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연 객원문화기자] 누구나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떠올릴 때면 괜스레 느끼게 되는 아련함과 그리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시절, 우리가 그토록 좋아했던 노래들과 놀이들은 이제는 훌쩍 커버린 키와 점점 늘어가는 나이 때문일까, 우리는 그 시절로 돌아가려하지 않고 있다. 단지, 추억할 뿐이다. 추억이란 말로 우리는 과거의 순간들을 바라만 보고 있다. 아름답게 포장하면서까지 말이다. 그러나 눈 앞에서 생생히 당신의 동심이 펼쳐진다면 어떻겠는가? 바로 생생한 움직임과 이야기들이 하나의 추억이 아닌 현재의 이야기가 돼 보여지는 듯한 연극 <보물상자>가 그것이다.
<보물상자>는 여타의 공연과는 다르게 오브제를 이용한 마임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오브제와 마임만으로 공연을 채운다니, 어쩌면 걱정이 앞설 수도 있다. 한정적이고 차단된 행동으로 비어있을 무대 곳곳은 바로 그대들의 이야기가 함께 한다면 그 여느 무대보다 꽉 찬 이야기들로 공연될 것이다. <보물상자>는 우산을 대표적 오브제로 사용한다. 우산은 단순히 비를 피하는 도구로써만 인식될 수도 있겠지만 그 안에는 비가 오는 그 순간의 감정과 함께 우산을 쓴 이와 그 안에서 주고 받은 이야기들이 담겨있는 하나의 추억이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이 물건에 추억이라는 하나의 이야기가 깃들게 되면 이는 더 이상 평범한 도구가 아니다. 우리는 본디 사물에 애착을 가지며 그 속에 자신의 마음을 주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브제는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또 관객들의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효과적 도구라 생각된다.
크게 세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는 연극 <보물상자>는 각각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선 첫 번째 에피소드는 ‘순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해당 에피소드에서는 어린 시절 함께 했던 곰돌이 인형 하늘이가 등장한다. 순수했던 그 시절에는 하나의 인형에 지나지 않는 곰 인형도 자신의 친구로서 인식되기 마련이다. 우리도 어린 시절 소중히 여겼던 인형, 혹은 장난감을 놀이감 그 이상으로 여겼듯 말이다. 그러나 성숙과 순수는 함께 할 수 없는 것일까? 우리는 시간이 지나 성숙을 경험할수록 점점 어린 날의 순수를 잊고, 잃게 된다. 성숙이라는 시간의 선물은 우리를 순수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순수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한다. 그래서 훌쩍 자라버린 주인공들은 곰돌이 인형 하늘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아니, 어쩌면 듣지 않고자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늘이는 하염없이 기다리지만 인물들은 추억이라는 위안을 하면서도 그 시절을 외면하고는 한다.
이후에도 진행되는 에피소드들은 계속해서 순수했던 그 시절을 상기시켜준다. 그러나 이는 결코 어린 시절이 현재보다 더 순수했기에 그 시절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시절 자체가 아닌 그 순간에 가지고 있었던 ‘순수함’ 그것만을 원하는 것이다. 세상의 눈이라는 억압에 휩싸여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이 아닌 오롯이 순수한 본연의 시각으로 세상을, 자신을, 또 현재를 바라보자는 것이다. 지금 이 시절을 순수의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우리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그 시절이 별다를 것이 있겠는가?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그 시절의 순수와 다를 바가 없을 터이니 말이다.
어린 시절의 순수를 느끼고 그 시절의 추억을 단순히 추억이 아닌 직접 느껴보고 싶다면 연극 <보물상자>를 찾아 보는 건 어떨까? <보물상자>는 대학로 푸른달 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