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목도리의 아쉬움
회색 목도리의 아쉬움
  • 독서신문
  • 승인 2015.02.02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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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익희의 세상 보는 눈

▲ 노익희 대표
[독서신문] 90이 되신 노모가 영하 7도의 이른 아침에 전화를 하셨다. "막내야, 추우니 목도리 꼭 하고 장갑 꼭 끼고 다녀라. 양말도 하나 더 신고." ‘겨울에는 삼목(목, 손목, 발목)을 따뜻하게 해야 건강하다’는 옛말 그대로다.

말씀대로 세 곳을 따스하게 하고 집을 나서니 춥기는 커녕 찬바람이 오히려 시원하게 느껴졌다. 내친 김에 어머니를 닮은 회색 목도리를 하나 장만했다. 포근하게 감싸오는 느낌은 어머니의 말씀이 함께 하고 있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며칠 동안 잘 하고 다니던 목도리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비싼 목도리는 아니었지만 마음에도 들고 의미도 있었는데, 못내 아쉬운 마음에 들렀던 곳을 다 찾아보았지만 헛수고였다.

영화 <태양은 가득히>에서 톰은 필립의 아버지로부터 “필립을 미국으로 데려오면 5,000달러를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이탈리아에서 놀고 있는 필립을 데리러 간다. ‘미국으로 돌아가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도통 지킬 생각이 없어 보이는 필립은 아무데나 흥청망청 돈을 쓰고 여자들에게 지분대는 것으로 하루를 보낸다.

톰은 그의 비위를 맞춰주며 불쾌한 요구까지도 들어줬지만 필립은 톰과 친구였다는 사실조차 기억이 안 난다며 그를 무시하고 비웃는다. 필립의 애인 마르쥬는 그를 사랑하지만 그의 제멋대로인 성격 때문에 마음을 놓지 못한다. 필립과 마르쥬, 그리고 톰이 함께한 요트 여행에서 마르쥬가 쓰고 있던 책의 원고를 필립이 던져버리자 화가 난 마르쥬는 요트에서 내린다.

바다 위에 톰과 필립 둘만 남게 되자 톰은 그를 죽여 바닷속으로 던진다. 육지에 올라온 이후 그는 필립 행세를 하며 돈을 인출하고 호화로운 호텔에 머문다. 필립이 사라지자 마르쥬를 비롯해 필립 측근들이 그를 찾기 시작하지만 톰은 필립과 톰을 번갈아가며 행세해 모두를 헷갈리게 한다.

어느 날 우연히 만난 필립의 친구가 톰을 의심하자 톰은 그를 죽인 뒤 필립이 살인자인 것처럼 꾸민다. 필립이 프레디를 죽이고 자살했다는 증거가 확실시되고 남자친구를 잃고 외로웠던 마르쥬마저 톰에게 마음을 열게 되자 톰은 자기 삶의 가장 완벽한 날이라고 생각하며 행복에 젖는다. 바로 그 순간 팔기 위해 인양된 필립의 요트에 필립의 시체가 걸려 육지로 딸려 올라온다.

인생에서 아쉬운 순간은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회색 목도리를 잃고도 그럴진데 사람을 잃어버린다면 오죽하겠는가? 자본주의 사회의 신분적 격차에 의해 친구를 살해한 톰은 많이 아쉬웠을 것이다. 필립이 올라오지 않았다면 새로운 삶을 살수 있었을텐데.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기억속에, 머릿속에 남아 있는 잔상은 그리 빨리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의 제목이 <태양은 가득히>라는 것은 내가 잊고 싶어도 잊힐 수 없는 환한 세상이 존재한다는 의미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 <참교육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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