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지역, 선도(仙道)와 상생 스토리텔링
부안지역, 선도(仙道)와 상생 스토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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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8.1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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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생 와이드 철학논술

[독서신문] Ⅰ. 개념 생각해보기

  ▲ 17세기 조선의 소설 홍길동전의 첫 페이지. 대한민국의 국립중앙도서관의 도장이 찍혀 있다.

문화모형에 대한 가장 단순한 분할은 ‘안/밖’의 2차원 분할에서 찾아진다. 여기에 텍스트 참여자 시점이 겹쳐지면 어떠한 방향이 제시된다. 시점이 내부 공간에 놓일 때, 그 방향은 내부 공간 중심으로부터 외부로 향하고, 시점이 외부 공간에 놓일 때, 그 방향은 외부공간으로부터 중심으로 향한다. 이러한 양상에 따르면 ‘우리/그들’에 대한 관계도 이중적 해석이 가능하다. 우리가 내부에 있으면 그들은 외부에 있으며, 그들이 내부에 있으면 우리는 외부에 있다. 
이러한 문화텍스트와 문화모형에 대한 기술은 문화 유형론과 직결된다. 가령 외부와 내부 사이의 양항성이 어떠한 특성을 갖는가, 또 이들 양항 사이에 대한 관계는 어떠한가에 따라 문화유형이 세워진다. 예를 들어 외부와 내부의 관계가 유연적이냐 무연적이냐에 따라 다른 문화유형이 설정될 수 있다. 또 내부와 외부가 분리되어 있는가, 외부가 내부 안에 반영되어 있는가, 내부가 외부의 한 부분인가에 따라 다른 문화유형이 나타날 수 있다.(-송효섭, 『문화기호학』, 아르케, 2000, 168쪽.) 이러한 내부 공간 텍스트와 외부 공간 텍스트는 부안의 남궁두와 허균, 권극중, 강증산에 대한 선도문화에서 살펴볼 수 있다.
남궁두와 허균의 선도, 권극중과 강증산의 상생에 대한 문화적 텍스트의 일반적 양상을 대립적 현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안 / 밖
     선도·정신 / 체제·현실
        후천·상 / 선천·하

Ⅱ. 개념 확대하기

남궁두와 허균의 선도
 
새만금 아리울 스토리텔링 문화권에 있는 삼신산은 고대부터 신선사상의 뿌리가 깊은 공간이다. 부안과 고군산은 허균, 남궁두, 권극중, 강증산의 선도사상과 최치원에 대한 신선담이 널리 퍼져있는 곳으로 선도문화 활동의 중요한 공간이었다. 때문에 신선의 바다와 산이 있는 부안 변산, 정읍 두승산, 고창 방장산을 삼신산으로 봉래, 영주, 방장산으로 불렀다. 이는 아래 민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동방(我東方) 금수강산/ 두루돌아 구경할제// 춘변산(春邊山) 돌아드니/ 반도명산 일봉래(一逢萊)라// 동남에는 영주방장(瀛州方文)/ 삼각으로 벌려 있고// 서북에는 만라해도/ 십이모산 통하였다// 해상의 삼신산(三神山)을/ 오늘이야 알리로다

   - 김민성, 『오오, 변산이여』, 고글, 1995, 38쪽.(1972년도에 채록한 작자 연대 미상의 부안지방 구전민요)

이들 산은 선도에 대한 중요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남궁두와 권극중 같은 선도사상의 내단 수련가들이 새만금 아리울 스토리텔링 문화권 지역에 등장한 이후 선도 수련에 대한 관심은 널리 퍼진다. 선도 수련으로 좌절과 절망을 극복하고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면서 이곳 민중들은 미륵불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건설해 보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하고 이는 ‘개벽’ 사상으로 이어진다. 미륵신앙과 선도는 개벽사상의 기초가 된다. 
조선말부터 새만금 아리울 스토리텔링 문화권 지역에서는 개벽사상이 시작된다. ‘개벽’이란 차별과 억압으로 대립과 갈등을 만들어온 선천시대(先天時代)가 끝나고 민중들에게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고 행복한 새로운 시대인 후천시대(後天時代)가 열린다는 뜻이다. 후천개벽사상은 동학·증산도·원불교 등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이들 사상과 종교는 새만금 아리울 스토리텔링 문화권지역에서 일어난 민족종교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개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증산(1871~1909)은 1871년(고종 8년) 전라북도 고부군 답내면 서산리에서 태어났고, 우덕면 객망리에서 성장하였다. 강증산은 동학농민전쟁에서 민중의 고통을 직접 목격하게 되며 개벽에 대한 꿈을 품고 동학을 대체할 새로운 종교에 대한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개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선천(先天)에서는 인간 사물이 모두 상극(相剋)에 지배되어 세상이 원한이 쌓이고 맺혀 삼계(천·지·인)를 채웠으니 천지가 상도(常道)를 잃어 갖가지 재화가 일어나고 세상은 참혹하게 되었도다. 그러므로 내가 천지의 도수를 정리하고 신명을 조화하여 만고의 원한을 풀고 개벽과 상생의 문화지대 새만금 아리울 스토리텔링 문화권의 무위의 교화(無爲之化)와 말없는 가르침(不言之敎)으로 백성들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편하게 할지니라(-『대순전경』 제1장 3절.)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싸우는 상극의 원한을 풀고, 더불어 조화하는 상생의 삶으로 전환해 인간 세상에 신선세계를 열자는 것이 ‘개벽’ 정신이다. 여기서 ‘상생’의 의미는 원을 풀어 새 시대(後天)를 연다는 뜻으로 서로 상호관계를 맺으며 서로가 서로를 살리는 해원(解寃, 원을 푼다. 해방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을 말한다. ‘상생의 도’는 민생 구제에 대한 의미가 무엇보다도 중시되는 이념이다. 그러므로 상생의 도는 선천에서 민생을 도탄에 빠뜨리게 했던 잘못된 것을 뜯어 고치는 근본 원리가 된다.(-최동희, 『증산사상연구』 제15집, 태광문화사, 1989, 89쪽.)
  이와 같이 허균, 남궁두, 권극중, 강증산, 최치원으로 이어지는 새만금 아리울 스토리텔링 문화권 선도문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문화가치이다.

Ⅲ. 개념 정리하기

1. 허균

허균은 「홍길동전」과 함께 「남궁선생전」, 「장생전」, 「장산인전」 등 세 편의 신선전을 지었다. 특히 「남궁선생전」은 다른 작품보다 허균 자신의 선도사상과 관련된 지향의식이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허균은 1608년 부안현 우반 정사암으로 들어가 쉬게 된다.
우반 정사암은 부안현(扶安縣) 해안에 변산(邊山)이 있고 변산 남쪽에 계곡이 있는데 우반(愚磻)이라 한다. 그 고을 출신 부사(府使) 김공청(金公淸)이 그 빼어난 곳을 택하여 암자를 짓고 정사(靜思)라 이름 지어, 노년에 즐겨 휴식하는 곳으로 삼았다.

나는 일찍이 사명을 받들어 호남을 왕래하였는데, 그 경치에 대해 소문은 많이 들었으되, 미처 보진 못했었다. 나는 본시 영예와 이익을 좋아하지 않아, 매양 상자평(尙子平)의 뜻을 지녔으나, 그 소원을 아직도 이루지 못했었다. 금년에 공주에서 파직 당하자 남쪽 지방으로 돌아가서 장차 소위 우반이란 곳에 집 짓고 살 결심을 하였다. 김공의 아들 진사(進士) 등(登)이란 이가,
“우리 선군(先君)의 폐려(弊廬)가 있으나 저는 지킬 수가 없으니, 공이 수리해서 사시기 바랍니다.”
하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기뻐하여, 마침내 고군 달부(高君達夫) 및 두 이씨(李氏)와 함께 말고삐를 나란히 하고 가서 보았다.

-『성소부부고 제6권』, 문부3 기 정사암 중수기.

이때 만난 남궁두에 대해 「남궁선생전」을 통해 밝히고 있다. 

2. 남궁두

남궁두 집은 임피(臨破, 군산시 임피면)로 대대로 임피에 살면서 재산도 넉넉해, 고을에서 내로라는 집안이었다. 또한 남궁두는 재능도 뛰어나 어려서 성균관 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하며, 서른 살에 사마시에도 합격했다. 이때부터 남궁두는 “거만하고 고집이 세며 자신만만하고 오만하여, 감히 재주만 믿고 고을에서 호탕하게 제멋대로 지내는” 위인이 된다. 
남궁두 나이가 서른셋이 되던 명종 13년(1558), 자신의 애첩이 외조카와 사통하는 현장을 발견하고 우발적으로 그들을 살해한다. 그러자 평소 무례하고 거만한 남궁두에게 앙심을 품었던 현령과 아전들이 죄를 무겁게 꾸며 그를 검거했다. 남궁두는 아내의 도움으로 도망쳤으나, 이 일로 그의 아내와 어린 딸은 옥중에서 굶어죽고, 전답과 재산은 모조리 흩어지고 만다. 집안은 풍비박산 나고, 자신은 졸지에 도망자의 신세로 전락한다. 
도망친 남궁두는 곧바로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가, 무주의 치상산에 들어가 선도를 전수한 스승을 만난다. 남궁두 스승은 상주의 큰 성씨 후손으로 태사 권행의 증손자로 송나라 희령 2년(1069, 고려 문종23)에 태어났다고 전한다. 흔히 ‘권진인’으로 불리는 신비로운 인물이다.

만력 무신년(1608, 선조41) 가을 허균이 공주에서 파직을 당하고 부안에서 살았다. 선생이 고부로부터 도보로 나의 여관방을 찾아 주셨다. 그리하여 네 가지 경의 오묘한 뜻을 나에게 전해 주시고, 또 그분이 선사 만났던 전말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위에서와 같이 말해주었다.
  선생의 나이는 그해에 83세였으나 얼굴은 마치 46~47세 된 사람과 같았다. 시력이나 청력이 조금도 쇠약하지 않았고, 톡 쏘는 눈동자나 검은 머리털이 의젓하여 여윈 학과 같았다. 어떤 때는 며칠을 먹지도 않고 잠을 자지도 않으며 『참동계』나 『황정경』을 쉬지 않고 외곤 하였다.

고부에서 남궁두가 허균을 찾아와 네 가지 도교 경전을 전해주고, 자신이 스승을 만나 수련한 과정을 알려주는 내용이다.


3. 「남궁선생전」

「남궁선생전」은 남궁두에 대한 실제 이야기를 기록한 이야기로 허균은 남궁두를 만나 신선 공부에 대한 경험담을 듣고 그 비결을 물어보고 있는 대목에서 그가 신선술에 관심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으며, 남궁두의 수련 과정을 자세하게 묘사하는 데서 그가 단학 수련에도 조예가 깊었음을 알 수 있다.

남궁두가 겪은 수련과정은 다음과 같다.

1. 먼저 정신을 모으기 위해 잡념을 제거하고 수마(睡魔, 졸리움)를 몰아내는 훈련을 한다.

2. 일주일 동안 잠자지 않고 견디는 훈련을 마친 후 『참동계』와 『황정경』 등 기본경전을 독송한다.

3. 곡식은 안 먹고 솔잎, 대추, 밤 따위만 날로 조금씩 먹는 벽곡(辟穀)법을 단련한다. 이를 위해 먼저 식사 양을 줄이고 차차 죽 밥을 끓어가며 검은 콩 등을 물에 타 먹는다. 그 후 잣나무 잎 등을 복용하자 몸에 종기가 나서 백일동안 고통을 겪어야 했다.

4. 3년 후부터 조식법(調息法, 호흡조절)과 운기(運氣, 기의 운행)를 통해 기운을 돌리는 화후법(火候法, 불기운)을 단련한다.

5. 운기가 익숙해지자 혀에서 甘津이 흘러내리고 단전 충일하여 단전에서 황금빛이 발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남궁두는 빨리 선인이 되고자 하는 조급한 마음에서 불기운을 억제하지 못하자 갑자기 불기운이 온몸에 뻗쳐 소리를 지르고 뛰쳐나와 그만 성선의 단계에서 실패하고 만다.

-최삼용, 『한국초기소설의 선도사상』, 형설출판사, 1982, 218쪽.

「남궁선생전」과 함께 선도 사상을 살펴볼 수 있는 소설은 「홍길동전」이 있다.

4. 「홍길동전」

「홍길동전」 주인공인 ‘홍길동’은 실존인물로, 연산군 6년 경신(1500, 홍치 13) 10월22일(계묘) 기록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강도 홍길동을 잡았으니 나머지 무리도 소탕하게 하다. 영의정 한치형·좌의정 성준·우의정 이극균이 아뢰기를, 
“듣건대, 강도 홍길동을 잡았다 하니 기쁨을 견딜 수 없습니다. 백성을 위하여 해독을 제거하는 일이 이보다 큰 것이 없으니, 청컨대 이 시기에 그 무리들을 다 잡도록 하소서.”
하니, 그대로 좇았다.

  領議政韓致亨, 左議政成俊, 右議政李克均啓: “聞, 捕得强盜洪吉同, 不勝欣抃。爲民除害, 莫大於此。請於此時窮捕其黨。” 從之。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13책, 431쪽.

「홍길동전」은 영웅담과 선도에 대한 요소가 들어있는 소설로 실존 인물을 대상으로 창작되었다. 
허균은 유·불·도·제자백가·서학에 이르기까지 지적욕구가 다양하고 왕성한 사람이었다. 또한 형식에 얽매어 있는 유교를 거부하고 사상에 대한 자유를 추구하며, 뿌리 깊은 성리학의 독단 속에 현실에서 차별과 소외로 살아가는 서류·하급관료들에 대해 관심이 깊었다. 이는 권위주의적이고 경직된 도학과 유교의 규범을 벗어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이었다.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유 의지에 의한 삶을 살고자했던 의지적 인물, 인간에게로 향한 사랑과 사회 혁신을 시도한 인물이 허균이다. 그는 현실에서 소외당한 자아의 갈등을 타고난 문학적 재능을 활용하여 새로운 지식과 사상에 대한 탐구를 다양하게 익혀나갔다. 전통적인 유교 가정에서 성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유교에 속박되는 것을 거부한 자유주의자였다. 허균이 많은 관심을 가졌던 종교와 사상으로 유교·도교·서학·양명학 등이 있다. 허균은 이들을 통해 정신적 안식처와 이상향을 찾고자 했다. 

이를 성소부부고 제13권 문부 10 독에서 
 
'내가 부령(부안)에 있을 때 일이 없던 차 마침 제자의 전서를 얻어 익히 읽었다. 이리하여 깨달은 것을 풀어서 각자의 후면에 썼다. 이것은 감히 나의 관점이 스스로 옳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고, 그저 내 추한 소견을 나타냈을 뿐이다.'

고 밝히면서 30열선(列先)에 대한 열선찬을 지어 도가에 대한 조예를 과시하고 있다. 

“몰래 해로운 일을 하지 말며, 귀신이 없다고 말하지 말게. 착한 일을 행하고 덕을 쌓으며 욕심을 끊고 마음을 단련한다면 상선의 극치를 세울 수 있으며, 난새와 학이 며칠 사이에 내려와 맞아줄 것이네.”
하였다.
나는 선생의 음식·거처가 보통 사람과 같음을 보고서 이상하게 여겼더니, 선생은,
“내가 처음에는 비승하리라 여겼는데 빨리 이루고 싶어 하다가 이루지를 못하고 말았네. 우리 스승님께서 이미 지상의 신선은 되었으니 부지런히 수련하면 8백세 나이는 기약할 수 있다고 허락하셨네. 
요즘 산중이 너무 한가하고 적막하여 속세로 내려왔으나 아는 사람 한 사람 없을뿐더러, 가는 곳마다 젊은이들이 나의 늙고 누추함을 멸시하여 인간의 재미라고는 전혀 없네. 
사람이 오래도록 보고 싶어 하는 것이란 본래 즐거운 일인데, 쓸쓸하고 즐거움이라고는 없으니 내가 왜 오래 살려고 하겠는가? 이 때문에 속세의 음식을 금하지 않고 아들을 안고 손자를 재롱부리게 하며 여생을 보내다가 승화하여 깨끗이 돌아가 하늘이 주신 바에 순종하려네. 그대야말로 선재와 도골 있으니 힘써 행하고 쉬지 않는다면 진선이 되기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것이네.
우리 스승께서 일찍이 나에게 인내력이 있다고 하셨는데 참아내지를 못하고 이 지경이 되었네. 인이라는 글자 하나는 선가의 오묘한 비결이니 그대 또한 삼가 지니고 놓치지 말게나.”
하였다. 얼마 동안 머무시다가 붙잡는 손을 뿌리치고 떠나갔으니, 사람들은 그가 용담으로 다시 갔다고들 하였다.

허균은 재상과 영웅 같은 삶을 살고 싶었으며, 또한 신선과 같은 삶 사이에서 갈등하며 현실의 모순과 갈등, 소외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신선과 같은 삶을 끊임없이 동경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인생관은 그의 시문에서 발견된다. 「장산인전」, 「장생전」에서 주인공이 죽음에서 환생하여 금강산이나 해동 일국사를 찾아간다는 내용은 신선계에 대한 동경의 표현이라 보여 진다.


Ⅳ. 개념 찾아보기

  홍길동과 남궁두는 난세를 풀어나갈 영웅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홍길동은 사회·정치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으며, 남궁두는 자유로운 영혼을 제시하고 있다. 홍길동은 행동으로 남궁두는 자유로운 영혼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보여준다. 시대가 요구하는 영웅과 자유로운 영혼이 무엇인지 개념을 정리해 보시오. 
 

▲ 황인술 / 논설위원 인문학당 아르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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