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 '행성B' 출판사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 '행성B' 출판사
  • 독서신문
  • 승인 2014.11.03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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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 북칼럼니스트의 우수 출판사 탐방' (6)
▲ "작가적인 삶과 출판사업자로서의 삶은 무늬와 결이 다르지만, 삶을 대하는 태도는 별다르지 않다"는 림태주 대표

[독서신문] '행성B' 출판사 림태주 대표는 20여 년간 출판밥을 먹었다. 현암사, 문학동네, 웅진출판 등에서 일하다 2010년 행성B 출판사를 차렸다. 주로 인문과 아동 분야 책 70여 종을 출간했다. 1994년 황동규 시인의 추천으로 시단에 발을 들였고, 올해 『이 미친 그리움』이라는 산문집을 직접 내기도 했다.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이기를 원하는 림태주 대표를 만났다. 말랑말랑한 글발로 SNS 스타가 된 림태주, 외모에서 풍기는 아우라가 벌써 화성, 금성을 넘어 미지의 혹성에 도착한 느낌이다.

- '행성B'라는 이름이 참으로 특이하다. 어떤 철학이 담겼는가?
"옛사람들은 별을 보고 길을 찾았다. 저는 독자의 인생에 길잡이 역할을 한다는 측면에서 책도 하나의 별과 같다고 사유했다. 그래서 책 만드는 집이 하나의 거대한 행성이라고 여긴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지구별 외에는 생명체가 없다고 믿거나 우주 그 어디에도 지구별과 같은 푸른 행성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량한 우주의 빗방울 하나에 지나지 않을 지구에만 생명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오만이고, 신이나 우주의 낭비일 것이다.

'행성B'는 나무가 있는 수많은 행성 중에 하나일 것이다. 알파벳 B는 원래 '집'이라는 그림문자에서 왔다. 그 집은 우주에 처음부터 있는(Be) 것이고, 그 집에서 생명이 생겨나고(Born), 그 집은 우주의 중심(Balance)이며 경계(Border)다. 또한 책(Book)은 껍질을 벗겨 이름을 쓰는 너도밤나무(Beech)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Planet B'가 우주가 숨겨놓은 또 다른 대안(Plan B)이기를 바랐다. 우리말 '비(Rain)'는 생명의 젖줄이고 풍요를 상징하고, 한자어 '비(飛)'는 자유로움과 역동성을 의미한다. 알파벳 B를 새로운 출판 행성의 이름으로 정한 이유다."

 

- 책을 내는 '작가'께서 직접 출판 사업을 해보니 어떤 생각이 드는가?
"정확하게는 출판경영자가 작가로 데뷔했다고 하는 게 옳겠다. 제가 작가가 돼보니 출판사와 작가와의 관계를 훨씬 더 잘 이해하게 됐다. 작가가 에디터와 호흡을 맞출 때 무엇을 가려워하고 무엇을 힘들어하는지 이번에 내 책을 내면서 절절하게 체험했다. 사실 작가적인 삶과 출판사업자로서의 삶은 무늬와 결이 많이 다르다. 그러나 삶을 대하는 태도는 별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중을 요하고 성실을 요하고 책임을 요하고 어떤 경우에도 희망에 복무해야 하는 입장은 똑같다."

- 세간에 SNS를 잘 활용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실제로 회사에 도움이 되는지.
"물론이다.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된다. 출판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것부터 신간을 홍보하는 일까지 매우 유용한 도구임에 틀림없다. 또한 잠재력 있는 저자를 발굴하는 창구의 기능도 있다. 그러나 이게 쉬운 일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오랜 시간과 정성, 그리고 진정성을 요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작년에 출간돼 5만부가 판매된 인문 베스트셀러 『유대인 이야기』의 트리거 포인트는 페이스북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페이스북이 아니었으면 단기간 내에 그토록 뜨거운 반응이 일어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SNS가 독서 점유 시간을 빼앗아 간 것은 분명하지만, SNS를 잘 활용하면 독자들이 책을 더 읽도록 압박하고 유혹할 수도 있다."

- 『유대인 이야기』를 써 히트를 쳤던 홍익희 선생의 최신작 『세 종교 이야기』가 또 뜨고 있던데 어떤 책인가?
"홍익희 저자는 유대인에 관한한 국내에서 가장 깊게 천착한 연구자 중의 한 분이라고 할 수 있다. 유대교를 공부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한 뿌리에서 갈라진 기독교와 이슬람교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세 종교가 어떻게 같고 다른지 객관적인 입장에서 정리해낸 책이 『세 종교 이야기』이다. 때마침 교황이 한국을 방문했고,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으로 종교분쟁이 도마 위에 오른 때라 이 책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고 할 수 있다. 종교인이든 아니든 종교를 통해 세계사를 새롭게 들여다본다는 측면에서 충분히 교양과 함께 지적 재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행성B'의 책들 중 '참으로 아까운 책'이 있다면?
"올 여름에 나온 『농사짓는 철학자, 불편한 책을 권하다』라는 책이다. 이 책은 제가 책바치로서 의무감을 가지고 만든 책이다. 다르게 말하면 안 팔릴 걸 알고도 꼭 필요한 책이라서 만들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초판도 소화가 안 될 줄은 미처 몰랐다. 하지만 책바치로서의 자존심을 걸고 정말 강추하고 싶은 부끄럽지 않은 책이다. 이 책은 산촌에서 자급농을 지으면서 생태적 삶을 살고 있는 에코아나키스트인 저자가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 읽고 생각의 힘을 길렀던 책들을 여러 사회적 이슈들과 함께 소개하고 있는 독서 에세이다.

우리의 의식을 일깨우고 진실을 보는 힘을 키워주는 '좋은 책을 찾아 읽는 일'은 쉽지만 썩 괜찮은, 그리고 조용하면서도 깊이 있는 일이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어른들이 먼저 읽어보기를 권한다."

- 림 대표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저자(도은)처럼 사는 것에 관심이 있어 보이는데.
"땅을 밟고 대지를 호흡하며 사는 삶이 가장 인간적인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소박한 행복이고, 본질과 실존이 가장 자연스럽게 맞닿는 지점이라고 믿는다. 저자와 같은 투철한 의식을 가지고 살기는 힘들겠지만, 삶의 모습은 대략 저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저의 도시농부 흉내는 그 삶으로 돌아가기 위한 일종의 예열이다. 늦지 않게 손에 흙을 묻히는 삶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 작가로서 림 대표의 글은 상당한 매력이 있더라. 독자들이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훈련을 해야 하는지 비결을 좀 알려달라.
"비결 같은 것은 없다. 그렇지만 무턱 대고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는 구태의연한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이런 말들을 심화해서 몇 개월짜리 교육과정을 만들어 문화센터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것 같던데 저는 별로 가라고 권하고 싶지 않다. 한 줄을 쓰더라도 제대로 심혈을 기울여 쓰는 게 좋고, 많이 넓게 읽는 것보다 적더라도 좁혀서 깊이 읽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글감이 없어서 못 쓰는 게 아니라 글쓰기 기술이 모자라서 못 쓴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등단을 하거나 전문 작가가 될 것이 아니라면 테크닉이 중요한 게 아니라 글 쓸 거리가 중요하다. 얕게 이리저리 떠돌지 말고 한 곳을 정해 깊게 파는, '천착하는 책 읽기'를 권하고 싶다. 천착하고 무르익으면 무수하게 많은 이야기가 그 샘에서 마르지 않고 터져 나오게 된다."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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