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누리 기자의 '연극으로 읽는 세상' _ (7) 오늘을 살아가는 그대에게
김누리 기자의 '연극으로 읽는 세상' _ (7) 오늘을 살아가는 그대에게
  • 김누리 칼럼니스트
  • 승인 2014.06.26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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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누리 칼럼니스트
우리는 모두 공산품이다. 그 누구나 똑같은 교육과정을 밟고, 전쟁과 같은 입시를 치른다. 대학에 들어오면 만끽할 것 같았던 푸르른 젊음과 뜨거운 청춘의 열기는 어디에도 없다. 정사각형의 책상에 똑같이 앉아 취업을 대비한다. 스펙과 영어 성적 그 자체가 일상의 의미가 된다. 취업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나이마다 부과되는 일정한 과제는 사람들을 모두 한 공장에서 찍어낸 상품처럼 완성시킨다. 지극히 똑같은 디자인과 장식으로 포장된 상품이 된다. 그리고 어김없이 진열된 상품은 외부의 기준에 의해 가치를 평가받고 선택받길 기다린다. 경쟁과 생존이 당연시된 사회에서 '나'의 가치관과 결정은 어떤 영향력도 없다. 이와 같은 삶의 지속은 결국 무지를 낳는다.

현대 사회의 사람들은 '나' 자신으로 존재하기보다 '우리'에 소속되길 바란다. 누구나 도태되거나 소외되길 원치 않는다. 소외는 결과적으로 사회적인 의미의 '죽음'이다. 그래서 사람은 각자 현대 사회에서 만들어지는 수많은 유행을 따른다. 서구 중심적인 미의 기준에 따른 외모지상주의나 문화사대주의 역시 그에 해당한다. 외부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모방 속에서 시시각각 사라져가는 '나'를 느끼기란 쉽지 않다. 현실은 빠르고 냉정하며, 진실은 쉬이 맞닥뜨리기 어려울 만큼 두렵다. 그렇다면 무대 위에서 사회에 육체와 정신 모두 매몰되어가는 '나'를 발견한다면 어떨까?

연극 <만주전선>은 극단 골목길의 대표이자 국내 대표 연극 연출가 박근형의 신작이다. 일제 치하의 1940년대 만주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중심인물은 총 여섯 명의 남녀이다. 만주국 육군사관학교를 당당히 졸업한 아스카와 만주 병원에서 일을 하는 기무라, 일제의 제도와 만주를 찬양하는 시를 쓰는 시인 가네다. 많은 이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치고자 하는 전도사 나오미. 일본인 남자와 연애하는 공무원 요시에. 가수를 꿈꾸는 어린 게이코. 모두 각자의 이상과 꿈을 가진 젊은 주인공들은 늘 조선인이지만 완전한 만주인, 일본인이 되고자 한다.
창씨개명으로 바꾼 일본식 이름을 보편적으로 사용하며, 대화하는 종종 일본어를 사용한다. 그들은 동족인 조선인을 오히려 시대에 뒤떨어지고 무지몽매한 인간으로써 경멸 또는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박근형은 일제 치하 현실 속에서 시대가 추구하는 인간형이 되고자 무던히 노력하는 조선인 젊은이들의 아이러니함을 무대 위에 고스란히 펼쳤다. 주인공들의 일본과 만주에 대한 찬양을 넘어서서 과장된 일본어 사용과 일련의 행동은 관객을 실소케 한다. 박근형은 좁은 무대 위 일상적 공간을 구현하여 사실적이면서도 몰입도가 높은 극을 완성하였다. 커다란 탁자 위에서 서로의 사랑과 우정, 시대적 과제를 열 띠게 이야기하는 그들의 모습은 지금 현대인과 다를 바 없다. 처음엔 그저 웃기 바빴던 관객조차 점차 극에 몰입할수록 지극히 가슴을 누르는 불편함을 감지하게 된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기보다 그저 시대에 자신을 맞춰 일본에 완벽히 동화되길 원하고 조선인 비적(독립운동가) 등을 비판하는 그들의 모습 역시 점점 정체성을 상실해가는 현대인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물론 극중 젊은이들 역시 나름의 생존을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 그들조차도 극중 만주 생활에 안정을 느끼는 한편 조선에 두고 온 가족과 꿈을 그린다. 본래 꿈꾸었던 일상과 감정을 떠올리며 그 속에서 진정한 '나'를 찾으며 갈등한다. 이와 같은 모습은 극과 무대 밖 시공간적 배경을 뛰어넘어 관객의 마음을 서늘케 한다. 극의 전개는 처음부터 예측 가능한 선에서 머무르지만 주제의식은 깊이 있으면서도 뚜렷하게 전달된다. 

최근 사회는 개인의 '창의성'과 '개성'을 존중한다고 말하지만 실질적으로 여전히 그들 나름의 기준을 내세워 개인을 재단하고 구분한다. 결국 경직된 사회 구조 안에서 완전히 자유로이 '나'의 가치관을 드러내기 힘들다. 그러나 힘들다고 하여 그저 시대와 사회에 자신을 끼워 맞춘다면 그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오히려 여느 사람들과 동일한 패턴의 행동과 사고를 가진다면 선택 받을 수 있을까. 천편일륜적인 면이 더욱 소외를 만들 수 있다.

분명 사회는 쉬이 변하지 않는다. <만주전선>의 극중 현실 역시 끝까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갈등 과정 속에서 새로이 다시금 주인공들이 사회에 편승하도록 한다. 그리고 필자 역시 무조건적으로 현대 사회의 기준과 유행을 타파하길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사회에서조차 진정 선택받고자 한다면, 보다 능동적으로 '나'를 돌아보고 완성해야 한다. 상대의 신뢰감을 얻을 수 있을 만큼 사회에 대해 정확히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나'만의 독자적인 가치관과 삶을 디자인할 때, 반대편에서도 자연스럽게 인정과 선택의 손을 내밀지 않을까?

연극은 시대의 거울로서 현실 사회와 인물을 깊숙이 조명한다. 한편 대중에게 또 다른 반성과 위로의 시간을 제공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그대에게. 당신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여느 때처럼 연극이 오늘날 쉬이 삶에 지치는 개개인에게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거울이자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또 다른 '나'로 대중 곁에 머무르길 바란다. 

■ 글쓴이 김누리는?
'씨즈온' 문화 전문기자다. 연극을 집중 취재하고 있다. 따뜻한 감성의 큰 흐름 속에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예리함으로 연극계를 조명하고 있다. kimnuri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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