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6) 웰빙시대와 무 항생제 닭
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6) 웰빙시대와 무 항생제 닭
  • 이보미 기자
  • 승인 2015.03.05 09: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백민제 칼럼니스트
무 항생제 닭은 웰빙시대에 제격이다. 닭이 먹은 항생제가 인체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매사 안심, 특히 먹거리 안심족에게는 항생제는 부담스럽다. 이런 점에서 항생제를 전혀 맛보지 못하고 자란 닭은 인기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항생제를 먹이지 않고 키우는 것은 쉽지 않다. 닭이 면역력을 키울 수 있는 충분한 운동 공간 확보가 무엇보다 어렵다. 생산 단가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닭은 오랜 기간 사람과 함께 살았지만 야생 본능이 잠재돼 있다. 야생 날짐승은 넓은 지역에서 거침없이 살아야 건강하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근육도 잘 발달해 맛도 좋다. 그러나 육용 닭은 비좁은 닭장에서 평생을 산다. 움직임이 적고 인공 사료를 먹기에 마당에서 키운 닭에 비해 저항력이 떨어진다. 또 대량사육이기에 전염병이 돌면 전멸 가능성도 있다. 이는 사육되는 모든 동물이 마찬가지다. 일부 축산농가에서는 예방차원에서 항생제를 투여하기도 한다.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은 항생제 부분에 대해 손을 내젓는다. 자연 상태로 자라 항생제를 알지 못하는 닭을 선호한다. 무 항생제 닭은 당연히 일반 닭에 비해 비싸다. 그래도 최근에는 무 항생제 닭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이 늘고 있다.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덕분이다. 그렇다고 무 항생제 닭이 모든 것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닭은 소음, 불빛 등 여러 가지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항생제가 없던 시절에도 닭은 열악한 위생환경과 인간의 탐욕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조선 후기의 학자 박지원은 중국 여행길에서 닭의 전염병 원인을 기록했다.

'여름에는 닭의 꼬리와 날개에 검은 이가 생길 수 있다. 이 경우 콧병이 생긴 닭이 주둥이로 물을 토해내고 목에서는 가래소리를 낸다. 이것이 계역(鷄疫)이다.' 그는 닭 돌림병이 불결한 환경에서 비롯됨을 설명한 뒤 스트레스 닭을 설명했다. 박지원은 한 집에서 몸통의 털이 모두 뽑혀 고깃덩어리만 남은 닭이 모이를 먹는 것을 보았다. 그는 털을 다 뽑으면 영양분이 몸에만 집중돼 빨리 자라는 데서 착안된 것을 알았다. 박지원은 가여운 닭을 차마 볼 수 없어 눈을 감았다.

필자는 닭의 맛을 연구하면서 스트레스를 모르는 닭이 최선의 재료임을 늘 생각한다. 몇 년 전 농가를 수소문한 끝에 청정한 환경에서 무 항생제로 키우는 곳을 알았다. 이때의 기분은 마치 혼인 후 첫 아이를 맞는 것처럼 황홀했다. 이때부터 필자의 맛 산책은 무 항생제 닭으로 옮겨졌다.

옛 선비 중에는 닭을 벗 삼은 이도 있다. 조선 선조 때 장원급제를 한 이민구는 유배지에서의 쓸쓸함을 양계로 이겨냈다. 그에게 닭은 말없는 친구였다. 그는 닭을 통해 정치의 스트레스를 날리고 힐링을 했다. 그러던 중 닭 전염병이 돌아 닭 18마리를 모두 잃었다. 이민구는 닭이 죽어 위로받지 못하는 처지를 한탄하는 시를 지었다. 닭 돌림병의 뜻인 계역(鷄疫)의 끝 부분에 친구 잃은 슬픔이 가득배여 있다.
 
'음탁삼재안(飮啄森在眼) 족상여유신(足傷旅遊神) 노병상소수(老病常少睡) 야정호처신(夜靜浩悽辛)'. '닭이 물을 마시고 모이를 쪼던 모습 눈에 선하네. 그 모습이 나그네 마음 더욱 아프게 하네. 늙고 병든 몸 잠을 이룰 수 없네. 고요한 밤에 쓸쓸함이 넘칠 뿐이라네.'

위안 받고 싶은 시대다. 잘 사는 사람도, 고단한 사람도 위로 받고 싶다. 그런데 힘들다고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행복하다고 해서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저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가운데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게 좋은 삶일 듯하다. 이민구는 유배지에서 키운 닭에게서 친한 친구에게도 받지 못한 위로를 느꼈다. 통닭이나 숯불에 닭갈비를 즐길 때나마 마음의 평온을 얻었으면 좋겠다.      

■ 글쓴이 백민제는?
맛 칼럼니스트다.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10년의 직장생활을 한 뒤 10여 년 동안 음식 맛을 연구했다. 특히 건강과 맛을 고려한 닭고기 미식 탐험을 했다. 앞으로 10여년은 닭 칼럼니스트로 살 생각이다. 그의 대표적 아이디어는 무항생제 닭을 참나무 숯으로 굽는 '수뿌레 닭갈비'다. www.supure.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비회원 글쓰기 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동혁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권동혁 070-4699-7165 kdh@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