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한지은 기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우리는 길고도 짧은 삶을 살고 있다. 이 애매한 길이의 인생에서 나 자신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며, 다른 사람 대해 100% 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의 세 번째 작품 『장미와 주목』은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랑을 선택한 두 남녀가 함께한 삶의 끝에서 비극을 맞이하고, 화자인 주인공이 그 비극 속에 감춰졌던 진실에 조금씩 다가서는 과정을 특유의 간결하고 신랄한 문체로 그린 작품이다.
저자는 삶과 죽음, 순간과 영원이라는 대명제 아래 인간의 계급의식과 걷잡을 수 없는 욕망, 자기희생과 연민이라는 명분을 쓴 우매한 가식, 관계와 소통의 지난함에 대해 호소하면서 인간 심리의 미스터리를 통찰한다.
휴 노리스는 어느 날 찾아온 낯선 부인의 요청으로 과거에 자신을 슬픔과 경악에 빠트렸던 존 게이브리얼을 만나러 간다. 그러나 허름한 호텔방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던 게이브리얼을 본 순간 충격에 휩싸인다. 게이브리얼이 죽기 전 들려준 이야기는 휴 노리스의 기억을 완전히 산산조각내며 그의 기억을 십여 년 전 콘월의 세인트 루로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
교통사고로 불구가 된 처지를 비관하며 자살을 계획했던 휴 노리스는 영국 콘월의 소도시에서 순간의 감정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아름다운 귀족 처녀 이사벨라와 강렬한 개성을 가진 야심가 존 게이브리얼을 만나면서 두 남녀의 삶과 그들을 둘러싼 일들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두 남녀에 얽힌 이야기 퍼즐을 짜 맞추던 휴 노리스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된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나 ‘사람이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라는 의문에 걸맞게 똑같은 사람에 대한 상반된 평가와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 보이는 인간성의 진상, 그 허점을 파악하고, 지나간 모든 기억을 다시 꿰어가며 사랑의 허상을 깨닫는다. 인간이 얼마나 예측 불가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인지를.
이 책은 주관적 판단의 위험성과 타인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 가능한지를 묻는다. 우리는 나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해 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아무리 내가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늘 내 곁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 장미와 주목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 공경희 옮김 | 포레 펴냄 | 328쪽 | 1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