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살았던 미래형 여인들의 일대기
과거를 살았던 미래형 여인들의 일대기
  • 한지은 기자
  • 승인 2015.02.13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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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한지은 기자] 미와 예술을 겸비한 조선 최고의 기생 황진이와 지략과 미모로 왕을 사로잡은 야망 있는 여자 장희빈을 아는가. 여성의 입지가 지금보다 훨씬 낮았던 조선 시대에 살았지만 현재까지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한 당돌한 여성들이다.

보편적으로 옛 사료 속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모습은 집안 살림이나 남편 내조에 집중하는 수동적인 모습으로 정형화돼 있다. 그러나 우리의 머릿속에 각인된 순종적인 현모양처만이 옛 여인들의 전부는 아니다. 엄격한 사회적 규율이 여인을 옭아맸던 과거에도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고자 했던 여인은 존재했다.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 엄격한 세상의 규율에 가장 먼저 희생된 것은 여인들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거나 무력하게 체념하지 않았다. 안창호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이 중국 군경에 붙잡힌 길림대검거사건 당시 그들의 구명운동을 이끌었던 남자현, 양반의 첩이 되길 거부하고 자유로운 삶을 택한 황진이, 퇴계 이황의 학통을 잇고자 노력한 『음식디미방』의 저자 장계향, 숙부인의 직첩을 내린 임금에게 도리어 남편을 고발하는 상소를 올린 초월 등 강한 신념과 의지를 갖고 자기만의 생을 펼친 여인들의 치열한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남편이 순국할 무렵 남자현은 어렵사리 가진 첫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삶이 와르르 무너진 스물세 살 과부는 일본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새겼다. 그러나 그녀는 의병활동을 하기에는 역부족인 여자였고, 또 모셔야 할 시부모와 키워야 할 아이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운명에 순응하며 묵묵히 집안일을 감내하고만 있지 않았다. (중략) 그랬기에 어수룩한 촌부(村婦)로 사는 듯 보였던 그녀는 독립운동을 펼치는 영양 일대의 운동가들과 교류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경성을 지나 만주로까지 활동무대를 넓혔다.                                                                             -본문 61쪽

또한 주어진 운명에서 벗어나고자 치열하게 살았던 여인들뿐 아니라 부부의 정이나 정인과의 만남 등 소소한 행복에서 삶의 의미를 찾았던 여인들의 모습도 놓치지 않았다. 죽은 남편의 무덤에 절절한 편지와 머리카락으로 만든 미투리를 함께 넣은 마혜, 번번이 과거에 낙방하는 무능한 남편을 끝까지 사랑하고 내조한 김삼의당, 사랑하는 이를 향한 그리운 마음을 담아 거대한 시탑을 쌓은 김부용 등 온 마음을 다해 지고지순한 사랑을 나눈 여인들의 사연을 엿볼 수 있다. 더불어 옛 여인들이 남긴 시와 서신 등 사료를 통해 그들이 일상에서 느꼈던 감회와 심경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들의 자취를 따라가며 왜곡되고 축소되고 희화화된 삶의 진상을 현재 시점에서 되살리고자 노력했으며, 직접 한시를 번역하면서 기구한 삶의 행간에 녹아든 여인들의 특별한 인생을 담아냈다.

이 책은 시대적·사회적 제약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열정적으로 살아간 여인 17인의 흔적과 이야기를 ‘근대의 혼란한 세상을 온몸으로 부딪힌 여인들’, ‘기생이라는 미천한 신분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여인들’, ‘규방을 지키며 독자적인 삶을 개척한 여인들’, ‘후대에 발굴되거나 새롭게 조명된 여인들’, 네 가지 주제로 살펴봄으로써 그간 옛 여인들에게 덧씌워진 선입견을 없애고 그들을 새롭게 조명한다.

■ 미인별곡
이상국 지음 | 역사의아침 펴냄 | 284쪽 | 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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