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누리 기자의 '연극으로 읽는 세상' _ (10) 관객, 예술의 '주인'으로 거듭나기
김누리 기자의 '연극으로 읽는 세상' _ (10) 관객, 예술의 '주인'으로 거듭나기
  • 김누리 칼럼니스트
  • 승인 2014.08.13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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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누리 칼럼니스트
배우는 무대의 '주인'이고, 관객은 '손님'이다. 연극을 비롯한 공연예술 장르에서 배우와 관객의 관계는 흔히 이렇게 정의되곤 한다. 실제로 배우는 제 집에 초대한 손님을 맞이하듯 관객을 공연을 통해 깍듯이 접대한다. 특정한 언어와 신체적 행위를 통해 적극적으로 극의 메시지와 감정을 느끼도록 돕는다. 그러면 관객 역시 '손님'으로서의 역할에 지극히 알맞게 행동한다. 객석에 앉아 숨을 죽인 채 입을 꾹 다물고 무대만을 고집스럽게 쳐다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관계가 지속될수록 두 집단은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무대와 객석을 나누는 거리만큼 서로의 차이만을 학습하며, 각자의 역할 밖으로 벗어나지 못한다.

페터 한트케의 작품 <관객모독>은 바로 이와 같은 전통적이고 경직된 관계 사이에서 발생하는 '역할'의 문제를 통렬히 비판했던 대표작이다. <관객모독> 속에서 배우는 일정한 캐릭터에 맞춰 사건을 진행하는 것이 아닌 관객의 수동적이며 방관자적인 태도를 지적하게 된다. 배우의 거친 욕설과 가감 없는 조롱, 도발적 대사는 관객들을 당황케 하는 반면 객석에서 보다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실제로 최근 국내에서 공연된 극단 76의 <관객모독>에서는 관객에게 물을 뿌리며 강렬한 인상과 낯선 경험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결과적으로 이런 경험이 아니라면 언제나 대중은 스스로 관객으로서의 '역할'에 매몰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다. 관객은 예술 안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무엇을 효과적으로 얻어 가는가. 이는 분명 한번쯤 진지하게 돌아보아야 할 문제다. 무대와 객석, 배우와 관객 사이에 발생한 위계질서가 오히려 궁극적인 '소통'과 '공감'을 가로막는 큰 장애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국내 연극계 역시 2000년도 초부터 이러한 필연적 과제의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도출했다. 그 결과 완성된 것이 일명 '관객 참여형 연극'이다. '관객 참여형 연극'이란 배우가 무대에서 극을 진행하는 도중 관객과의 대화 등을 통해 소통하는 극이다. 대표적으로 대학로 연극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관객을 극 중 캐릭터의 배경을 설정하는 데 참여시키거나 배우를 치장시키는 역할을 하도록 했다. 하지만 결국 대개 대학로의 수많은 '관객 참여형 연극'은 극의 웃음을 살리기 위한 목적이 더 강하여 그만큼 관객의 역할을 제한적으로 두고 있다. 실제로 배우와 관객의 경계를 완전히 무너트리며 역할을 나누는 경우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즉 현재의 '관객 참여형 연극' 역시 진정한 '소통'의 확장을 위해서는 한 단계 더 발전된 모습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다양한 예술 장르가 함께한 고재경의 <잠깐만>이라는 작품은 특히 주목된다. 마임니스트 고재경이 연출과 출연을 맡은 작품으로, 19세기 명화를 무용, 마임, 연극을 통해 재현하였다. '사람들의 외면을 받던 길거리 공연단이 관객들의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새로운 공연을 만든다'는 이야기로 구성했다. 모네와 밀레를 비롯하여 뭉크, 클림트, 고흐까지 대중에게 친숙한 화가의 대표작들을 무대에 함께 소개하며 유쾌하고 재치있게 표현하였다. 이 작품은 탈장르 융합 예술적 면모를 선보인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가치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관객과의 적극적인 교류가 눈에 띤다.

<잠깐만>에서 관객은 더 이상 무대의 배우를 보기 위해 찾은 '손님'이 아닌 '주인'이 된다. 배우와 함께 훨씬 적극적으로 극을 만들어가며 소통한다. 실제 모네의 그림 '양산을 쓴 여인'을 표현하는 장면에서 관객은 부채를 든 채 바람을 형상화했다. 그러면 배우는 관객의 미세한 손 움직임에 맞춰 행동한다. 양산을 날려 보내거나 스스로 몸을 벽으로 내던졌다. 특히 뭉크의 '절규'에서는 여러 명의 관객이 배우와 함께 나무 틀 안에 얼굴을 넣어 특유의 절망적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 또 다른 배우는 그림 속 붉은 곡선이 인상적인 하늘 배경을 천을 흔들어 직접 표현하였다. 관객은 이처럼 실제로 무대 위에서 균등하게 분배된 역할을 실행하며 명화의 내용과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되었다. 
 
사실 예술은 어려울 게 없는 하나의 '놀이'다. 예술의 소비자인 관객으로서의 대중 역시 이를 인지해야 한다. 언젠가부터 현대 사회에서 예술이란 범접할 수 없는 신이 내린 영역이라 치부되어왔다. 예술에 가격으로서 일정하게 가치를 재단하는 산업의 시스템과 개인의 재능과 직업을 추앙하는 현상이 이와 같은 왜곡된 시선을 만든 것이다. 실제 궁극적으로 연극을 비롯해 공연예술은 배우냐, 관객이냐의 각자 위치에 관계없이 공통적인 감정과 가치관을 공유하는 자리일 뿐이다. 물론 각자의 위치를 온전히 벗어날 순 없지만, 그 '역할'에 너무 매몰되어 진정한 예술의 재미를 놓치는 것 또한 옳지 않다.

분명 이것은 극에 대한 무조건적인 개입이 가능함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만큼 관객이 예술에 대하여 올바른 '주인' 의식을 가지는 것 또한 차후 미래 문화예술 발전에 좋은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중 스스로 경직된 자세로 배우들에 의해 편집된 메시지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닌 적극적인 관람 및 참여 태도를 갖길 바란다. 결국 대중은 개개인마다 각자의 삶의 가치관이 있기에 극을 해석하는 방향 역시 다양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다양한 이야기가 풍성하게 같은 관객과 무대 위 배우들과 교류되었을 때 더욱 큰 '소통'의 효과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다.  

결국 모든 문화예술은 상호의 의견 존중과 직접적인 소통으로 더욱 발전한다. 그럴수록 각자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는 것도 중요하다. 실제 고재경의 <잠깐만>은 앞으로도 여러 미술관에서 순회 레퍼토리 공연으로 보다 더 많은 관객을 찾아갈 예정이다. 이처럼 앞으로도 배우와 관객이 먼저 나서서 함께 즐거운 감정을 채워나가는 장이 많이 형성되길 바란다. 물론 이를 위한 정부와 문화예술 공공 단체의 지원도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글쓴이 김누리는?
'씨즈온' 문화 전문기자다. 연극을 집중 취재하고 있다. 따뜻한 감성의 큰 흐름 속에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예리함으로 연극계를 조명하고 있다. kimnuri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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