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18) 솔거의 소나무와 변상벽의 어미 닭
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18) 솔거의 소나무와 변상벽의 어미 닭
  • 한지은 기자
  • 승인 2015.03.23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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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민제 칼럼니스트
신라에 솔거가 있다면 조선에는 변상벽이 있다. 신라의 화가인 솔거에 대한 출생기록, 활동시기, 가족관계 등은 베일에 가려있다. 그러나 아주 뛰어난 화가였음은 일화를 통해 알 수 있다. 『삼국사기』의 기록이다.

한미한 집안 출신으로 추정되는 솔거는 태어나면서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 일찍이 황룡사 벽에 노송을 그렸다. 나무의 몸통과 줄기는 비늘처럼 터져 주름졌다. 가지와 잎은 얼기설기 굽이쳤다. 까마귀, 솔개, 제비, 참새가 이따금 산 나무인줄 알고 멀리서 날아들었다. 소나무로 착각한 벽화에 앉으려다 떨어지곤 하였다. 세월이 흘러 그림이 흐려졌다. 승려가 단청으로 덧칠을 했더니, 까마귀와 참새가 다시는 오지 않았다.

그림 실력이 워낙 뛰어난 그의 소나무 작품을 새들이 진짜로 착각했다는 것이다. 솔거에 버금가는 대단한 화공이 조선에도 있었다. 숙종 영조 시대에 활약한 변상벽이다. 자는 완보(完甫), 호는 화재(和齋)인 변상벽은 특히 닭과 고양이 그림을 잘 그려 변계(卞鷄), 변묘(卞猫)라는 애칭을 얻었다. 숙종 때 화원(畵員)을 거쳐 현감에 임용됐다. 영조 어진을 두 차례 그린 그는 초상화에도 능해 국수(國手)라는 칭호를 받았다.

사실주의 화법을 전개하는 변상벽은 어미닭과 병아리를 생동감 넘치게 그렸다. 그의 정밀한 어미닭 그림에 감탄한 실학자 정약용은 '수탉이 오인할 듯하다'는 칭찬을 했다. 솔거의 황룡사 노송 그림에 새들이 날아왔듯이 변상벽의 암탉 그림에 수탉이 달려들 것 같은 느낌을 적은 것이다.

정약용의 문집 『여유당전서』에 소개된 '제변상벽모계영자도(題卞相璧母鷄領子圖)'를 감상한다. 변상벽이 그린 어미닭과 병아리 그림에 대한 느낌 글이다.

변상벽은 변고양로 불리듯이 고양이 그림이 일품이네. 이번에 그의 닭과 병아리 그림을 보니 모두가 살아있는 듯하네. 주위를 경계하는 어미닭은 사나운 표정일세. 목덜미 털 곤두선 고슴도치 형상으로 꼬꼬 거리며 바짝 긴장했네. 방앗간 주변에서 땅바닥을 파헤쳐 곡식을 찾아나네. 그러나 또 쪼는 척하며 배고픔을 참아내는 어미일세. 위험한 게 없는 듯 한데 놀라 푸닥거리니 숲에서 올빼미가 지나가네. 자애로운 모성은 천부적이리라. 병아리들의 황갈색 털 부리는 연하고, 닭 벼슬은 아직 제 색을 내지 못하네. 그래도 두 병아리 지렁이 먹이를 놓고 쫓고 쫓기네. 한 녀석은 어미 뒤에서 가려운 곳을 비비고 한 놈은 혼자 떨어져 배추 싹을 쪼고 있네. 세밀하고 정확한 묘사가 도도한 기운으로 생동하네. 나중에 들었는데 변상벽이 처음 어미 닭을 그렸을 때 수탉이 오인할 정도였다네. <하략>

다산 정약용은 변상벽의 어미 닭과 병아리(鷄圖)를 보고 이 시를 썼다. 이 그림은 꽃과 나비가 춤추고 벌이 등장하는 봄날이 배경이다. 또 붓 몇 번으로 단순화시켰지만 괴석도 등장한다. 정약용은 어미 닭과 병아리의 정겨운 모습과 함께 털마다 넘치는 역동감에서 실제 닭을 느꼈다. '도도한 기상을 막을 수 없다'는 표현은 실제 닭으로 평가한 것이다. 그림에는 한 마리의 어미 닭과 14마리의 병아리가 있다.

어미 닭에게는 책임감이 느껴진다. 새끼를 지키려는 눈이 살아있고, 약간 통통한 몸은 어미의 넉넉함으로 이해된다. 윤기 흐르는 털은 뛰어난 사리판단력을 암시한다. 십 수 마리의 새끼를 키울 수 있는 위엄이 보인다. 어미 닭은 잡은 벌 한 마리를 새끼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고개를 숙인다. 병아리 여섯 마리가 본능적으로 어미 닭을 둘러싼다.

병아리들의 부드러운 솜털 모습도 눈에 띈다. 새끼들의 먹이에의 집중과 딴 짓의 적나라한 행위는 이 그림을 더욱 포근하게 해준다. 어미 닭의 뒤꽁무니에서 숨은 녀석, 어미 다리에서 졸음에 빠진 놈, 먹이 앞에서 다투는 병아리, 어미 주변에서 서성이는 몇 놈, 혼자 외톨이가 된 새끼, 물 한 모금 마시고 하늘을 보는 한량 등은 사람의 그것도 연상시킨다.

필자는 이 그림에서 포근함을 본다. 어미 닭과 병아리들의 평화로운 모습이다. 물론 어미 닭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먹이를 마련하는 등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병아리들은 사람에 비유하면 천진난만한 행복한 모습이다. 가족은 어른의 희생과 아이의 아이다움으로 살갑게 된다. 변상벽의 그림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은 무엇보다 어미 닭의 넉넉함과 스킨십 거리감이 아닐까.

■ 글쓴이 백민제는?
맛 칼럼니스트다.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10년의 직장생활을 한 뒤 10여 년 동안 음식 맛을 연구했다. 특히 건강과 맛을 고려한 닭고기 미식 탐험을 했다. 앞으로 10여년은 닭 칼럼니스트로 살 생각이다. 그의 대표적 아이디어는 무항생제 닭을 참나무 숯으로 굽는 '수뿌레 닭갈비'다. www.supu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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