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유지희 기자] 우리 반에는 남자가 여덟 명 있다. 여자는 스물세 명인데 말이다. 그리고 그 여덟 중 다섯은 찌질이다. 내가 미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찌질이로 만족하라는 법은 없다. 안타깝게도 내 또래 남자애들은 대개 찌질하다. 게다가 징그럽다. -본문 15쪽-
16세인 ‘나’의 하루는 시시하고 따분하다. 3년째 다니고 있는 수도원 같은 사립 중학교에는 ‘셀린 디온’이나 ‘콜드 플레이’ 따위의 밥맛없는 노래나 듣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비싼 옷으로 휘감지 않으면 사르코지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바보들뿐이다. 대학입학자격시험 합격률 100%를 보장해줄 모범생들로만 선발한 결과다.
그러나 집에 돌아온다고 딱히 나을 것도 없다. “볼륨 좀 낮춰라”, “살쪘다”, “주말마다 파티냐?” 등등 얼굴만 마주 보면 온갖 잔소리를 퍼부어대는 엄마, 속은 꽉 막힌 권위주의자면서 겉으로만 쿨한 척하는 새아버지가 기다리고 있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미래’다. 수학은 젬병에 체육도 꽝, 음악에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예쁘지도 않은 데다 잘하는 것도 없고 관심 있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부모님처럼 일만 하고 TV나 보는 꽉 막힌 삶은 사양, 그럭저럭 관심 있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지도 않다. 앞날만 생각하면 두려움부터 앞서는 16세의 ‘나’. 짜증 나고 답답한 하루하루에 살아갈 힘을 불어넣어 주는 것은 음악뿐이다.
한창 사춘기를 겪고 있는 10대들에게는 모든 것이 시시하게 느껴지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휴대폰 압수처럼 사소한 일 하나가 하늘이 무너지는 큰일로 느껴진다. 이 책은 프랑스 작가의 작품이지만 이야기 속 ‘나’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대학 진학만을 목표로 삼는 꽉 막힌 학교, 장래 희망을 털어놓으면 안정적이지 않다고 일축하는 부모님, 주변 어른들에 대한 답답함과 불만, 부모님의 이혼과 껄끄러운 새아버지와의 관계, 사춘기 소녀들끼리 나누는 예민한 우정, 좋아하는 가수에 대한 열정,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복잡 미묘한 마음, 첫 경험에 대한 두려움과 고민, 앞날에 대한 불안까지 10대들의 고민과 열정이 재기 발랄하고 유머러스한 일기로 그려졌다.
이 매력적인 일기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록 밴드 ‘레드 제플린’ 이야기다. 별나게도 동시대 가수보다 70년대 록 밴드들을 좋아하는 ‘나’는 레드 제플린의 역사를 10대 특유의 경쾌한 어조로 기록한다. 레드 제플린의 전신인 야드버즈 시절부터 데뷔 무대, 미국에서의 유례없는 대성공, 밴드를 덮친 불운 등 천재 아티스트 네 명의 발자취가 간결하면서도 상세하게 이어진다. 특히 마약 중독, 난잡한 사생활, 악마 숭배 루머 등 화려한 조명 뒤에 가려진 어두운 면모도 가감 없이 밝혀 ‘레드 제플린 평전’으로도 손색이 없다. 앨범을 발표할 때마다 인기를 끌었던 레드 제플린의 명곡들과 가사를 인용하며 시적이고 은유로 가득한 레드 제플린의 노래에 청춘의 기쁨과 열정, 방황을 날카롭게 포착하고 10대의 복잡하고 예민한 감정을 대신 표현해준다. 픽션보다 극적인 레드 제플린의 노래와 역사는 ‘나’의 이야기와 어우러지며 색다른 재미를 더한다.
휘갈긴 낙서 같은 그림과 쿨한 척 적어내려 가면서도 격렬한 감정이 담긴 이 책은 실제 16세 소녀가 쓴 일기처럼 생생하다. 독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그린 듯한 ‘나’의 하루를 통해 사춘기의 감정을 공유하고 공감하며 울고 웃으며, 그 속에서 스스로 해답을 찾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 틴송 : featuring 레드 제플린
클로딘 데마르토 지음 | 이주희 옮김 | 아일랜드 펴냄 | 192쪽 | 12,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