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사자성어'와 희망의 리더십
'올해의 사자성어'와 희망의 리더십
  • 조석남 편집국장
  • 승인 2014.12.31 12: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조석남 편집국장

[독서신문 조석남 편집국장] 사자성어(四字成語)의 맛은 함축과 비유에 있다. 축약 속에는 은유의 형식을 빌린 시대정신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2014년 새해 희망의 사자성어는 '전미개오(轉迷開悟)'였다. '전미개오'는 '어지러운 번뇌에서 벗어나 열반의 깨달음에 이르는' 불교용어다. '속임과 거짓됨에서 벗어나 세상을 밝게 보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올해도 '희망'은 '바람'으로 끝났다.

<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지록위마(指鹿爲馬)'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전국의 교수 72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201명(27.8%)의 교수들이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휘두르는 상황'을 가리키는 '지록위마'를 선택한 것이다. 이 말은 중국을 천하통일한 진시황이 죽자 환관 조고가 허수아비 황제 호해를 세우고 권력을 농단했는데, 그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그가 사슴을 두고 말이라고 해도 이의를 다는 사람이 없다는 데서 유래했다. 청와대 문건 유출과 세월호 참사 등에서 본질을 비켜간 청와대와 정부의 대응 방식과 비선 실세 논란 등을 '지록위마'에 빗댄 것이다.

구직자 등이 꼽은 올해의 사자성어에는 그들의 심사가 그대로 내포됐다. 한 온라인 취업 포털이 최근 구직자 및 직장인 1,300여명에게 '올해를 규정짓는 사자성어'에 대해 물은 결과 '몹시 고되고 힘들었다'는 '간난신고(艱難辛苦)'가 첫 번째였다. 또 '걱정이 많아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전전반측(輾轉反側)'과 '온갖 애를 썼지만 보람이 없다'는 '노이무공(勞而無功)' 등을 많이 선택했다. 이들 모두 고되고 힘든 한 해를 살아왔음이 드러나 짠하다.

올 한 해 대기업들의 상황을 표현한 사자성어도 눈길을 끈다. 삼성은 '여리박빙(如履薄氷·얇은 얼음판을 밟듯 아슬아슬함)', 롯데는 '호사다마(好事多魔·좋은 일에는 탈이 많음)', 대한항공은 '사면초가(四面楚歌·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임)', SK는 '파란만장(波瀾萬丈·일에 엄청난 변화와 어려움이 많음)' 등으로 묘사돼 처한 상황이 생생히 녹아 있다.

한국과 같은 한자(漢字)권인 중국, 일본, 대만은 사자성어 대신 '올해의 한자'를 선정하고 있는데 '촌철살인'의 의미가 내포돼 있어 음미할 만하다.

중국은 2014년을 대표한 '올해의 한자'로 '법(法)'을 선정했다. 중국 교육부 산하 국가언어자원조사연구센터와 상무인서관, <인민일보> 인터넷판 인민망(人民網) 등은 지난 12월 22일 "'올해의 한자'로 '법'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전문가 심사단은 "11월 개최된 중국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에서 '법치(法治)'가 주요 의제로 선정됐다"며 "법은 국가통치와 깨끗한 정치, 스모그 퇴치 등에 필요한 전제조건"이라고 밝혔다.

'법'이 올해의 한자로 선정된 것은 시진핑 국가주석 주도 아래 대대적인 반(反)부패 사정바람이 불면서 '호랑이'(고위관리)부터 '파리'(하급관리)까지 부정부패 사범을 법에 따라 엄격하게 처벌하는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중국은 지난해에는 나아갈 '진(進)'자, 2012년에는 '꿈'을 뜻하는 몽(夢)'을 '올해의 한자'로 선정했었다.

일본에서는 '올해의 한자'로 세금을 의미하는 '세(稅)'가 선정됐다. 아베 신조 총리가 올해 일본 소비세를 5%에서 8%로 인상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대만에선 '흑(黑)'자가 뽑혔다. 최근 선거에서 참패한 국민당 마잉주 정권에 대한 국민의 분노와 답답함을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지록위마'란 사자성어가 함축적으로 보여주듯 우리는 지금 '안전 불감'을 지나 이제 '법치 불감' 시대를 맞고 있다. 정부나 기관이 우리 사회의 정보공유시스템을 은폐하고 왜곡된 사회를 만든다면 그것은 미개국이나 다름없다. 시스템이 아닌 인치(人治)가 넘쳐나면 사회 불신, 국가 불신으로 이어진다.

몸이 곧게 서 있는데, 그림자가 비뚤어질 수는 없다. 군주가 훌륭한 정치를 하고 있는데,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무책임과 거짓말이 '혹세무민'할 수는 없다. 방현령이 당 태종에게 아뢰었다. "무기고를 점검해보니 수나라 때에 비해 많이 부족합니다. 보충하도록 지시를 내려주십시오." 태종이 답했다. "무기고를 보충하기보다 백성들의 생활을 향상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나의 무기는 그것이다. 수의 양제가 망한 것은 무기 부족이 아니라 인의를 저버리고 백성들의 원한을 샀기 때문이다." 황제가 되면 남에게 허리를 굽힐 필요도 없고 두려워할 일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태종은 항상 하늘을 두려워하고 신하들의 비판에 귀를 기울이며 겸허하게 행동했다.

반복되는 참사에서 각성과 교훈을 찾지 못하는 정치는 '호환(虎患)'보다 무섭다. 참회와 반성, 경청과 소통으로 나라가 바로 서면 '혹세무민'과 '지록위마' 같은 말은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몸이 곧으면 그림자도 곧아진다.

안전과 법치에는 진보도 보수도 따로 없다. 분명한 것은 과거 권위주의 방식으로는 우리 사회를 위험으로 내몰 수는 있지만 바꿀 수는 없다는 점이다. 열린 마음과 따뜻한 가슴, 소통과 희망의 리더십이 그리운 갑오년의 세밑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비회원 글쓰기 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동혁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권동혁 070-4699-7165 kdh@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