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누리 기자의 '연극으로 읽는 세상' _ (8) 사라지는 것에 주목하는 사회를 향해
김누리 기자의 '연극으로 읽는 세상' _ (8) 사라지는 것에 주목하는 사회를 향해
  • 김누리 칼럼니스트
  • 승인 2014.07.16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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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누리 칼럼니스트
한국 사회에서 '신토불이'는 이제 다 옛말이다. 세계는 인터넷과 SNS 메신저의 발달로 시공간을 뛰어넘어 매 순간 소통하고 새로이 변화한다. 국내 사회는 이와 같은 빠른 세계화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지대한 노력을 쏟고 있다. 갈수록 국제화를 외치는 교육과 서구문화중심적인 가치를 전파하는 매스미디어는 많은 이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도 구별할 수 없이 유입된 무수한 정보와 지식은 개인에게 흡수되어 정체성마저 쉽게 흔든다. 사람은 흔히 각자 남들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되고자 한다. 그래서 '나'만의 혜안을 자랑하듯 서구문화에 자신을 끼워 맞추는 이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품위 있는 와인과 클래식을 선호하고, 영어를 모국어와 같이 생각한다. 국내 대중은 더 이상 '한국적'이길 거부한다.

그러나 사람은 지극히 모순적이다. 대중과 사회가 '서구화', '국제화'를 지향할수록 어디에선가는 또 '한국적'인 정체성을 강조한다. 한일전이 열리면 반드시 열띤 응원을 해야 하고, 문화재를 뺏길 위기에 처하면 분노해야 한다. 상황과 태도에 따라 우리의 정체성은 끊임없이 한국과 세계를 오가며 변한다. '우리의 것을 사랑하자.' 누구나 쉽게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누구도 매일 우리 문화가 얼마나 사라지고 있는가는 알지 못한다. '문화 수호'라는 허울 좋은 말만이 오가는 현대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당장 눈앞에서 새로 탄생하는 것만이 아닌 사라지는 것을 돌아볼 줄 아는 자세가 중요하다.  

최근에 막 내린 <변강쇠 점 찍고 옹녀>는 독자적인 스타일을 가진 고선웅 연출이 국립창극단과 손을 잡고 만든 창극이다. 창극이란 기존의 판소리를 서양의 오페라 식으로 무대화한 것을 이르는 전통적인 극 양식이다. 창극은 대표적으로 국내 서구화 흐름에 따라 변화되어온 우리 문화의 상징적인 예라고도 할 수 있다. 이미 백 년 전 개화기부터 시작된 창극은 1920년대 이후 서양 연극의 본격적인 유입을 통해 쇠퇴의 길을 맞이했다. 현대 사회에서 역시 창극의 위치는 여타 전통 문화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으며 낮은 곳에 자리한다. 서양의 클래식과 오페라, 뮤지컬에 비해 구성진 소리와 장단이 무대를 지배하는 창극은 현대인에게 무척이나 낯선 장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선웅은 과감히 차기작으로 변강쇠전을 소재로 한 창극을 선택하였다.

고선웅은 두 가지의 도전을 무대 위에서 그렸다. 첫째, 현대인 특히 젊은 층에게 낯선 창극 장르의 매력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둘째, 외설적이란 이유로 많은 이들이 편견을 갖고 있는 변강쇠와 옹녀 캐릭터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고선웅은 현대적 감각을 통해 형식과 캐릭터에 변화를 주었다. 실제 국립창극단은 이번 공연을 통해 창단 이후 처음으로 18금 공연을 선보였다. 극 중 과감한 성적 묘사와 장면은 얼굴을 붉히게 하는 한편 유쾌한 웃음을 던졌다. 무대는 판소리를 중심으로 각 도 민요, 비나리, 굿음악, 가곡, 시조, 국악가요, 트로트까지 익숙한 음률로 가득 차며 관객을 절로 흥겹게 하였다. 

특히 옹녀 캐릭터에 대한 참신한 변화를 이끌어 주목된다. 성적 욕망에 지극히 충실했던 옹녀를 남편에 대한 순정이 넘치면서도 능동적인 여성으로 표현했다. 이를 넘어 극의 전반적인 내용을 옹녀 중심으로 설정하여 이끌었다. 그간 '변강쇠의 여인'으로만 알려졌던 옹녀에 대하여 자기 정체성을 부여하였다. 극 중 옹녀는 남편을 줄줄이 잃는 운명을 꿋꿋이 극복하며 자신의 원하는 바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얻는 열녀로 그려졌다. 고선웅이 만든 옹녀로부터 현대의 여성상을 어렴풋이 발견할 수 있다. 장르나 내용 면에서 모두 고전인 <변강쇠전>을 새로 해체하고 분석하여 관객에게 깊은 공감과 재미를 선사하였다.

사실 이와 같은 전통 문화예술 장르의 변화 시도는 과거부터 지속되어 왔으며, 현재까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전통과 현대의 감각을 혼합시킨 마당극 <미소>를 공연해온 정동극장 역시 최근 기획공연으로 <배비장전>을 선보였다. 고전문학에 무용과 음악, 영상을 융합하여 무대의 시, 공간적 상상력을 높였다. 퓨전 국악 그룹 '공명'이나 '푸리' 역시 대표적으로 국내와 해외에 국악의 가능성을 널리 알려왔다. 그러나 어느 문화예술이나 '소통'이 없다면 사라질 수밖에 없다. '우리의 것'에 대한 보존과 계승은 단순히 생산자의 몫만이 아닌 수용자에게도 있음을 생각의 환기가 필요하다.  

흔히 취향의 차이를 말한다. 물론 개인마다 각자가 선호하는 것에 대한 집중적인 관심과 애정을 품는 데 지적할 이유는 없다. 단지 모순적인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우리의 것'에 대한 소중함을 알고 있다면 그에 마땅한 지속적이고 일관된 태도를 보일 줄 알아야 한다. 그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내가 과연 얼마나 관심을 가져왔었나?' 진지하게 돌아봐야 한다. 문화재도 전통 예술도 그 형체가 사라진 뒤에야 관심을 둔다면 그것은 과연 무슨 의미를 남길까? 사라진 후에는 돌아볼 시간과 자유조차 박탈당한다. 분명 현대 사회는 계속 발전될 것이고, 무언가는 계속 과거와 함께 사라질 것이다. 기억해야 한다.

항상 현대적 각색이 된 전통문화 예술 작품이 무대에 오를 때면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마치 하루하루 생명을 간신히 연장하는 산소호흡기와도 같다. 그러나 어느 것이나 발전과 성장은 직접 부딪히고 갈등하며 길을 개척하는 것이다. 더 이상 '우리의 것'이 가능성에 머무르지 않길 바란다. 무대를 넘어 객석을 채운 웃음이 꾸준히 이어지길 바란다.
     

■ 글쓴이 김누리는?
'씨즈온' 문화 전문기자다. 연극을 집중 취재하고 있다. 따뜻한 감성의 큰 흐름 속에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예리함으로 연극계를 조명하고 있다. kimnuri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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