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10) 닭에게서 배우는 자녀교육
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10) 닭에게서 배우는 자녀교육
  • 이보미 기자
  • 승인 2015.03.11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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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민제 칼럼니스트
"노후 계획은 꿈도 꾸지 못한다." 많은 중년의 하소연 내용이다. 하루가 살기 버거워 은퇴 후 생활설계에 엄두를 낼 겨를이 없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힘든 것은 자녀의 교육비 지출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 한 일간지에서는 억대 연봉을 받는 한 직장인의 애환을 다루었다. 그의 연봉은 1억2천만원이다. 이는 지구촌 72억 인구 중에 상위 0.07%만 올리는 고소득이다. 하지만 그의 삶은 팍팍하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없는 그는 집 마련과 생활비로 버는 돈을 다 쓴다. 생활비 중 두 아들의 사교육비는 무려 월 3백만원에 이른다. 각종 공과금, 국민연금, 애경사비 등을 지출하다 보면 미래를 위한 저축이 아예 없다. 사교육비 지출은 정부 발표와 시민사이에 온도 차이가 있다. 월 몇 백만원씩 지출하는 가정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게 정부 통계다.

그러나 물려받은 재산이 없는 억대 연봉자도 교육비 탓에 허덕이는 것은 현실임을 알 수 있다. 한국의 교육열은 유난하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원스톱 교육체계가 잘 잡혀 있다. 대학 입학 정원과 고등학교 졸업 정원이 엇비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교육까지 의존해야 경쟁에서 앞설 수 있는 아픔도 있다. 도심의 몫 좋은 곳에는 수학, 영어, 논술, 예체능 학원이 즐비하다. 서울의 대치동 목동 중계동 등 이른바 교육특구의 학원가에는 늦은 시간에 주차전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밤까지 공부한 자녀를 태우러 온 부모들이 일시에 몰리기 때문이다. 자녀는 청춘을 공부에 내몰리고, 부모는 뒷바라지에 허리가 휜다.

이 같은 교육열은 우리나라의 경제 기적을 이끌었다. 하지만 이제는 고민할 시기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학교를 졸업했지만 취업은 가뭄에 콩 나기처럼 어렵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녀를 사랑할 것인가. 지혜로운 사랑이다. 그 힌트를 애꾸눈 닭의 병아리 키우는 법에서 찾을 수 있다.

조선 중기의 학자인 이익의 『성호집』에 「할계전」이 나온다. 「할계전」은 '애꾸눈 닭의 이야기'로 번역될 수 있다. 이익은 닭의 행동을 관찰한 뒤 바른 자녀교육을 스스로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으로 설명했다. 부모가 다 해주는 것은 자연에서의 생존율이 그리 높지 않음도 예시했다. 이익이 생각한 핵심 키워드는 '치대국자(治大國者) 약팽소선(若烹小鮮)'이다. 노자에 나오는 이 표현은 정치의 방법이다. '나라를 다스릴 때는 작은 생선을 살피듯 조심스럽게 하라'는 것이다. 작은 생선은 살이 연하다. 젓가락으로 뒤집으면 쉬 부서진다. 뼈나 내장을 제거하려다 생선의 형태를 잃을 수도 있다. 매우 조심스럽게 불의 세기를 조절하며 익혀야 한다. 이익은 노자의 이 표현을 애꾸눈 닭의 자녀 사랑 방법으로 설명했다. 그가 관찰한 애꾸눈 닭의 이야기다.

오른쪽 눈이 완전히 멀고, 왼쪽 눈은 겨우 뜬 닭이 있었다. 먹이도 힘겹게 쪼아 먹고, 눈이 어두워 담장에 부딪히기도 했다. 이 닭이 알을 품었고 병아리를 깨어 나왔다. 주인은 닭이 병아리를 키울 수 없을 것으로 짐작했다. 닭은 항상 섬돌과 뜰 사이에서 떠나지 않았고, 병아리는 쑥쑥 자랐다. 다른 닭이 부화시킨 병아리가 많이 죽은데 비해 애꾸눈 닭의 새끼는 온전했다.

이익은 병아리 키우는 어미닭의 기술을 두 가지로 보았다. 하나는 먹이를 잘 구해 주고 위험에서 막아주는 것이다. 성한 닭의 모습이다. 어미 닭은 먹이를 구하고, 까마귀와 솔개 고양이 개 등과 싸우느라 부리와 발톱이 닳았다. 사납게 싸우지만 때로는 힘이 빠져 병아리의 열에 예닐곱은 죽는다. 또 하나는 애꾸눈 닭의 방법이다. 먹이를 구해 주기 어려운 애꾸눈 닭은 항상 두려움을 품고 느릿느릿 움직이면서 병아리들을 자주 감싼다. 이에 병아리들은 스스로 먹이를 쪼아 먹는다.

이 대목에서 이익은 무릎을 친다. 새끼를 기를 때에는 작은 생선을 바르듯이 조심스럽게 함을 깨달은 것이다. 애꾸눈 닭은 작은 생선을 다루듯 해 어린 병아리를 온전히 길렀다. 이익의 말을 들어본다. "나는 잘 기르는 방도가 먹이를 먹여주는 데에 있는 게 아니라 적당히 보살피면서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해 주는 데에 있음을 알았다. 이는 잘 거느리면서 잊어버리지 않는 데에 있다. 나는 애꾸눈 닭의 병아리 키우기를 통해 올바른 자녀교육법을 터득했다."

이익이 닭에게서 배운 자녀교육법을 오늘에 적용해본다. 부모의 무조건적인 희생보다는 자녀가 설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 뒤 기다려보는 것이다. 아이 스스로 판단하고 노력하는 가운데 험한 세상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하지만 평생 자녀 걱정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게 어버이 마음이다. 두뇌로는 이성적 판단이 가능한데, 가슴으로는 헬리콥터 부모가 되는 것 또한 인지상정이 아닐까.
 

■ 글쓴이 백민제는?
맛 칼럼니스트다.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10년의 직장생활을 한 뒤 10여 년 동안 음식 맛을 연구했다. 특히 건강과 맛을 고려한 닭고기 미식 탐험을 했다. 앞으로 10여년은 닭 칼럼니스트로 살 생각이다. 그의 대표적 아이디어는 무항생제 닭을 참나무 숯으로 굽는 '수뿌레 닭갈비'다. www.supu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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