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적 현실에 대한 나지막한 고백, 연극 ‘손순: 아이를 묻다’
비극적 현실에 대한 나지막한 고백, 연극 ‘손순: 아이를 묻다’
  • 김누리 객원문화기자
  • 승인 2014.08.0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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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시문 김누리 객원문화기자] 모든 사람은 행복을 꿈꾼다. 사랑하는 사람과 늘 함께하고 싶고, 원하는 것을 모두 누리며 살고자 한다. 그러나 자꾸만 커지는 행복에 대한 뜨거운 욕망과는 달리 현실은 싸늘하다. 그럼에도 모두 제 갈 길에 바빠 돌아봐주는 이조차 하나 없다. 과거에 떡 하나를 나누며 소소한 행복을 나누던 것조차 이제는 불가능한 일이다. 치열한 경쟁과 그로 인한 피해로 더없이 삭막해진 현대 사회에서 행복은 점차 몽상과도 같이 변하고 있다.

어느새 행복의 기준은 돈에 맞춰졌다. 돈 있는 자가 행복하고, 없는 자는 불행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일이 세상의 진리가 되어 개인의 일상을 쉬이 압박한다. 연극 <손순>은 가난이라는 비극적 현실 속에서 절망과 상처로 뒤덮인 한 가족을 조명한 작품이다.

▲ 연극 <손순> 공연 장면 [사진제공=씨즈온]

고대 삼국과 현대의 한국, 기묘한 쌍둥이

연극 <손순>은 고대 국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유사를 엮은 일연의 삼국유사 속 이야기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드라마 극이다. 그러나 현대적으로 각색된 손순과 그 가족의 비극적 이야기는 시대를 초월하여 사람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과일장수 손순은 부인 지희와 아들 유하, 그리고 늙은 어머니와 함께 근근이 살고 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노모는 치매에 걸려 매일 지희를 괴롭히며, 아들 유하는 문둥병에 헛것까지 보며 병원비만 수백에 이르는 보살핌을 필요로 한다. 가족은 매일 가난이란 현실의 벼랑 끝에서 살아간다. 결국 손순은 지희를 설득하며 아들을 외딴 곳에 묻기로 결심한다.

극은 시대를 떠나 보편적인 가족의 갈등과 비극을 주제로 하며 새삼 현대 사회를 돌아보게끔 한다. 가난으로 인하여 아이가 죽도록 땅에 묻는다는 극단적인 이야기는 지금 들어도 끔직하다. 그러나 실제 최근에도 여전히 가난 등을 이유로 영아유기살해 및 아동 학대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누구도 쉬이 탓할 수 없지만 벗어날 수조차 없는 가혹한 운명 안에서 인간은 방황하고 절망한다. 노모의 여생과 아들 유하의 미래를 두고 값을 치고 저울질하는 손순의 삶은 지극히 현실성이 있기에 더욱 비참하기 이를 데 없다. 극은 사소한 행복을 이루기 위해 울고 웃는 인간을 통해 아이러니하고도 그릇된 현실 세태를 지적하고, 관객에게 삶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 연극 <손순> 공연 장면 [사진제공=씨즈온]

비극이 전하는 참된 메시지

비극은 쉽게 희극으로 바뀌지 않는다. 손순은 소풍을 핑계로 데리고 나온 아들 유하를 외딴 숲 한 구석에 묻고자 한다. 그러나 유하는 손순의 심리를 눈치 채고 일부러 배도 채우지 않고, 산에 더 오르려 하지 않는다. 끝내 강제로 자신을 끌어안아 묶는 손순에 죽지 않기 위해 빈다. 손순 역시 그간 자기합리화한 자신의 행동이 결코 옳지 않은 것임을 확인한다. 손순은 절망적 상황에서 유하에게 현실의 고통을 진솔하게 토로한다. 유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전해들은 후 스스로 구멍에 들어가 자신의 몸을 묻는다. 부모와 가족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은 유하의 깊은 마음이 객석까지 전달된다.

화려한 반전이나 억지스러운 해피 엔딩은 어디에도 없다. 예상했던 결말 그대로 아들 유하는 죽음을 맞이한다. 손순은 후회와 슬픔의 눈물을 흘린다. 이 연극은 오히려 완전한 비극을 통해 행복의 본질적인 기준을 새로 제시한다. 화목한 가족과 그 안에서 꽃 피우는 사랑이 작지만 소중한 행복이 될 수 있음을 전한다. 지친 서로의 존재를 감싸 안고 힘을 주는 가족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한편, 무대는 미니멀하며 상징적으로 구현되었다. 대나무와 붉은 실들이 무대 곳곳을 채웠다. 인물들의 심리에 따라 대나무는 마치 집처럼 얼기설기 세워지고 해체되길 반복한다. 결국 비극으로 달려갈수록 인연을 상징하는 붉은 실과 집을 상징하는 대나무 줄기들이 풀어지고 흩어지며 특정한 이미지를 형상하여 메시지 전달을 도왔다.

가족과 사랑에 대하여 성찰하도록 역설적으로 이야기한 연극 <손순>은 오는 오는 31일까지 푸른 달 극장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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