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17) 봉황으로 변신한 닭
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17) 봉황으로 변신한 닭
  • 이보미 기자
  • 승인 2015.03.20 17: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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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민제 칼럼니스트
조선시대는 살기가 어려웠다. 서민들만 힘들었던 게 아니다. 상당수 양반도 식사 해결이 버거웠다. 이앙법이 보급된 조선 후기에는 먹거리가 다소 나아졌지만 민중의 삶까지 좋아진 수준은 아니었다. 그래도 백성의 의식은 조선 전기에 비해 몰라보게 높아졌다. 살기가 힘들면 많이 차지하려는 투쟁이 더해진다. 힘 있는 사람이 더 갖게 된다. 이에 대한 반발로 조선 후기에 풍자 야담이 널리 유행했다. 서북인에 대한 차별이 홍경래난을 부르고 김선달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집권층 실세에서도 불합리한 제도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방랑시인 김삿갓 같은 이가 나타났다.

김선달의 구전설화는 위선적인 지도층을 골탕 먹이는 데서 백성에게 카타르시스를 선물했다. 그는 건달 행세를 하며 지체 높은 양반, 돈 많은 재벌, 위선적인 종교인을 골탕 먹인다. 그에게 '봉이'라는 애칭이 붙은 것은 닭과 연관이 있다. 닭을 봉황으로 말한 데서 연유됐다.

장 구경을 하던 김선달이 은근슬쩍 사람을 속이는 닭장수를 보았다. 괘씸하게 생각한 김선달은 닭장수를 골려줄 계획을 했다. 닭장 안에는 유달리 크고 모양이 좋은 닭 한 마리가 있었다. 김선달은 주인에게 어리숙하게 닭을 보고 '봉(鳳)'이 아니냐고 물었다. 김선달은 닭장수에게 거금을 주고 닭을 샀다. 김선달은 사또에게 달려갔다. 천하에 귀하뒤 귀한 봉황을 바친다고 했다. 사또가 보니 평범한 닭이었다 조롱당한 기분이 든 사또는 김선달의 볼기를 쳤다. 김선달은 "닭 장수가 봉이라고 했기에 사또에게 선물한 것"이라고 억울함을 하소연했다. 사또는 닭 장수를 잡아오게 했다. 그 결과 김선달은 닭 장수에게서 닭 값과 볼기 맞은 값으로 많은 배상을 받았다. 김선달은 닭을 '봉'으로 속는 척하여 닭장수를 골려준 뒤로 '봉이'라는 별칭을 얻게 됐다.

이 같은 이야기는 구전으로 전해지다 1906년 <황성신문>에 소개되면서 글로 남게 되었다. 상서로운 동물인 봉황은 수컷이 봉, 암컷이 황으로 불린다. 둘 다 합해서 봉으로 호칭된다. '악집도(樂汁圖)'에는 봉황의 모습을 닭의 머리와 제비의 부리, 뱀의 목과 용의 몸, 기린의 날개와 물고기의 꼬리를 가진 동물로 묘사했다. 닭의 모습이 조금 있는 이 새가 세상에 나타나면 천하가 크게 안녕할 것으로 믿었다. 김선달이 사또에게 닭을 봉으로 바친 것은 이 같은 엄청난 상징성 때문이다. 또 사또가 격분한 것도 이루어질 수 없는 내용으로 자신을 속이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김선달은 이 같은 점을 미리 계산한 것이다.

메시아적인 뜻을 담고 있는 봉황의 출현은 백성의 소망이기도 했다.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에서는 동명왕 10년과 유리왕 2년에 푸른빛 봉황이 왕궁에 날아들었다. 대무신왕 3년에는 부여국에서 붉은빛 봉황을 선물로 받았다. 봉은 선비의 지조이기도 했다. '봉은 굶주려도 좁쌀은 쪼지 않는다'는 속담이 그것이다. 선택받은 사람을 자처한 양반은 공부를 통해 백성을 가르치는 존재로 스스로를 정의했다. 따라서 책과 농업 외에는 종사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굶주려도 다른 일을 하지 않는 다는 게 속담으로 정착된 것이다. 또 뛰어난 인물을 상징한 봉황은 여러 속담을 만들었다. '닭의 새끼 봉이 되랴', '닭이 천이면 봉이 한 마리 있다' 등이다.

그러나 봉황은 상상속의 새이다. 소원이 이뤄지지 않는 안타까움이 조선 중기의 학자 김응정의 시조에 담겨있다. 경기민요의 노랫가락으로도 읊어지는 시조를 감상한다. '울밑에 벽오동 심어 봉황을 보렸더니/ 봉황은 아니오고 날아드니 오작이로다/ 동자야 저 오작 쫓지 마라 봉황이 앉게.'

■글쓴이 백민제는?
맛 칼럼니스트다.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10년의 직장생활을 한 뒤 10여 년 동안 음식 맛을 연구했다. 특히 건강과 맛을 고려한 닭고기 미식 탐험을 했다. 앞으로 10여년은 닭 칼럼니스트로 살 생각이다. 그의 대표적 아이디어는 무항생제 닭을 참나무 숯으로 굽는 '수뿌레 닭갈비'다. www.supu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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