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과목이 논술·토론식 수업… 별도의 글쓰기 과목은 필요 없습니다"
"모든 과목이 논술·토론식 수업… 별도의 글쓰기 과목은 필요 없습니다"
  • 독서신문
  • 승인 2014.11.03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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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_ '독일 글쓰기 교육' 현장을 찾아서(1)-1
<독서신문>은 창간 45주년을 맞이해 신향식 객원기자(신우성글쓰기본부 대표)의 '독일 글쓰기 교육'을 연재합니다. 논증적 글쓰기 교육 전문가인 신 기자는 하버드대와 MIT, UMASS대 등에서 미국 글쓰기 교육을 심층 취재해 국내에 소개한 바 있습니다. 앞으로 독일 대학들과 고교들의 글쓰기 교육 현장을 탐방 보도할 예정으로, 주독한국교육원과 독일 교포신문 등의 취재 협조를 받습니다. 이번 호에는 강여규(전 유럽한글학교협의회 회장), 정지혜(독일학교 교사), 김인지(독일 교민 대학생) 씨의 인터뷰를 싣습니다. <편집자 註>

 

▲ 강여규(전 유럽한글학교협의회 회장)

[독서신문] 지난 9월 28일(일) 낮 1시6분,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을 벗어난 열차는 가을 들판을 가로질러 달렸다. 2층 칸에서 바라보는 독일의 경치가 낭만적이었다. 스마트폰 위치 검색기(GPS)의 파란점이 1시간40분만에 하이델베르크에 접근했다. 16년만에 방문한 '젊음과 중세의 도시' 하이델베르크였다.

"'중앙역 로비'는 애매한 명칭이어서 엇갈릴 수 있습니다. 중앙 출입구를 나온 뒤 서 계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강여규 선생은 문자로 전해온 정확한 지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잔잔히 흐르는 네카르강을 가로질러 하이델베르크대학의 이론관까지 약 20분을 걸었다. 대문호 괴테가 거닐던 산책로가 강변 어딘가에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멀리 보이는 고성(古城)엔 중세 영주가 살고 있을 것만 같았다.

"독일에는 글쓰기 교육이라는 게 별도로 없습니다. 인터뷰를 요청 받고 '몇마디로 끝날 취재가 될 텐데…' 하는 걱정도 들었습니다." 강 선생은 교정에 있는 카페에 자리를 잡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들려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뜻이었다. 독립된 글쓰기 과목이 없으므로 글쓰기만 딱 잘라서 말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려 4시간 가까이 독일의 글쓰기 교육에 관해 인터뷰를 해주었다.

"모든 과목의 수업이 토론과 글쓰기로 진행됩니다. 따로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글쓰기는 독일어 시간에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른 과목에서도 글쓰기로 학습합니다. 시험 문제도 무엇을 고르는 형식이 아니라 글쓰기로 합니다."

강여규 선생은 한국 문학과 독일 문학을 두 나라 언어로 번역하는 작가로 활약해왔다. 유럽한글학교협의회 회장과 하이델베르크 이주민의회 의장도 지냈다. 1980년에 독일 유학을 갔다가 독일 남성과 결혼하여 두 자녀를 키우고, 한글학교에서 교사와 교장으로 20여 년을 봉사했다.

- 독일에서는 언제부터 글쓰기 교육을 하나요?
"3~4학년에 시작합니다. 부담 되는 수준은 아닙니다. 아직 맞춤법도 익히기 전입니다. 틀려도 감점하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의 생각을 살려주는 것입니다."

- 교과서가 따로 있나요?
"김나지움(한국의 인문계 중·고교에 해당)에서 독일어 교육을 하는데 교과서는 없습니다. 학년별 교육 목표에 따라서 교사들이 교재를 선택합니다. 통일적이고 획일화된 교과서를 쓰는 게 아닙니다."

- 다른 과목에서도 글쓰기를 많이 하나요?
"그렇습니다. 토론과 글쓰기를 곁들여 진행합니다. 세미나를 하고 보고서를 쓰는 일도 많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쓰는 보고서를 보면 한국 대학생 수준보다 높습니다."

- 시험 문제도 글쓰기에 맞추겠군요?
"한 타임이 45분인데, 기말고사 때 한 과목을 세 타임 연속으로 치릅니다. 제시문을 읽고 교사가 제시한 방향대로 논의하든지, 제시문의 등장 인물에 관해 논의하든지, 아무튼 여러 개 질문 중에서 마음에 드는 주제를 쓰게 합니다. 고학년은 내용을 파악하여 자기 생각을 쓰는 방식입니다. 제시문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재작성하는 방식으로도 시험을 치릅니다."

- 대입 시험인 아비투어는 어떻게 나오나요?
"아비투어에서는 한 과목을 보는 데 5시간을 줍니다. 감시 체계는 아예 없습니다. 간식을 먹으면서 풀어도 됩니다. 쓰고 싶은 것을 마음껏 쓰라고 합니다. 시험을 보고 나면 기운이 다 빠져버릴 정도입니다. 하루에 한 과목밖에 치를 수 없습니다."

-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공부만 잘 해서는 안 됩니다. 교과서만 갖고 글을 잘 쓸 수는 없습니다. 경험도 많이 해야 하고 인간성도 갖춰야겠지요. 인생을 고민해 보지 않는 사람들이 글을 잘 쓸 수 있겠습니까? 한국처럼 지식 습득과 학업 성취만을 위해서 교육하는 것은 글을 잘 쓰게 하는 환경이 아닙니다. 신나게 놀고, 서로 부딪치고, 여행도 하면서 삶을 알아가는 과정이 있어야 좋은 글이 나오는 것입니다."

- 교민들도 교육에 관심이 많지요?
"한글학교에서 지켜본 한국 엄마들은 정말로 다급합니다. 자녀가 못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막 야단을 칩니다. 엄마와 대화를 하고 그 내용을 적어오는 숙제를 주면 어떤 학생들은 무척 잘 써옵니다. 엄마가 대신해준 것이죠."

- 한국 교육은 어떻게 보시나요?
"공부 분량은 한국이 독일보다 3배나 많은데 효과는 엇비슷합니다. 대학에 가면 독일서 공부한 학생들이 더 향상됩니다. 한국에서는 학생들 실력을 너무 규격화해서 안에 가두는 식으로 교육하는 것 같습니다."

- 사례를 들어주세요.
"한국의 명문대에서 2학년 때 독일로 유학온 학생이 있었습니다. 처음 2년간은 무척 잘 해서 난리가 났습니다. 독일 학생들이 느릿느릿 하는 사이에 이 학생은 펄펄 날았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는 발전을 멈추고 하락을 하더니 4년째에 학교를 그만 두었습니다. 다른 나라에 가서 전공을 바꿔 공부하더군요."

-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독일 학생들은 실제로 공부를 잘 못하는 게 아니라 자기 방식으로 기초를 쌓는 과정을 거친다고 보면 됩니다. 처음에는 어설프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식으로 다지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 학생들은 그렇게 머리가 돌아가지 않고 결국 절망하고 맙니다. 물론 한두 가지 사례로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요."

- 한국과 독일에 차이점이 많군요.
"한국 교육은 일정한 포맷을 갖고 있습니다. 그밖에 있는 학생들을 도와주고 잘 하도록 기다려주는 토양이 아닙니다. 독일엔 괴짜들이 많지만 그들이 나름대로 성장하게 도와줍니다."

- 괴짜들을 교수들이 어떻게 대하나요?
"제 전공이 철학인데 세미나를 하면 별별 아이들이 다 들어옵니다. 저 학생은 어떻게 저런 이야기를 할까 신기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교수들은 무작정 비난하지 않습니다. 인격모독으로 오히려 교수가 비난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수는 그 이야기를 다 들어줍니다. 너무 지나치면 이렇게 합니다. '네 말이 웃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네 말을 충분히 했으니 이젠 다른 아이들에게도 이야기할 기회를 주겠다.'"

/ 하이델베르크(독일)=신향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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