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일본인 인질 사건으로 주춤하는가 싶었던 ‘아베의 행진’이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아베 총리에 대한 지지율도 인질 사건 이전보다 더욱 높아졌다. 일부에서는 내년 개헌 가능성까지 얘기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인질 사건을 놓고 일본 언론과 아베 총리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진실 공방’이 눈길을 끈다. 자칫 이번 일이 언론 통제의 시발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최근 한 민영 방송이 총리의 중동 방문에 대해 ‘외무성의 만류’가 있었다는 보도를 한 게 사건의 발단이 됐다. 아사히신문 계열의 방송사인 <테레비아사히>는 지난 달 말 외무성이 파리 테러사건 직후 총리의 중동 방문을 신중하게 재고해야 한다고 충고했지만 총리가 독단적인 판단으로 중동길에 올라 IS를 자극했다는 내용의 방송을 내보냈다.
이에 대해 외무성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펄펄 뛰며 즉각 정정 보도를 요청했다. <테레비아사히> 측은 “방송 내용은 취재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반론하며 맞서고 있다. 아베 총리의 중동 방문이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는 얘기가 외무성 각료를 통해서 집권 자민당 내부에까지 흘러들었던 당시 정황을 고려하면 이번 외무성의 민감한 반응은 다소 이례적이라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테레비아사히>의 메인 뉴스프로그램인 ‘보도스테이션’이 줄곧 아베 정권의 독주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워왔던 것과 관련지어 볼 때 ‘언론 길들이기’ 차원의 ‘표적 공격’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힘들어 보인다.
공영방송인 NHK 출신의 한 정치평론가는 “이런 언론 통제가 먹힌다면 많은 미디어들은 위축이 돼 어용기관으로 전락할 것이다. 언론이 정상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아베 총리는 독재자가 되는 것이다. 만일 외무성이 당시 총리에게 방문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충고를 하지 않았다면, 외무성이 긴박한 중동정세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게 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그 게 더 큰 문제가 됐을 것이다”라며 이번 사건의 배경에 의구심을 드러냈다.
최근 유력 일간지인 <요미우리>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58%까지 올라갔다. ‘중동국가에 인도적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정책에는 63%가 찬성했다.
또 교도통신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인 인질 2명이 희생됐음에도 불구하고 ‘인질 사건에 대한 아베 정권의 대응이 적절했다’는 응답이 60.5%나 됐다.
이런 여세를 몰아서 올 가을 소집되는 임시국회에서 개헌을 위한 정지 작업으로, 개헌 항목 선정을 마친 뒤 내년 정기국회에서 정식으로 개헌 발의를 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개헌 발의를 위한 중요 요건 중 하나는 중의원과 참의원 의석의 3분의 2 이상을 확보해야 하는 것. 현재 중의원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자민당, 공명당의 연립 여당 측은 내년 여름 참의원 선거에서 다시 ‘아베 돌풍’을 일으키겠다는 자신감에 차 있다. 그렇게 되면 평화의 상징인 ‘헌법 9조’에 금이 가는 것도 시간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 도쿄(일본) = 양정석(일본 전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