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20) 「만복사저포기」와 닭의 울음소리
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20) 「만복사저포기」와 닭의 울음소리
  • 한지은 기자
  • 승인 2015.03.26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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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민제 칼럼니스트
아침을 알리는 닭 울음의 의미는 한편으로는 광명이고, 한편으로는 이별이다.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심청이는 닭 울음을 두려워했다. 닭이 울면 뱃사람들과 약속한 날이 되어 세상과 이별해야 하기 때문이다. '닭아 닭아 울지 말라/ 네가 울면 날이 새고/ 날이 새면 나 죽는다'는 애잔한 노래는 째깍거리는 초침처럼 죽음의 시간을 알리고 있다. 구비문학에서는 사랑하는 임과 이별할 때 닭의 울음이 곧잘 등장한다.

제사를 지낼 때도 닭 울음이 분기점이다. 닭 울음은 어둠이 물러가고 새 날이 밝는 상징이다.  하루가 지나 혼령의 날이 아닌 셈이다. 혼령은 서둘러 인간과 이별한다. 조상신은 물론이고 잡귀도 닭 울음 전에 떠난다. 닭 울음에 귀신이 두려워하는 이유는 햇빛 때문이다. 해가 떠오르면 영혼은 불안하다. 밝음을 피해 몸을 사리지 않을 수 없다.

김시습의 소설 『금오신화』에도 닭 울음이 나온다. 부처님과 노총각이 내기를 하는 「만복사저포기」다. 한 구절을 본다. "이제 님 곁을 떠나야 할 시간입니다. 소녀는 이미 죽어 땅속에 묻힌 몸입니다. 새벽닭이 울면 님을 떠나 저승으로 가야 합니다."

「만복사저포기」는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아픔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소설이다. 김시습은 세조가 단종에게서 왕위를 빼앗자 세상을 등졌다. 힘과 정의 앞에서 고민한 그는 이상적인 모습이나 염원을 소설 형식으로 표현했다. 세조가 단종을 폐한 현실을 고발하고 싶은 마음을 우회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만복사저포기」도 현실 도피적이면서 소극적으로 고발하는 작가의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전라도 남원에 노총각 양생이 살았다. 어릴 때 부모를 잃은 그는 만복사에서 외롭게 살았다. 그는 신세가 한탄스러웠다. 어느 봄날에 양생은 부처님께 저포놀이 제안을 했다. 이기는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스스로 약속했다. 부처님이 이기면 양생이 꾸준히 불공을 올리고, 자신이 승리하면 배필을 구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양생은 스스로 부처님이 되고, 자신이 되어 게임을 했다. 결과는 양생의 승리였다.

마침 아름다운 여인이 부처님께 불공을 드리려고 찾아왔다. 여인에게는 아픔과 외로움이 있었다. 왜구 침범 때 숨어서 정절을 지킨 그녀는 쓸쓸함에 떨고 있었다. 불상 뒤에 숨어 여인의 사연을 들은 양생은 뛰쳐나갔다. 눈이 맞은 둘은 만복사의 방에서 하루를 보냈다. 닭이 울 때가 되자 여인은 양생과 함께 자기 집으로 갔다. 둘은 집에서 사흘을 머물렀다. 여인은 "이곳의 사흘은 인간세상의 삼 년"이라며 헤어질 시간임을 말했다. 그녀는 사랑의 증표로 주발을 내주며 만남을 약속했다.

양생은 여인과 약속한 장소로 가는 도중에 여인의 부모인 양반 일행을 만났다. 여인의 부모는 지난해 왜구에게 죽임을 당한 딸의 제사를 위해 가는 길이었다. 만남의 장소인 절에 도착했을 때 여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둘은 부모의 허락 하에 절의 한 방에서 밤을 지새웠다. 날이 밝을 때가 다가오자 여인의 영혼은 다시 떠났다. 양생은 여인의 부모로부터 많은 재산을 받았다. 그러나 양생은 재산을 모두 팔아 그녀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훗날 여인이 나타나 양생에게 말했다. 님의 은덕을 입어 다른 나라에서 남자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양생은 그 뒤 지리산으로 들어가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

닭의 울음은 민족의 애환이나 정서와 맞닿아 있다. 닭 울음은 안타까움과 아쉬움으로만 끝나지는 않는다. 깊이 생각하면 역설적으로 슬픔을 정화하며 다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준다. 닭 울음은 밝음을 알리고, 이별을 소개한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고 있다. 문학작품 등에 나타난 닭 울음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삶이 더욱 윤택해질 듯하다.

■글쓴이 백민제는?
맛 칼럼니스트다.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10년의 직장생활을 한 뒤 10여 년 동안 음식 맛을 연구했다. 특히 건강과 맛을 고려한 닭고기 미식 탐험을 했다. 앞으로 10여년은 닭 칼럼니스트로 살 생각이다. 그의 대표적 아이디어는 무항생제 닭을 참나무 숯으로 굽는 '수뿌레 닭갈비'다. www.supu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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