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누리의 '연극으로 읽는 세상' _ (11) 사회의 편견과 시선에 매몰되지 않기
김누리의 '연극으로 읽는 세상' _ (11) 사회의 편견과 시선에 매몰되지 않기
  • 김누리 칼럼니스트
  • 승인 2014.08.25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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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누리 칼럼니스트
아름다움은 인간의 숙명이다. 현대 사회는 아름다운 사람을 사랑하고 원하기 때문이다. 실제 아름다움은 흔히 취업을 위한 면접장에서는 물론 연애를 위한 소개팅, 친목을 위한 술자리에서까지 그 누군가를 판단하는 최우선 가치가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갖기 위해서 매 순간 노력한다. 물론 그 아름다움이란 다수의 의견 속에서 사회적 합의가 완성한 '절대적'인 정의의 '미(美)'를 말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 매 순간 매스미디어가 다듬고 부추기는 이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위해 다양한 수단을 이용한다. 특히 여기에 '나'의 생각과 기준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현 사회에 정당하게 인정을 받고 편입할 수만 있다면 의심과 저항은 버린다. 오늘도 수많은 인간은 운동부터 성형, 성형부터 거식증까지 수많은 방법으로 아름다움을 욕망한다.

대한민국은 언젠가부터 '성형 천국 또는 선진국'이라는 명예 아닌 명예를 얻었다. 외국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상당한 기술이 자리하고 있다. 누군가는 코에 보형물을 넣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입꼬리를 수술한다. 어느새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한 사전 준비의 필수 과정으로 자리한 성형은 결코 식지 않을 유행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사시사철 24시간 다이어트를 부르짖는 이들도 있다. 비만을 치료하기 위해 한 달에 몇 백을 붓는 것조차 쉽다. 이와 같이 아름다움을 얻기 위한 간절한 바람은 어느새 과욕을 부르며 독으로도 찾아오지만 그 누구도 쉬이 포기를 하지는 않는다. 그만큼 사회에서 낙오가 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거대한 절망임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 현대 사회는 단순 외모지상주의를 안착시키는 것을 넘어서서 그를 직접 뒤흔들며 개인의 자아에 극심한 혼란을 가져다준다. 흔한 예로 한편에서는 특정 연예인의 외모를 찬양하면서도 다른 쪽에서는 과도한 성형중독 등 아름다움을 끝없이 추구하는 행동에 대해 지적하곤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이중적인 사회의 태도는 개개인 스스로 분열되는 자아 안에서 방황하도록 한다. 어떠한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하는가. 과연 이 아름다움은 그 누구를 위한 것인가. 결국 현대 사회는 개인의 정신과 신체를 모두 서서히 압박하며 완벽한 자유와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 문제의 지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최근 대학로에서 공연을 마친 연극 <굿 바디>는 바로 이러한 현대 사회의 폭력적인 시선과 억압적 태도를 비판적으로 조명한 작품이다. 실제 동일한 제목의 원작을 집필한 작가는 여성의 성을 솔직하게 다양한 시점으로 그린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이브 앤슬러이다. 이브 앤슬러는 <버자이너 모놀로그>에서 여성의 성과 성기에 집중하던 것을 넘어서 <굿 바디>에서 여성의 몸매와 현 사회의 편견에 대해 주목했다. 그녀는 절대적으로 정의된 미가 통용되고 강요되는 사회에서 스스로도 그것에 대한 강박에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음을 깨달은 후 3년 간 여행을 통해 전 세계 수많은 종류의 여성을 만난다. <굿 바디>는 그 여정을 녹여낸 결과물이다.

<굿 바디>는 '좋은 몸매'를 강조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브와 그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일상적 사연을 일종의 옴니버스 구성처럼 소개한 연극이다. 어린 시절의 엄마에게 느낀 열등감이 남은 채 거식증을 앓고 있는 카르멘. 자신의 아름다운 가슴을 사랑한 의붓아버지와의 관계로 가슴절제술을 하게 된 니나. 사랑하는 남자가 원하는 이상적 몸매로의 성형을 계속할 수 있도록 일부러 몰래 아이스크림을 먹는 티파니, 그리고 그 외 여러 명. 연극은 여성의 몸매를 둘러싼 다양한 시선의 사연을 그림으로써 현 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롭고 정확하게 지적하였다. 다만 깊이 있는 문제의식을 내밀면서도 젊고 유쾌한 감각이 돋보이는 연출로 몰입감과 공감대까지 높였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이브가 진정 '내 몸의 주인은 나'라는 생각을 깨닫는 과정에서 아름다움 역시 특정한 집단에 의해 재단될 수 없는 것임을 강조했다.

사회 집단의 힘은 강력하다. 사회로부터 일정한 논리가 주어지면 개인은 그에 쉽게 매몰된다. 추상적인 개념인 '아름다움' 역시 그와 똑같은 결과를 낳아 현재 수많은 문제를 파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현 사회에서 개인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는 단순 대인관계의 원만함이나 삶의 윤택함으로 대체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스스로 자신의 몸과 마음의 진정한 주인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표류한다는 것은 사회의 인정을 받느냐보다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다. 남의 시선이나 편견에 자유롭고 단단히 저항할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 물론 끊임없는 상호 작용이 필요한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서 완벽한 자유를 획득할 순 없다. 그러나 적어도 각 개개인이 주체적으로 사회의 시선에 맞서려고 노력한다면 현대 사회의 절대적 가치 기준 역시 변화의 가능성을 갖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굿 바디> 극 중 레아는 이런 대사를 이브에게 전달한다. "자신의 나무를 사랑하라." 실제로 모든 나무는 저마다 각기 다른 모양을 한 채 뿌리를 내리고 서 있다. 하나하나 모두 다른 모양이기에 더욱 특별하고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이렇듯 타인에 의해서가 아닌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신뢰하고 사랑할 줄 아는 자세만 있다면 어떠한 혼란에도 영향 받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너무 당연한 소리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어디서 꾸준히 주목하고 있는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강력한 계기가 있지 않으면 쉽게 현재의 문제점을 파악하지 못한다. 다수의 의견을 그대로 정답으로 신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있듯이 어떤 사회나 인생에도 정답은 없다. 그 정답은 각자가 문제를 풀어 만들고 제시하는 것이다. 부디 연극 역시 마치 수학 문제 힌트처럼 인간의 삶에 일련의 도움을 제공할 수 있는 매체로 작용하길 바란다. 

■ 글쓴이 김누리는?
'씨즈온' 문화 전문기자다. 연극을 집중 취재하고 있다. 따뜻한 감성의 큰 흐름 속에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예리함으로 연극계를 조명하고 있다. kimnuri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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