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길'이 아니면 걷지를 않겠다는 '푸른역사'
'역사적인 길'이 아니면 걷지를 않겠다는 '푸른역사'
  • 독서신문
  • 승인 2014.09.01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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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 북칼럼니스트의 우수 중소출판사 탐방' (4)
▲ 통의동의 고풍스런 아담한 한옥에서 '역사서'와 사랑을 하고 있는 박혜숙 대표

[독서신문] 동 이름도 고풍스런 통의동의 아담한 한옥. 마당에는 귀한 배롱나무가 한 그루 서있다. 출판사 '푸른역사'가 둥지를 튼 집이다. 박혜숙 대표는 유독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 배롱나무 밑에는 사람의 발자국과 유쾌한 담소가 끊이질 않는다. 출판사 이름에서 풍기듯 주로 역사서만 고집한다. 출판사 운영이 어느 때보다 쉽지 않다는 난리통에서도 역사만 죽어라 캐는 그녀는 도대체 역사와 전생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박혜숙 대표의 그 속내를 들어보기로 했다.

- 출판인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역사논문을 두 편 쓰고 역사를 가르치며 역사가를 꿈꿨는데 그 길이 내 길이 아님을 절감했다. 그 뒤 서점가에서 책을 읽으며 배회했는데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평온해졌다. 평생 하나의 직업만 선택한다면 책을 만드는 길임을 확신하게 됐고 그길로 별다른 고민 없이 출판계로 뛰어들었다."

- 역사 분야 출판을 고집하는 이유는?
"정보서 전문 출판사에 입문해 출판을 시작했다. 수많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가공하는 일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전문가 소리를 듣게 되었을 때 뼈대만 있는 앙상한 책 만들기에 염증을 느꼈다. 출판 자체에 회의가 들었다. 다시 초발심으로 돌아가 평생 흥미를 잃지 않고 만들 수 있는 분야를 고민하다 역사를 선택했다. 역사는 내게 늘 고향 같았고 지금도 그렇다."

- 대표께서 생각하는 역사란 무엇인가?
"헤아릴 수 없는 삶의 양식과 나침반 같은 지도가 무궁무진하게 숨어 있는 광맥이다. 그 광맥을 어떻게 파고들어 가느냐에 따라 금맥이 되기도 하고 은맥이 되기도 하고 구리광산이 되기도 한다. 삶의 노다지 그것이 역사다."

- 『역사의 길목에 선 31인의 선택』이라는 책을 통해 출판사 '푸른역사'를 처음 알게 됐다. 인상적인 책이었다. 모두가 다 소중한 책들이겠지만 특별히 자랑하고 싶은 책들은?
"무엇보다 '푸른역사'라는 출판사 이름은 기억하지 못해도 이 책 이름을 이야기하면 '아!' 하는 책이 있다. 정민 선생님의 『미쳐야 미친다』를 들겠다. 그리고 이젠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다른 출판사 식구가 되었지만 그래도 기획하고 편집하며 '푸른역사' 편집자 초보 시절 자신감을 갖게 해준 책 3권, 조유식 선생님의 『정도전을 위한 변명』과 이덕일 선생님의 『사도세자의 고백』, 『누가 왕을 죽였는가』가 있다.

또 3년 연속 한국출판문화상 저술상을 받아 '푸른역사'의 저력을 유감없이 발휘해준 유승훈 선생님의 『작지만 큰 한국사, 소금』, 백승종 선생님의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 한명기 선생님의 『역사평설 병자호란』도 자랑하고 싶은 책들이다.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처음으로 선정한 편집 분야 최고상을 받은 강명관 선생님의 『조선풍속사』 1~3권, 그리고 관계자 분들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선 참패했지만 다행히도 눈 밝은 이들이 곧잘 추천하곤 해서 아직도 아쉬움이 남은 천전환 선생님의 『조선의 사나이거든 풋볼을 차라』도 있다."

 

- '문사철'의 인문학이 대세라고 말들은 많이 하는데 역사서 쪽 상황은 어떤가?
"출판시장이 전반적으로 구조조정 상황에서 인문학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십년 전 2만여 독자층을 확보할 수 있었던 책이 지금 시점에서는 2천부 정도로 보면 된다. 1980년대 사회과학 서적에 몰두했던 그 세대가 역사서 독자층으로 재편되었었는데 이제 새로운 독자층을 형성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쉽지 않은 상황이나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영화 <명량>과 관련된 '푸른역사'의 명서가 있다고 들었다. 어떤 책인가?
"명서는 독자들이 판단하고 평가해줄 몫이라서…. 지금 마무리 작업 중인 책인데 『이순신과의 동행-1597년 8월 14박 16일』이다. 모함에 걸려 백의종군하던 이순신 장군이 조선 수군의 궤멸 후 다시 통제사로 임명받아 현지로 가는 14박 16일의 하루하루를 마치 그때 이순신과 함께 동행하듯이 그대로 재현한 책이다."

- 가장 최근 출판된 책들을 소개해달라.
"『정절의 역사』이다. 조선시대 국가의 관리와 통제의 대상이 된 여성의 정절 문제를 조선통사적으로 다룬 책인데 이 책에 대해서는 저자의 다음 발언으로 대신하고 싶다. 조선에서 정절은 부부간 상호의무적인 개념이 아닌 아내의 일방적 의무 개념으로 전개됐다. 그리고 그 개념은 임금에 대한 신하의 충과 어버이에 대한 자식의 효와 같은 맥락에서 제기된 '하위자의 의무'가 돼버린다. 정절이 삼강의 질서로 편입되는 순간, 정절은 개인이나 부부관계의 영역이 아닌 사회와 국가의 이념과 결부된 '공공'의 것이 된다. 정절을 해친 아내에 국가가 분노하고 법으로 응징하는 식이다.

논리적으로 여자의 정절은 남자의 충절과 쌍을 이룬다고 하지만 남자들은 자신에게 부여된 충절의 의무보다 여자들의 정절을 관리하고 간섭하는 데 과도하게 에너지를 쓴 셈이다. 연구를 하다 '너나 잘하세요'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더라. 여성들의 정절 관리를 남자들의 충절을 담보한 것으로 쓰고, 또 국가가 그것을 관리하다니 말이 되는가. 송시열이 '여자들을 개가 못하게 하는 제도는 너무 심하다'는 의견을 피력한 적이 있다. 반대세력들은 이 발언을 물고 늘어졌다. 비판자들은 '송시열이 여자의 정절을 부정한 것이고, 이는 충절을 부정하는 것이니 조정을 배신할 가능성이 있는 위험한 사람이다'라는 논리를 폈다…."

- 독자들의 관심을 끌만한 출판기획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어떤 책들인가?
"한국사 최대의 연구단체인 한국역사연구회 소속 역사학자들이 집필하는 한국 시대사 시리즈. 고대로부터 현대사까지 시대사별로 두 권, 모두 열 권으로 기획 중이다. 60여 명의 학자가 십여 년에 걸쳐 집필한 원고를 모아 편집 중이다."

- '푸른역사 아카데미'에 대해 자자한 소문을 들었다. 소개를 부탁한다.
"평소 독자와 저자가 직접 대면할 수 있는 공간을 늘 꿈꾸다 지난 2011년 과감하게 35평의 공간에 아카데미를 열게 되었다. 역사대중강의를 비롯해 음악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행사를 기획해오고 있는데 '역사에 관심을 갖게 하는 기회를 부여하는 곳'이라 하고 싶다."

- 출판업도 경영이다. 경영자로서 출판사 식구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은?
"자금과 관련한 출판사 운영에 관해서는 최종적으로 대표가 책임지지만 나로 하여금 역사서 만들기에 주력하게 해주는 고마운 친구들이다. 대략 칠년에서 십년을 함께한 친구들인데 그들이 편집자로서의 모든 과정을 관통할 수 있을 때까지 오래 지켜보고 싶을 뿐이다."

- 끝내 어떤 사람으로 독자와 출판계 선후배들에게 남고 싶은지.
"어떤 사람? 이리저리 인간적 결함도 많고 실수도 수없이 되풀이하는 등 여러모로 봐줄 만한 구석은 없지만, 책 만들 때만큼은 깐깐했던 사람 정도로 남으면 충분할 것 같다."

/ 최보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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