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엄마 박선영의 '아이 마음 읽기' _ <9> 아이, 그림책에서 첫 키스를 배우다
초보엄마 박선영의 '아이 마음 읽기' _ <9> 아이, 그림책에서 첫 키스를 배우다
  • 박선영 칼럼니스트
  • 승인 2014.08.20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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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선영 칼럼니스트
동화 『개구리 왕자』를 기억하는가? 어른이 된 지금, 자세한 줄거리가 떠오르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결말은 어렴풋이 생각난다. 공주의 키스를 받은 개구리가 왕자로 변했다는 이야기다. 어쩐지 어이없고 황당하다.

필자는 이 동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개구리와 키스한다는 설정이 맘에 안 든다. 동화지만 그 발상이 너무 얄궂다. "아니, 그 많은 피조물 중에 왜 하필 개구리야?" "게다가 키스하기 전엔 왕자로 변신할 거라곤 상상도 못했잖아." "이 거룩한 인생에 웬 도박이란 말인가!"

우연히 일곱 살 딸아이와 함께 책을 다시 읽었다. 새로운 깨달음과 함께 잊혀진 감동이 잔잔히 밀려왔다.

그대는 첫 키스의 아련한 추억을 기억하는가? 두 입술이 닿기 직전, 과연 그 찰나에 감정은 어땠을까? 마치 개구리와 키스하기 전 공주의 심정이 그랬을지 모른다. 심장이 두근두근거린다. 머릿속엔 오만가지 생각이 스친다.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는 설렘을 넘어서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이것이 공주의 마음이고 어린 아이의 실감나는 상상이다.

어린 시절, 우린 TV와 영화 속에서 그리던 낭만적인 키스를 상상했다. 과연 어떤 느낌일까?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첫 입술이 닿는 순간은 축축한 물컹거림 그 자체다. 세상에 태어나 단 한 번도 맛보지 못한 그 물컹거림…. 그 누가 키스를 아름답다 했던가. 오히려 충격에 가깝다. 어쩐지 좀 지저분하고 물렁물렁하고 축축한 느낌이다. 하지만 그 낯선 충격을 넘어서야 한다. 두려움은 이내 정신이 몽롱한 황홀감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개구리가 어느새 왕자로 변신한다.

바로 그래서 공주의 첫 키스 상대는 개구리였던 것이다. 두툼한 입술에 흉측하고 끔찍한 개구리는 첫 키스에 대한 아이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또한 어린 아이가 품을 법한 성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읽어준다. "아니, 쪼끄만 어린 애가 뭘 안다고 두려워?" 만약 당신이 이렇게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어른의 무지는 때론 폭력에 가깝다. 아이들은 어른의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감정을 품는다. 심지어 아주 끔찍한 상상도 서슴지 않는다.

딸아이는 이런 말까지 했다. "엄마 얼굴이 신데렐라의 새엄마 같아." "나 이 집을 나가고 싶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안 사랑하는 사람은 엄마야." "아빠는 왕자, 나는 공주, 그리고 엄마는 새 왕비야!"

아이는 왜 이렇게 엄마를 공격할까? 필자는 그 답을 아이가 가장 사랑하는 오래된 동화책에서 찾았다. 구전동화는 오랜 세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이야기다. 그토록 오래 사랑 받으며 살아남을 수 있었던 데엔 이유가 있다. 그만큼 아이들의 말 못할 감정을 속 깊이 읽어주고 위로해준다. 갈등도 멋지게 해결해준다. 끔찍한 개구리였지만 왕자로 변신하니 그 얼마나 행복한 결말인가.

동화엔 늘 못된 계모와 새 언니, 무서운 마녀와 야수가 등장한다. 순수한 아이들이 읽기엔 너무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갈등이 첨예하다. 처음엔 필자도 구전동화를 반기지 않았다. 내 아이에게 예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만 들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너무 착해 속임수에 쉽게 꾀이는 공주는 싫다. 하지만 결국 아이는 백마 탄 왕자님의 구원을 받는 흔해 빠진 공주 이야기와 사랑에 빠졌다. 급기야는 엄마를 새 왕비, 계모에 빗대어 공격까지 한다.

엄마는 기분 좋을 땐 아이의 모든 것을 사랑으로 다 품을 듯하다. 하지만 뭔가 일이 조금만 뒤틀려보라. 엄마가 어떻게 변하는가? 매서운 눈초리로 버럭 고함을 지른다. 평소엔 입에 담지 못할 말도 서슴지 않는다. 때론 위험하다면서 아이의 작은 몸을 확 잡아당긴다. 아이의 눈엔 황당하지 않을까? 천사 같던 엄마가 순식간에 악마로 변신한다. 갑작스럽게 돌변한 엄마의 모습은 못된 새엄마와 마녀를 찾기에 충분하다.

아이가 보는 엄마의 모습은 극과 극을 달린다. 사랑으로 나를 키워주던 착한 엄마는 일찍 병들어 돌아가신 것만 같다. 나는 한참 신나게 놀고 있는데 엄마가 버럭 괴성을 지른다.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완전 마녀 같다. 잔소리도 어찌나 쉴 새 없이 많은지 신데렐라의 새엄마가 따로 없다. 가끔은 거울을 보며 나보다 더 예쁜 척한다. 백설공주의 새 왕비를 닮았다. 엄마가 미울 땐 집밖을 뛰쳐나가고 싶다. 엄마가 마귀할멈으로 변하면 사과에 독을 바를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의 마음속엔 어른이 상상도 못할 갈등이 계속 된다. 이럴 땐 구전동화만큼 좋은 게 없다. 어른은 까막눈이다. 아이의 마음을 잘 못 읽는다. 대신 아이는 동화책과 사랑에 빠진다. 아이의 마음을 속 깊이 읽어주고 위로해준다. 그리고 결말은 늘 해피엔딩이다. 작고 연약하지만 착한 주인공이 결국엔 승리한다. 아이는 세상을 자신 있게 살아갈 힘을 얻는다.

아이의 마음은 어른에게 잊혀진 미지의 세계다.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오히려 더 많이 보고 느낄 수 있다. 아이가 주는 진짜 선물은 엄마의 성장이다.
 

■ 글쓴이 박선영은?
영어번역가이자 『조물조물 창의력 요리놀이』의 저자다. 교육용 영어잡지 만드는 일을 잠깐 한 뒤 줄곧 영어번역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예술심리치료를 공부하며 가족심리상담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 성균관대 사회학과와 TESOL·번역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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