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기념회 유감
출판기념회 유감
  • 조석남 편집국장
  • 승인 2014.09.01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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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석남 편집국장

[독서신문 조석남 편집국장] 본 칼럼을 통해서도 신랄한 비판을 한 바 있지만 말 많던 정치인의 출판기념회가 이번엔 제대로 도마 위에 올랐다. 출판기념회가 사정당국의 표적이 된 계기는 새정치민주연합 신학용 의원의 ‘입법비리’ 의혹이 불거지면서부터다.

신학용 의원은 한국유치원총연합회로부터 정치자금 3,390만원을 출판기념회를 통해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사용한 것으로 전해지는 방식은 ‘쪼개기 축하금’이다. 검찰은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지만, 신 의원은 정치자금이 아닌 ‘개인자금’이라고 반박하는 중이다.

김명수 전 서울시의회 의장 역시 건설업자로부터 1억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 8월 20일 서울고법에서 징역 5년형이 확정됐다. 김 전 의장은 “1억원은 출판기념회 후원금이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출판기념회에 대한 압박 강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뇌물 통로’로 전락한 출판기념회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국회의원 및 선출직 공무원의 출판기념회에 대해 관련 법 정비에 나서겠다”고 밝혀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는 ‘바람 앞의 등불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됐다.

지난 8월 21일 시민단체 ‘바른사회시민회의’는 제19대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 개최 현황을 조사해 발표했다. 바른사회시민회의에 따르면 제19대 국회의원 300명 중 192명의 의원이 2011년부터 올해 7월까지 총 279건의 출판기념회를 개최한 것으로 조사됐다.

정당별로는 새정치민주연합이 107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새누리당 79명, 통합진보당 3명, 정의당 3명 순이었다. 출판기념회 개최 횟수는 1회가 124명으로 가장 많았다. 2회 개최한 의원은 54명, 3회 개최한 의원은 13명으로 다수 개최한 의원도 많다. 상임위원회별로는 산업통상자원위원회 25명, 기획재정위원회 21명, 정무위원회 20명,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19명, 국토교통위원회 18명,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15명, 안전행정위원회 14명 순이다. 이같은 통계는 ‘알짜배기 상임위원회가 출판기념회의 흥행 조건’이라는 정치권의 공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산하기관이 얼마나 많은가, 예산권을 쥐고 있느냐가 얼마나 알짜배기인지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순수문학을 지향했던 글쟁이들의 옛 출판기념회는 소박했다. 1955년 첫 시집을 낸 박인환 시인은 문인들이 드나들던 명동 ‘동방싸롱’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시집 출간이 귀하던 시절이라 많은 예술인이 정장을 하고 모였다. 축사와 시 낭독이 끝나자 가수 현인이 감미롭게 샹송을 불렀다. “브라보, 오늘의 시인 박인환을 위하여”라고 건배사를 외친뒤 술잔이 오갔다. 그 시절 출판기념회는 주머니 가벼운 문인들이 모처럼 신나게 먹고 마시는 축제였다고 한다.

얼마 전엔 산문집을 낸 류근 시인이 치킨집으로 문인과 독자를 초대했다. 책값 포함해 회비 2만원을 걷는다고 페이스북으로 알렸더니 250여명이 찾았다고 한다. 글인지 선전인지 모를 정치인의 잡문 모음집을 축하하는 출판기념회와는 상반된 모습이다.

출판기념회란 저자의 땀과 재능, 사상과 철학, 인생과 혼을 담은 작품집의 출간을 축하하기 위한 모임이다. 수필집의 경우, 한 권을 묶으려면 엄격히 정선된 작품 50여 편은 있어야 하며, 최소한 2년에서 길게는 십여년이 걸리기도 한다. 더구나 작품집이나 자서전 등은 진실이 담보되는 고통스러운 창작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대필’이란 어불성설이다. 출판 비용은 500만원 안팎이며 거의가 자비로 출판된다. 넉넉하지 못한 문인들로서는 이도 만만치 않아 출판기념회까지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의원들의 출판기념회는 ‘정치자금 모금의 변형된 창구’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지난 2004년 3월 통과된 이른바 ‘오세훈 선거법’에 따르면 정치후원금은 연간 1억5,000만원까지만 모을 수 있게 돼있다. 그러나 출판기념회는 ‘경조사’로 분류돼 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의원들이 책을 팔고 받은 돈은 법적으로 고스란히 개인 돈이다. 모금한도도 없고 회계보고 의무도 없다. 책값은 권당 보통 1만~1만5,000원 안팎이지만, 책값만 달랑 내는 경우는 드물다. 책값을 포함해 격려금으로 개인당 5만∼10만원을 내는 게 관례로 여겨지고 있고, 50만∼100만원, 수백만원을 내는 ‘큰손’도 적지 않다. 출판기념회를 치른 경험이 있는 모 보좌관은 “선거를 치르려면 실탄(자금)이 필요하다”며 “막대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출판기념회를 할 수밖에 없다”고 실토했다.

출판기념회를 통해 편법으로 후원금을 모금하는 정계의 관행은 없어져야 한다. 출판기념회가 편법으로 후원금을 더 걷는 창구로 활용되면 안된다는 얘기다. 오래 전부터 이에 대한 개선 방안이 거론됐으나 공염불에 그쳐왔다.

이제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후원금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정치권에서 풀어야 할 일이다. 더이상 신성한 ‘출판기념회’라는 이름을 모독해선 안된다. 그리고 거듭 말하거니와 ‘출판기념회’는 온전히 문인에게, ‘진짜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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