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11) 헤르만 헤세와 '줄탁동시'
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11) 헤르만 헤세와 '줄탁동시'
  • 이보미 기자
  • 승인 2015.03.12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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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민제 칼럼니스트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의 한 구절을 읽는다. 마음을 되잡고 싶은 날의 일상이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헤세는 생명 탄생의 가치와 고통을 말하는 듯하다. 새로운 세상은 기존의 것을 넘어설 때 보인다. 새로운 세계를 맛보는 것은 여러 사람의 힘이 필요하다.

헤세의 생각은 불서(佛書)의 '줄탁동시'와 같은 맥락이다. 고승이 제자를 인도하여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돕는 행위다. 이것은 닭과 병아리에서 힌트를 얻었다. 줄은 떠들 줄, 탁은 쫄 탁이다. 알에서 병아리가 되는 과정은 만만찮다. 먼저, 어미 닭이 21일 동안 가슴으로 알을 품어야 한다. 어미닭은 알을 품을 때가 되면 가슴의 털이 저절로 빠진다. 부화에 최적인 37.5도로 품기 위함이다. 또 알을 2~3시간 간격으로 굴려 온기를 골고루 간직시킨다. 이 과정이 잘 되면 알 속에서는 병아리가 성장한다. 부화를 시작한 병아리는 시간 안에 껍질을 깨고 나와야 생명체가 된다. 알 속에서 병아리로 너무 지체하면 질식사한다.

병아리는 혼신의 힘을 다해 껍질 깨기를 시도한다. 세상 밖의 어미 닭에게 나가겠다는 신호를 보낸다. 병아리는 달걀 안쪽에서 부리로 껍질을 계속 쪼아댄다. 때맞춰 어미 닭은 껍질을 쪼아 병아리에게 희망을 심어준다. 병아리와 어미 닭이 동시에 껍질을 깨는 노력으로 한 생명체가 태어난다. 생명체는 주위의 도움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어미 닭은 자신의 가슴 털을 뽑고, 21일간 줄곧 알을 품고, 껍질을 깨는 사랑을 한다. 그런데 더 의미 있는 것은 어미 닭이 껍질을 완전히 깨뜨리지 않고 작은 구멍만 내는 점이다. 병아리가 스스로 큰 구멍을 만들어 나올 수 있는 계기만 제공하는 것이다. 어미 닭은 작은 구멍을 낸 뒤 병아리의 행동을 지켜봐 준다. 무언의 응원이다. 이를 통과한 병아리는 세상을 독립된 존재로 살아가게 된다.

생명의 경이로움은 병아리의 부리에서도 알 수 있다. 병아리는 부리 위쪽에 볍씨보다 작은 돌기를 갖고 태어난다. 딱딱하고 뾰족한 부리의 돌기는 껍질을 깨는 망치 역할을 한다. 세상에 나오면 이 돌기는 쓸모가 없다. 병아리가 모이를 먹을 때쯤이면 자연스럽게 떨어진다. 탄생은 실로 아름답다. 시인 김지하는 '사랑이여, 탄생의 미묘한 때를 알려다오. 껍질 깨고 나가리. 박차고 나가 우주가 되리. 부활 하리'라고 노래했다. 시인의 마음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필자는 새 생명의 아름다움과 환희, 더 큰 생각으로 풀이하고 싶다. 생명은 껍질을 깨는 데서 비롯됨을 시인 김지하, 소설가 헤르만 헤세, 불가의 선인들이 공통적으로 본 것이다.

'줄탁동시'에서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엿볼 수 있다. 부모가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는 자식에게 불효 소송을 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재산청구 소송을 하기도 한다. 제 잘난 맛에 산 결과일 듯 싶다. 또는 기대심리가 너무 큰 탓일 수도 있다. 이 때 병아리와 어미 닭이 껍질을 같이 깨는 '줄탁동시'를 생각하면 좋겠다. 생명은 경이롭고 아름답다. 그런데 어미와 자식 사이에 불협화음이 있으면 얼마나 비통하겠는가. 세상에 쉬운 게 없다. 쉽게 태어나고, 쉽게 얻은 것 같지만 병아리의 부화처럼 어려움과 도움의 연속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사람은 지성의 존재다. 사람의 체온은 36.5도다. 한낱 날짐승인 어미닭도 가슴털이 다 빠지는 고행을 통해 자식을 키운다. 사람은 가슴은 물론 마음까지 다 새카맣게 타들어 가면서 아이를 지킨다. 자식은 부모의 뼈와 살을 통해 생명이 부여됐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관계는 부모와 자식 사이다. 부모와 자식은 그래서 뗄래야 뗄 수가 없는 존재다.

■ 글쓴이 백민제는?
맛 칼럼니스트다.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10년의 직장생활을 한 뒤 10여 년 동안 음식 맛을 연구했다. 특히 건강과 맛을 고려한 닭고기 미식 탐험을 했다. 앞으로 10여년은 닭 칼럼니스트로 살 생각이다. 그의 대표적 아이디어는 무항생제 닭을 참나무 숯으로 굽는 '수뿌레 닭갈비'다. www.supu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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