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淡)'과 '예(禮)', 그리고 '품격 있는 사회'
'담(淡)'과 '예(禮)', 그리고 '품격 있는 사회'
  • 조석남 편집국장
  • 승인 2015.01.20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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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석남 편집국장

[독서신문 조석남 편집국장] '불 화(火)'가 겹쳐진 '불꽃 염(炎)'은 불이 활활 타오르는 모양을 나타낸다. '담(淡)'은 물(水)과 불꽃(炎)으로 이루어져 있다. '담(淡)'은 '활활 타오르는 불(炎)에 상극의 성질을 갖는 물(水)을 끼얹어 그 기세를 죽인다'는 의미가 있다. 지나침을 경계하는 중용의 미덕을 담고 있다. 너무 긴장하거나 마음이 급하면 오히려 일을 그르치기 때문에 상극의 성질로 가라앉히고 담담하게 관조하라는 가르침이다.

'물(水)을 한번 끓이는(火) 것이 아니라 끓이고 또 끓이니(炎) 맑게 되었다'고도 한다. 물을 아주 뜨겁게 끓이면 온갖 잡균들이 소독되어 맑고 깨끗하게 된다는 뜻이다. '물로 불을 끄고, 불로 물을 태우듯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깨끗하게 된 상태를 의미한다'고도 한다.

무미(無味)함, 즉 '담(淡)'의 의미는 이제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오고 있다. 자극과 속도가 넘쳐나는 시대다. 매체와 광고는 현란한 색채와 말초적 감각이 필수다. 숨 막힐 만큼 달고, 짜고, 쓰고, 신 맛으로 현대인을 괴롭힌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초고속 문명의 멀미를 호소하며 벗어나고 싶어 한다. 어떤 이들은 녹색을 찾아 걷고, 어떤 이들은 조미료 없는 맛집을 찾아다니고, 고요한 사찰로 템플스테이를 떠나기도 한다. 맛은 우리를 얽어매려 하지만, '무미(淡)'는 우리를 풀어준다. 맛은 우리를 사로잡고 몽롱하게 하며 예속시키려 하지만, '무미(淡)'는 우리를 감각적 흥분, 일시적 강렬함에서 해방시켜준다.

모든 소란을 침묵케 하고 내면의 정적과 평온을 되찾아준다. 엄숙한 제사일수록 제례는 극히 단순하다. 생선은 익히지 않고 탕은 간을 맞추지 않는다. 피자나 콜라의 달콤함은 일주일을 못가지만 밥이나 맹물은 평생을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화려하고 자극적인 아름다움보다는 단순하고 드러나지 않는 담백함이 물리지 않고 오래 간다. 최고의 격(格)은 치장하지 않고 드러내지 않는다.

필자는 '아름다운 사람'보다는 '맑은 사람'을 좋아한다. '아름다울 미(美)'보다는 '맑을 담(淡)'에서 극한의 아름다움과 숨겨진 격을 느낀다. '미(美)'는 스스로 아름답다고 드러내지만, '담(淡)'은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깊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그러기에 아름다움의 격이 다르다.

좋은 물은 향기가 없다. 최고의 담백함을 가진 물은 별도의 감미료로 자신을 치장하지 않는다. 좋은 그림은 화려하지 않다. 최고의 미를 가진 그림은 현란한 색상으로 사람들의 눈을 어지럽히려 하지 않는다. 무색(無色), 무미(無味)의 담담(淡淡)함에 극상의 아름다움이 녹아든다. 자랑하고 드러내지 않기에 격이 있고 향이 깊다.

<독서신문>은 새해 새로운 기획을 준비했다. 3면에 실리는 '갤러리 담(淡)'이 그것이다. 홍익대 미대 동양화과와 미술대학원을 졸업한 신현대 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독서신문>에 4년째 '황태영의 풀 향기'를 연재하고 있는 황태영 작가가 글을 쓴다. 두 사람은 그동안 일관되게 '마음으로 떠나는 길', '자아 찾기'를 추구하며 이 사회에 화합과 소통, 배려의 메시지를 던져왔다. '갤러리 담(淡)' 역시 화려한 치장을 배제하고 '여백과 관조의 미'를 통해 잔잔하나 깊이 있는 '울림'을 전하고자 한다. <독서신문>은 나아가 '맑은 사람', '품격 있는 사회'를 위한 '담(淡)'의 가치에도 주목하고자 한다.

요즘 세상이 너무 흉흉하다. '땅콩회항 사건'과 '백화점 모녀 사건', '이상봉 노동 착취' 등 곳곳에서 자행된 '갑질'은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인면수심'의 '안산 인질극'과 '인륜'을 저버린 '서초동 세 모녀 살해', '송도 어린이집 폭행' 등 잇단 사건들은 경악과 충격 그 자체였다. 여기저기에서 '대한민국호'에 위기의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그동안의 압축성장에 대한 후유증으로 고산병(高山病), 잠수병(潛水病)을 앓고 있다. 이대로 선진국 문턱을 넘어서려다가는 엎어지거나, 미끄러지거나, 점점 더 불행해질 뿐이다. 하여 끊임없이 실망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좌절할 것이다.

결국은 '기본'이다. 과연 우리가 문화인다운 매너와 품격 그리고 자세를 지녔는지, 또 선진국으로 들어가기 위한 체질개선작업을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당연히 이는 이 나라 리더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숙제이기도 하다.

격(格)이 없는 것은 반드시 추락한다. '국격'을 높여야 한다. 국격을 높이는 데 꼭 필요한 요소가 '품격 있는 사회'이다. '품격 있는 사회'를 위해 또하나 중요한 덕목이 '예(禮)'이다. 모든 관계에는 예(禮)가 바로서야 질서가 잡히고 행복해질 수 있다. 최소한의 배려와 믿음, 존중과 공경이 사라지면 혼란과 무질서로 모두가 불행해진다. '자살 1위 공화국'에 반인륜적 파렴치한 뉴스들을 접할 때마다 경제성장보다는 '극기복례(克己復禮)'가 더 절실하고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리사욕과 탐욕, 충동과 감정을 극복하고 예(禮)를 회복해야 한다.

'삼지례(三枝禮)'란 말이 있다. 비둘기는 가지에 앉을 때 절대 어미 새와 같은 가지에 앉지 않는다. 어미 새가 앉은 가지로부터 세 단계 낮은 가지에 앉아 부모에 대한 예를 표한다. 맹수인 사자도 배부르면 더 이상 사냥을 하지 않는다. 다른 동물의 먹이를 탐하지도 않고 먹다 남은 먹이를 자신만을 위해 따로 감추어두지도 않는다. 배불러도 사냥을 계속하려는 탐욕은 인간 세상에만 있다.

동물이건 식물이건 모두 예를 지키며 공존한다. 동식물만도 못한 사람이 돼서는 아니된다. 경제 선진국이라고 자부하기에 앞서 이에 걸맞은 문화 선진국이 돼야 한다. 돈보다는 사람을 중시하고 예(禮)를 회복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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