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흐름을 담은 값진 유산 ‘현판’
역사의 흐름을 담은 값진 유산 ‘현판’
  • 한지은 기자
  • 승인 2014.08.14 16: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서신문 한지은 기자] 한국 전통 건축물, 특히, 기왓장이 올려져 있는 건물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면 마치 당연한 듯 기와지붕 밑 어딘가에 기다란 네모 판들이 걸려있다. 대개 어려운 한자들이 쓰여있어 ‘그냥 그렇구나’하고 넘기기도 하지만 그 작은 네모 판 안에 생각보다 많은 역사와 문화가 담겨있다는 것을 어느 누군가는 알까.

현판이란 주로 널빤지에 글자나 그림을 새겨 건물의 문 또는 벽에 거는 것을 말한다. 쉽게 설명하면 건물의 명칭을 나타내는 표지인 것이다. 저자 김봉규는 묵묵히 자리를 잡고 그 이름을 알리는 이런 현판들에 주목해 그 역사의 현장, 문화의 현장을 하나하나 발로 답사하고 글과 사진으로 기록을 남겼다.

이 땅에 남아 있는 ‘현판’에는 많은 사연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더불어 한 건물의 대표적 이름표인 만큼 현판 글씨는 다른 글씨와 다르게 대단한 공력과 실력이 요구돼 아무나 쓸 수도 없었다. 이름깨나 있는 사람들의 현판 글씨가 많은 것도 그 이유다. 명필 한석봉 선생조차 도산서원의 편액 글씨를 쓸 때 가슴이 두근거리고 붓을 떨며 긴장했다고 한다. 특히, 사찰의 전각이나 일주문에는 유독 조선의 왕이 쓴 글씨[御筆]들이 많이 눈에 띄는데, 가끔 심심하면 유생들이 사찰에 와 행패를 부리거나 하는 일을 조금이라도 막고자 사찰들은 앞다투어 왕이나 왕의 친척이 쓴 글씨를 내걸었다고 한다.

밀양의 영남루는 그 규모가 정면 5칸 측면 4칸에 불과하지만, 한때 300개에 이르는 현판이 걸려 있는 ‘현판 경연장’이었는데,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으로 꼽혔던 이곳에는 글씨나 학문으로 이름깨나 날렸던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글씨를 내걸었다. 지금도 조윤형, 이황, 이색, 문익점 등 당대 학자와 명필들의 글씨를 볼 수 있다.

선조들은 건물이 화재나 풍수해 등으로 소실되거나 파괴될 때도 현판만은 구하기 위해 발을 동동 굴렀다. 밀양 영호루 현판의 경우도 영호루 건물이 소실된 이후 현판 하나가 있었기에 다시 복원되는 역사를 갖고 있다. 숭례문 화재 때도 거침없는 불길에 모두 손을 놓고 있을 즈음 “현판을 사수하라!”는 다급한 명령이 떨어져 명필이었던 현판은 천만다행으로 구제됐다. 그 덕분에 숭례문의 옛 현판은 지금 복원된 숭례문 위에 걸려 있다.

그러나 선조들도 소중하게 여겼던 이러한 역사적 문화적 가치에 비해 현판은 홀대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판이 국보나 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경우는 단 하나도 없다.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것도 추사 글씨인 봉은사 ‘판전(板殿-서울시유형문화재 제84호)’ 현판과 명종 글씨인 영주 ‘소수서원(紹修書院-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30호)’ 현판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저자는 옛 현판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문화적 ‘유산’을 누릴 수 있는 것은 큰 행운이라고 말한다. 글씨 자체가 가진 가치뿐 아니라 그 문구가 담고 있는 의미가 주는 가르침, 그 현판에 담긴 일화, 글씨를 쓴 서예가의 예술혼 등 유·무형의 값진 유산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비록 ‘기행’이라는 이름을 달기는 했지만, 이 책은 신라의 명필 김생의 글씨에서부터 일제강점기 조선 총독도 인정했던 김종호의 글씨까지 우리나라 현판의 역사를 모두 훑었으며, 정설과 야사를 포함한 ‘역사’ 그리고 당대 학문의 흐름과 서체의 발달 등 ‘문화’에 대해 풍부하게 다루고 있다. 옛 현판에 대해 종합적으로 다룬 교양서로는 처음인 이 책을 통해 우리나라 현판의 가치와 역사를 다시금 되새기고 소중한 문화유산으로서, 또 후손으로서 이를 아름답게 보존하는 자세와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겠다.

■ 현판기행: 고개를 들면 역사가 보인다
김봉규 지음 | 담앤북스 펴냄 | 344쪽 | 16,000원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동혁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권동혁 070-4699-7165 kdh@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