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이란 이름으로 묶은 ‘우리’의 패착, 연극 ‘청춘 일발 장전’
사명이란 이름으로 묶은 ‘우리’의 패착, 연극 ‘청춘 일발 장전’
  • 임현경 객원문화기자
  • 승인 2014.08.20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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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임현경 객원문화기자] 연극 <청춘 일발 장전>은 1970년대 후반, 파란만장했던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다, 당시는 사상 총선에서 야당이 처음으로 여당의 득표를 앞선 때다. 국민들이 유신정권을 외면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권력에 대항하는 아래로부터의 움직임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했다. 극은 장호와 종만이 무대에 뛰어드는 것으로 시작된다. 두 청년은 허공을 향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던지고, 쓰러지고, 서로를 붙잡고 다시 일어나 어둠을 향해 달려가기를 반복한다. 대체 무슨 짓인가 싶은 일련의 행위들이 '학생 운동'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권리를 찾으려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은 밟히고 짓이겨지며,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서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에 굴복해야만 한다. 한편, 불의에 대항하여 싸우는 장호와 종만 앞에 경아가 나타나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 연극 <청춘 일발 장전> 공연 장면 [사진제공=씨즈온]

시대의 피해자로 살아온 소녀

경아는 시대배경이 가진 아픔 그 자체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각종 허드렛일을 전전하다 버스 안내양이 됐다. 반갑게 승객들을 맞이하는 그에게 손님들은 계속해서 검은 손을 뻗는다. 다가오는 음흉한 손길을 말없이 웃으며 쳐내는 소녀. 이는 당시 심각했던 버스 안내양에 대한 인권 유린을 보여준다. 또한 경아는 버스 안내양을 관둔 뒤 공장에 들어갔다. 그는 공장에서 일하던 때를 회상하며 분노와 아픔을 표출한다. ‘가난하다고 인간답지 못한 삶을 살아도 좋은 것은 아니다’고 소리치는 그는 동일방직 분뇨 투척에 휘말린 바 있다. 동일방직 분뇨 투척은 1978년 실제로 발생한 사건으로, 이후 노동 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된 <청춘 일발 장전>의 중심 소재다.

진짜 가해자는 누구인가

동일방직 분뇨 투척 사건은 1978년 2월 21일 사측의 사주를 받은 남성조합원 5~6명이 노조의 대의원 투표를 하기위해 모여 있던 여공들을 향해 분뇨를 끼얹은 일로, 이날 남성 조합원들은 지부장과 총무 등 여성 노조간부를 억지로 끌어내고 사무실을 점거했으며, 투쟁하는 이들에게 잔인하게 폭력을 가했다. 당시 여공들의 증언에 따르면 가해자들은 여성의 옷을 찢고 가슴과 얼굴에 오물을 문대는 등 성희롱을 범하기도 했다. 여성들을 비윤리적으로 대했던 가해자는 공장 경영진이 전부였을까? 손을 더럽힌 자들은 사주를 받았으니 괜찮은 것일까? 이에 대한 물음에 관련 학자들은 입을 모아 ‘아니다’고 답한다.

▲ 연극 <청춘 일발 장전> 공연 장면 [사진제공=씨즈온]

약자가 최약자 앞에서 약탈자가 되는 순간

다수의 연구결과, 회사의 사주를 받지 않은 동일방직의 남자 직원들 역시 '남자로서'의 자존심과 체면 때문에, 좋은 승진 기회를 잡기위해 여성들을 방해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들에게 여성의 적극적인 사회운동은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활동’ 이전에 ‘가부장제를 위태롭게 하는 위험한 일’이었던 것이다. 결국 동일방직 분뇨 투척 사건은, 사측의 노조 탄압과 남성 직원들의 가부장적 사고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즉,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둘 모두가 가해자였다. 동일방직의 서민석 회장은 해당 사건을 두고 “노사문제가 아닌 노노갈등이었다. 대의원 선출방식을 놓고 남녀 사원간 알력싸움이 일어났고 그 와중에 남자사원이 오물을 투척했다. 이것이 여태까지 경영진의 잘못인 것처럼 비치고 있어 안타깝다”고 주장했다. 남성 직원은 자신의 ‘남성으로서’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여성 동료를 짓밟았고, 그로 인해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했다.

▲ 연극 <청춘 일발 장전> 공연 장면 [사진제공=씨즈온]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이 가지는 딜레마

피해자 행세를 하는 가해자는 또 있다. 극중 종만은 군에서 상관의 명령에 따라 거리로 나선 학생들에게 몽둥이를 휘두른다. 잠시 주저하던 그는 끊임없이 폭력을 행사해놓고서 '더이상‘은 못하겠다고 울부짖는다. 죽지 않을 만큼 두들겨 맞는 그의 모습을 보여주며 극은 모든 책임을 권력자에게 전가하고 있다. 물론 폭력을 사용하는 권력자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은 어렵다. 그렇다고 권력을 건네받았을 때 변해버린 이들의 모습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요컨대 명령을 따랐을 뿐인 군인과, 입지를 지키기 위해 동료를 버렸던 남성이 아무런 죄가 없다면, 나라를 발전시키기 위해 인권을 간과했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권력자 역시 무고하다. 그들은 ’일발 장전‘한 총구를 위로 향하기 전 스스로의 과오를 인정하고 반성해야만 한다. 더러운 자가 청렴한 세상을 소리친다면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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