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3) 닭이 여는 아침과 계룡산
백민제의 '닭으로 본 인문학' _ (3) 닭이 여는 아침과 계룡산
  • 한지은 기자
  • 승인 2015.03.02 1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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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민제 칼럼니스트
산에는 의미가 있다. 전설이 있고, 애환이 있고, 희망이 있다. 한국의 산은 약 4,440개다. 고개나 재 등을 제외한 큰 산이다. 산마다 사람 이야기를 비롯하여 종교 동물 등의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다. 1만 2천봉의 금강산에는 왕과 태자에서부터 민초까지의 갖가지 사연이 있다. 한라산에는 산신 설화가 있다. 한라산의 사냥꾼 소천국이 표류한 천자국의 여인 백주와 혼인했다. 그들의 막내아들인 소국성은 용왕국 셋째 공주와 살림을 차렸고, 훗날 제주를 지키는 신이 된다.

역사에서 백두산 태백산 금강산 등과 함께 많이 등장하는 산이 계룡산(鷄龍山)이다. 계룡산은 두 곳에 있다. 대전과 공주 계룡 논산을 품고 있는 국립공원 계룡산(845m)과 거제도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해발 566m의 계룡산이 있다. 충남의 계룡산은 무학대사의 평에서 이름 됐다. 무학대사는 이 산을 닭과 연관된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 용을 끌어온 비룡승천형(飛龍昇天形)으로 보았다. 실제로 주봉인 천황봉과 쌀개봉을 잇는 능선이 닭의 볏과 비슷하고, 굽이치는 봉우리들은 용을 연상시킨다. 거제도의 계룡산은 산 형태가 용과 비슷하고 정상은 닭의 벼슬처럼 생긴데서 유래됐다. 두 산은 모두 닭과 관계가 있다.

조선 태조가 새 나라의 수도로 생각한 계룡산은 예로부터 '닭의 산'으로 불린 것으로 보인다. 당나라에서는 백제의 계룡산을 계산동치(鷄山東峙)로 표현했다. 한자의 계산(鷄山)은 우리말로 닭의 산으로 풀이할 수 있다. 또는 새벽을 알리는 닭의 특성을 감안하면 아침이 동터오는 산으로 해석할 수 있다. 둘 중에서 후자의 가능성이 더 크다. 큰 산은 신성시되었고, 역사가 진행될수록 켜켜이 이야기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처음에 닭 형태와의 유사성에서 이름 되었다 해도 상징성에 더 무게가 실렸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계룡산은 밝아오는, 새 빛이 솟아오르는 광명의 땅이다. 그렇기에 정신을 맑게 하려는 사람, 새 시대를 염원하는 사람의 발길이 계속된 것이다. 새 시대의 염원은 한민족의 신화와 직결된다. 어둠에서 솟아나는 태양을 숭배한 옛사람은 단군의 건국신화를 만들었다. 환인, 환웅, 단군 그리고 신시를 펼친 백두산은 환한 빛이나 새벽과 연관된다. 계산(鷄山)으로 불린 계룡산과 같은 맥락이다.

이같은 성스러운 계룡산은 각 왕조에서 매우 중요시했다. 백제시대에는 나라를 대표하는 명산으로 중국에 알려졌고, 통일신라시대에는 전국의 5대 명산 중의 하나로 손꼽혔다. 조선시대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조선 4대 명산으로 오대산 삼각산 구월산과 함께 계룡산을 들었다. 민중과 지식인을 막론하고 끊임없이 성스러운 곳으로 이야기해온 계룡산은 고려 태조도 도읍지로 생각한 듯하다. 『동국여지승람』 「연산현조」에는 '시군야, 전조태조 급아태상왕, 개욕정도지지야(是郡也, 前朝太祖 及我太上王, 皆欲定都之地也)'라는 구절이 있다. 조선 태조가 직접 이곳을 답사하고 국도(國都)로 생각해 터를 닦게 한 것은 오랜 기간 민중에 내려온 소망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계룡시의 홈페이지에는 닭과 용의 관계를 잘 풀이했다. 이를 통해 역사에서 계룡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닭(鷄)과 용(龍)은 산(山)과 수(水)를 의미한다. 바꾸어 풀이하면 양과 음의 관계요, 남과 여의 관계다. 숫자로 해석하면 1, 3, 5, 6, 9는 양수요, 2, 4, 6, 8, 10은 음수다. 양수(寄數)는 남자이므로 제일 크고 끝자에 있는 9를 사용한다.(용구:用九, 용단:用端). 여는 음수 2, 4, 6, 8, 10의 음수(偶數) 중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6을 사용한다.(용육:用六, 용중:用中). 음과 양, 남과 여가 조화되어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사람의 남근(男根)은 용단(用端)하게 되어 있고 여자는 용중(用中)하게 되어 있다. 다시 해석하면 용구(用九), 용육(用六) 천지가 힘을 합해 만물이 생겨난다. 남녀가 협력해 자손이 태어나고 상하가 협력해 문명사회를 이룩하게 된다. 이렇듯 계룡(鷄龍)은 상징적, 철학적, 예언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땅이다. 만주(滿洲) 곤륜산(崑崙山)과 더불어 영산으로 일컬어지는 계룡산(鷄龍山)을 중심으로 향후 계룡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의 이유다.'

닭은 새 아침, 새 해, 광명이 연상된다. 한 번쯤 계룡산에 올라 아침을 일깨우는 닭의 목청으로 다시 힘차게 날갯짓하는 우리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

■ 글쓴이 백민제는?
맛 칼럼니스트다.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10년의 직장생활을 한 뒤 10여 년 동안 음식 맛을 연구했다. 특히 건강과 맛을 고려한 닭고기 미식 탐험을 했다. 앞으로 10여년은 닭 칼럼니스트로 살 생각이다. 그의 대표적 아이디어는 무항생제 닭을 참나무 숯으로 굽는 '수뿌레 닭갈비'다. www.supu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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