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인사 청문회 유감
이완구 인사 청문회 유감
  • 독서신문
  • 승인 2015.02.17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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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일산정(秋日山情)'

[독서신문] 칸트는 존경했던 루소와 같이 오후 4시 쾨니히스베르크 산책로를 따라 산책했다. 동네 사람들이 칸트의 산책을 보고 시계를 맞추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을 정도로 칸트의 규칙성은 정확했다. 칸트의 규칙성은 약속의 실천에 있다.

약속은 관계로부터 나온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과 관계, 사물과 관계, 일과의 관계를 떠나서 살 수 없다. 관계를 통해 약속은 만들어진다. 일과 관계는 생존에 대한 문제이기에 매우 중요하며 일은 성실(誠實)한 실천을 요구한다.

성실에서 성(誠)은 말씀언(言)과 이룰성(成)으로 이루어져 있다. 誠은 거짓 없이 진실한 말로 표현하는 ‘정성’, 거짓 없는 확실한 말, 또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여 틀림없음을 뜻한다. 우리 모두는 일을 하며 성실하게 살아가길 원한다. 일과의 관계는 사람과 관계, 사물과 관계를 맺는 기본이기 때문이다.

관계는 성실한 마음과 행동으로 지속된다. 노동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육체노동과 정신노동 모두는 성실을 통해 신성성을 얻는다. 때문에 노동은 신성한 것이다. 자신 내부로부터 나오는 성실한 마음과 행동은 양심과 지성의 표현이다. 칸트는 이를 입법성을 지닌 자 또는 명령하는 자로 보았다.

성실의 반대는 무례(無禮)함이다. 무례는 예의가 없음이다. 아무렇게나 말하고 행동하는 모습, 일을 뒤죽박죽 성의 없이 하는 모습은 무례한 모습이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도산 안창호는 “어떤 일이건 네가 하는 일에 정성을 다 하여라!”고 했다. 이는 무례함 없이 정성을 다해야 함을 말한다.

때문에 무례함 없이 정성을 다해 하는 일은 위대함, 가치, 소중함이 녹아 있다. 년 초에 세운 계획들이 작심삼일과 용두사미가 되지 않았는지 되돌아볼 시간을 구정을 통해 점검할 필요성을 느낀다. 성실함으로 정성과 성심껏 50일여를 살아왔는지 살펴봐야 한다. 삶은 일회성이다. 딱 한번 주어진 시간이다. 때문에 연습도 없으며 찰나의 순간들을 결승전으로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

성실하게 행하는 것이 성(誠)이다. 송나라 사마광은 제자가 ‘성이 무엇입니까?’ 물었다. 사마광은 ‘불망어(不妄語)’라 답했다. 망(妄)은 망령되다, 어그러지다, 허망하다, 헛되다, 속이다, 잊다, 잊어버리다, 거짓, 제멋대로, 함부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불망어’는 거짓말 하지 않는 것이다. 사마광은 거짓말하지 않고 거짓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성실의 근본임을 말했다.

조광조는 과거시험 응시에 대해 깊이가 없는 생각,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공부보다 국가와 사회에 올바른 도를 실천할 수 있는 공부를 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행동함에 있어 근본과 일의 끝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하며 먼저하고 나중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수년 동안 공부하여 나랏일을 맡았지만 남 앞에 나서기에 부족하다고 여기면서 스스로 속이지 말아야 한다는 ‘무자기(毋自欺)’를 수양의 근본으로 삼았다. 자신이 바르지 못하면 세상을 바르게 인도하지 못한다고 여겼던 것이다.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아니하고, 몸을 구부려 사람에게 부끄럽지 아니하도다.”(仰不愧於天 府不作於人)라는 말이 생각난다.

성실한 자기 수양을 완수한 후 나랏일을 맡아도 부족하거늘 이완구 인사 청문회를 보는 마음이 편치 않다. 고요하지 못하고 시끄러운 소음이 너무 크다. 이래서 어찌 나라를 이끌겠는가. ‘진(眞)’은 거짓 없음이고 ‘정(靜)’은 욕심 없음이다. 고요함이 있어야 바른 움직임과 아름다운 행실이 따른다.

/ 편집위원 검돌(儉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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