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성(性)이 있었다.
태초에 성(性)이 있었다.
  • 김혜식
  • 승인 2007.10.12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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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섭의 『일본인과 에로스』를 읽고
▲ 김혜식(수필가)     ©독서신문
 어린 날 일 년에 한번 갈까 말까한 목욕탕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목욕이래야 기껏 고무 통에 데운 물을 퍼 담아 검둥개 멱 감듯 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도 명절 때, 혹은 학교용의 검사 때만 가능했다.
 목욕탕 굴뚝엔 항상 빨간 네온글씨로 ‘목욕탕’이라고 써 붙여있었다. 그 글자는 먼 곳에서도 쉽사리 보였다. 워낙 목욕탕 굴뚝이 높아서이다. 어둠이 내려앉은 동네 어귀에 자리한 목욕탕 굴뚝엔 ‘목욕탕’이라고 쓴 네온사인에 빨간 불빛이 들어오곤 했었다. 추운 겨울날 나는 그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온몸이 따뜻해졌다. 그리고 잔뜩 낀 몸의 때를 깨끗이 벗는 기분마저 들었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용의 검사 하는 날은 선생님 앞에서 주눅이 들기 예사였다. 목에 낀 까만 때, 허옇게 머리에 슬은 서캐 때문에 나를 비롯 다수의 반 아이들은 선생님 앞에서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했었다. 그런 몸의 때로 인하여 용의 검사 시간엔 선생님께 손바닥을 맞기 일쑤였다.
 요즘처럼 집집마다 목욕시설이 갖춰진 시대에선 아이들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지난날 어찌 보면 목숨이 붙어있어서 산 것이지 마치 짐승처럼 살아온 시간들이 아니었나싶다. 몸의 청결보다 우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호구지책에 골몰했던 게 사실 아닌가.
 그러나 이웃나라 일본은 1세기 전부터 목욕탕 문화가 대중화 되었었다고 한다. 100여 년 전 서양인들이 일본에 와서 가장 놀란 것은 그들의 목욕 습관이라고 했다. 이런 사실에 비추어볼 때 일본이 청결 면에선 우리 민족보다 앞섰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보잘 없는 섬나라 국민인 주제에 그런 문화가 일찍이 발달했을까? 궁금했다. 그 때 나의 서재에 꽂혀진 『일본인과 에로스』라는 묘한 뉘앙스를 풍기는 제목의 책 한권이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책은 저자가 서현섭으로 건국대 정외과를 졸업, ‘70 년 대 중반 주일 대사관 발령을 받아 일본과의 인연을 맺게 된 이래, ‘자칭 일본 전문가의’길을 걷게 됐다고 한다. 일본에서 3등 서기관, 1등 서기관 및 참사관으로 6년 여 근무하면서  일본에 관한 책을 천 여 권 구입해 읽었다는 작가 소개말에 더욱 나의 호기심이 일었다.
 저자는 자신의 저서에 수록된 ‘목욕탕과 사랑방’이란 글에서 일본인들의 청결성에 대해 자세히 서술했다. 100여 년 전 서양인들이 일본 와서 놀란 것은 뻐드렁니에다가 앞니는 까만 칠까지 한 볼썽사나운 외관과는 달리 그들이 목욕을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일본의 청결성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그것은 습기 많은 기후 탓이라고 한다. 또한 종교도 많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신토라는 신앙에서 조령(祖靈)을 그들은 신봉한다. 헌데 그 조령(祖靈)이 자손 곁에 머물며 더러우면 가까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 신앙심이 그들의 청결 성을 더욱 부채질 하는가보다.
 날고기를 먹는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던 서양인들도 어느 틈엔가 사시미와 초밥을 즐겨먹고 있다. 거기엔 아마도 일본인들의 청결이 일조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일본의 혼욕 문화를 본 우리나라 조선 통신사가 그들을 상것이라고 기록했다는 내용에선 고개가 끄덕여졌다. 남녀가 유별한 그 시절, 서로 알몸을 드러낸 그 괴이한 장면에 소스라칠 것은 불 보듯 뻔하지 않은가.
 허나 조선통신사들이 일본을 금수와 같은 민족이라고 침 뱉으면서 정작 엄동설한에 그들은 몇 번이나 목욕을 했을까 궁금하다. 목욕탕 하나 없던 그 시절 우리 사대부들이 그들의 혼욕문화에 헛기침만 했지 청결에 대해서는 별로 주목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마쿠라에’ 라는 원색적인 춘화도(春畵圖)는 딸자식이 베갯머리에서 보는 그림이란 뜻이다. 이것을 시집가는 딸에게 어머니가 혼수품에 슬그머니 넣어주는 게 그곳의 풍속으로 자리하고 있을 정도다.
 춘화집(春畵集)을 성(性)의 백과사전으로 여길 만큼 일본인들은 태초에 성(性)이 있었다는 생각이 지배적인가보다. 이러한 일본인들의 성의식이 재미있게 표현된 책이라서 참으로 흥미진진하다.
 이 책을 통하여 그동안 왜색문화라고 일본을 경멸했던 나의 유교사상의 잔재가 무척 우매함을 느꼈다. 성(性)에서만큼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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