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엔 ‘사랑의 손 편지’를…
이 가을엔 ‘사랑의 손 편지’를…
  • 조석남 편집국장
  • 승인 2014.09.23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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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석남 편집국장

[독서신문 조석남 편집국장] 하늘빛은 한층 푸르러지고, 땅의 열기도 가라앉았다. 열린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의 숨결에 가을 냄새가 물씬하다. 뒤를 돌아보는 여유가 생기면서 지난날과 그 누군가가 그리워지는 이 계절…. 이때쯤이면 ‘가을 편지’ 한 자락이 생각나야 제격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언제부턴가 우리는 ‘손 편지’, ‘친필(親筆) 편지’를 잊은 시대를 살고 있다.

필자 역시 지나온 세월을 되짚어보니 언제 ‘손 편지’를 마지막으로 보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그래도 대학시절과 기자생활 초창기만해도 부모님께, 또 친한 친구에게 그리움과 감사의 편지를 써서 보내고 받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성탄절 카드조차 온라인으로 대신했고, 연하 카드 몇장 보낸 것이 전부인 것 같다.

편지는 말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과거와는 다르게 말이 조금씩 가벼워지면서 글의 강점이 더욱 부각되기도 한다. 이에 따라 글로 쓴 편지만이 줄 수 있는 감정이입에 사람들은 감동을 받게 된다. 편지를 쓰기 위해 일일이 편지지와 봉투를 구입했을 것이며, 그 편지에 쓴 글들을 하나하나 써내려 갔을 것이며, 또한 상대방을 생각하며 말보다는 다른 깊음으로 한번 더 생각해서 작성했을 편지에서 더욱 많은 감동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다.

우정사업본부에 따르면 ‘보통우편물’은 지난 2002년에 52억 통으로 최고점을 찍은 뒤 매년 감소세다. 문서·편지 등이 디지털화한 영향이다. 보통우편 중에서도 ‘손 편지’는 극소수라고 한다.

e-메일과 휴대전화 문자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편지는 어쩌면 박물관 속 골동품처럼 케케묵은 과거의 도구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e-메일과 휴대전화 문자는 사람의 감정을 전달하기에는 편지보다 못할 것이다.

e-메일을 손으로 바꿔준다는 일명 ‘스네일 메일 마이 이메일(Snail Mail My Email)’ 운동이 미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것을 봐도 ‘손 편지’, ‘친필 편지’의 감동은 남다르다. 여기서 ‘스네일 메일’이란 ‘달팽이처럼 느리다’는 뜻으로 차가운 e-메일을 직접 손으로 써서 따뜻한 편지로 보내는 일반우편물을 이르는 말이다.

편지는 역사를 바꿔놓을 정도의 위력도 갖고 있다.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메시지는 후대 저항운동의 물꼬를 바꿔 놓았는가 하면, 마르틴 루터는 면죄부 판매에 반대하는 서한을 주교들에게 발송함으로써 종교개혁의 단초를 마련했다.

한 소녀가 에이브러햄 링컨에게 ‘수염을 길러 보세요’라고 권한 한 통의 편지는 미국 역사의 전기가 됐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겉봉에 쓰인 내 이름을 보면 사랑에 찬 심장의 고동에서 절묘한 음악을 끌어내 들리지 않는 심포니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실토했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베르테르의 편지는 못다 이룬 사랑에 가슴앓이하는 그 시대 젊은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미국 줄리아드 음대에 입학한 최초의 동양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씨는 음악을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지만 어머니가 써주신 10장의 ‘손 편지’를 끼고 다니며 힘든 시간들을 이겨냈다고 한다. 누군가가 그리우면 가장 먼저 찾는 것이 남겨진 편지이다. ‘친필 편지’는 척박하고 메마른 세상에 그늘 같은 쉼터가 된다. 고달픈 출근 길 우연히 발견된 “아빠, 힘내세요”라는 딸아이의 편지보다 더 신나고 힘나는 격려는 없을 것이다.

<독서신문>은 『편지가 꽃보다 아름답다』라는 ‘북 레터’ 형식의 책을 출간한 바 있다. 예쁜 편지지를 앞 부분에 넣어 ‘친필‘로 ‘사랑’을, ‘행복’을 담아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할 수 있도록 했다. ‘북 레터’라는 새로운 상상이 메마른 사람들의 가슴 속을 단비처럼 적셨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담은 것이었고,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독서신문>은 이와 함께 창간 45주년을 맞는 오는 10월을 기점으로 ‘사랑의 손 편지 쓰기’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펼쳐나갈 계획이다.

현대인의 불행은 ‘소통의 부재(不在)’에 있다. 진실한 마음을 전하고 닫혔던 벽을 허무는데 ‘손 편지’보다 좋은 것은 없다. 꽃은 눈을 즐겁게 하지만, 편지는 가슴을 설레게 한다.

‘마음의 꽃’ 편지는 닫혔던 세상을 녹이는 희망이 된다. 짤막해도 친필로 전하는 메시지는 큰 격려가 된다. 고된 직장생활에 지친 아빠에게, 온 몸에 성한 데가 없으면서도 자식만을 걱정하시는 엄마에게, 오랫동안 못 뵌 스승님께, 마음을 열지 못했던 친구·선후배에게, 사랑하는 마음만은 꼭 전하고 싶은 연인에게 이 가을, 한 통의 ‘손 편지’를 보내보자.

이번 가을은 ‘독서의 계절’ 만이 아니라 ‘편지의 계절’이었으면 좋겠다. 못 쓰는 글씨이면 어떤가. 맞춤법·철자가 좀 틀리고, 문장이 더러 꼬이면 어떤가. 정성이 가득 담긴 ‘손 편지’라면 받는 사람에게 감동을 안겨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세상은 그만큼 더 풍요롭고, 아름다워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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