회사 안을 어슬렁거리며 사원들에게 충고를 던져주는 무보직 비정규직 사원 에피쿠로스, 회사 안을 뛰어다니며 온갖 정보를 전달하는 비정규직 배달사원 베르나르 앙리 레비, 소원을 품은 직원을 사장에게 데려가 면담을 주선해주는 노조 임원 토마스 아퀴나스 등 코키톱의 임직원들은 각자 자기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전문가들이다.

각자의 철학이 뚜렷하고 세계와 인간에 대해 각각 생각이 다를뿐더러 주장과 행동이 유별난 상사와 동료 사이에서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한 미생 플라톤은 하는 일마다 실수투성이이며 하는 말마다 면박을 당하기 일쑤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가져오라는 소크라테스 부장의 심부름에 독약을 가져와 응급사태가 벌어지고, 화장실에 들어간 데카르트 과장을 CCTV로 감시하는 푸코 실장에게 주제넘게 ‘윤리’ 운운했다가 불벼락을 맞고, 니체 실장의 옷에 음식을 쏟아버리고, 회사가 오랫동안 공들여 중국과 서명한 계약서를 망쳐놓는다.

‘직장’이라는 삶의 현장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는 플라톤의 좌충우돌 체험기를 읽으면서 독자들은 드라마로 연출된 철학적 성찰을 통해 자신의 일상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그저 코믹하게만 보이는 사건들은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들을 꿰뚫고 있다. 이 책을 읽고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전혀 다른시선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볼 수 있다.

저자 샤를 페팽과 쥘은 주인공 케빈 플라톤을 중심으로 엉뚱하고 황당한 사건들이 이어지는 시트콤 같은 구성을 펼쳐냈다. 쥘의 풍자적 만화에 이어지는 페팽의 재치 있는 해설은 주요 철학자들의 대표적 주장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철학에 호기심을 느끼는 독자들에게 친절한 길잡이가 될 수 있는 책이다.

■ 철학 주식회사
샤를 페팽 지음 | 쥘 그림 | 이나무 옮김 | 이숲 펴냄 | 176쪽 | 15,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