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 이유정 기자의 '따뜻한 영화 비평' _ (8) <그녀> - 당신을 만질 수 있다면
[문화 칼럼] 이유정 기자의 '따뜻한 영화 비평' _ (8) <그녀> - 당신을 만질 수 있다면
  • 이유정 칼럼니스트
  • 승인 2014.06.19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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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정 칼럼니스트
사랑, 인간을 비롯하여 모든 생물에게 꼭 필요한 감정이다. 사랑을 하는 존재는 서로와의 교감을 통해 새로운 행복감을 맛보게 된다. 그렇다면 사랑은 꼭 같은 개체끼리만 할 수 있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자신의 애완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도 있으며, 때로는 자신의 집이나 가방, 신발 등을 사랑한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지난 5월 국내 개봉한 영화 <그녀>도 마찬가지다. 영화의 주인공인 '테오도르'는 자신의 컴퓨터를 사랑한다. 찌든 일상 속에 지쳐가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인공지능 운영체제인 OS1을 사용하게 된다. 자신을 '사만다'라고 지칭하는 운영체제는 테오도르의 비서처럼, 친구처럼, 때로는 애인처럼 그의 모든 것을 걱정해준다. 부인과의 이혼 소송을 준비 중이던 테오도르는 아직 다른 사람을 사귈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이내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다. 인간인 남자와 목소리뿐인 컴퓨터 여자, 그들의 사랑은 영화 속에서도 밖에서도 쉬이 이해하기 힘든 설정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관계가 시사하는 점은 분명 있다.

영화는 모든 것이 기계화, 자동화된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두 손가락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미래에는 목소리만을 필요로 한다. 기계에 음성명령을 내리면 모든 작업을 기계가 해주는 것이다. 그러한 탓에 사람들은 서로 소통하지 않는다. 이어폰을 꼽고 모두들 자신의 기계와 대화하기 바쁘다. <그녀>에서 그리는 인간 사회에서는 인간에게 필수적 요소인 '사랑'이 결여되어 있다.

굳이 미래의 모습까지 생각해볼 필요는 없다. 당장 현재에도 인간적인 유대와 서로 간의 사랑은 부족하다. 과거에 비해 인정이 메말랐다는 것은 이미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애정결핍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도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인터넷에서는 애정결핍 자가진단 문항이 어디에나 도배되어 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을 애정결핍, 그러나 그것은 생각보다 큰 문제를 불러온다. 애정결핍은 조울증, 우울증과 같은 증세를 보이기도 하며 경우에 따라 폭력성을 띠기도 한다. 최근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일베' 역시 성장과정에서 애정결핍을 겪었을 것이라는 분석결과가 있다. 이쯤되면 인간에게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영화로 돌아오자. 테오도르처럼 인간이 아닌 운영체제를 사랑하는 것이 가능할까? 처음 영화의 설정을 접한 관객들은 실소를 터뜨릴지 모른다. "운영체제를 사랑한다고?"라며 의아해할 수도 있다. 필자 역시 영화의 설정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영화 내에서 그려지는 운영체제 사만다는 인간 그 자체다. 생각하고 느끼고 진화하며 인간과 교류한다. 특히나 인간 간의 정이 메말라 있는 환경에서라면 사만다를 사랑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게 가능하다. 영화에서도 테오도르에게는 "노트북이나 사랑하는 정신 나간 남자!"라는 비난이 따르지만 그 속에서도 그는 행복해 보인다. "당신을 만질 수만 있다면…"이라며 사만다에게 사랑을 속삭이는 그가 애절하면서도 아름다워 보인다.

시간이 지날수록 편해지는 현대이지만 우리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를 간과하고 있다. 인간(人)은 혼자 살 수 없고 서로 기대어 살아야 하는 존재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봐도 기댈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사랑하고 사랑 받을 사람이 없어서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진 테오도르, '편리성'만 추구하다 '편안함'을 잃어버린 사회. 영화 <그녀>는 단순히 기계와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애정결핍으로 물든 사회에 대한 '옐로우 카드'가 아닐까.

■ 글쓴이 이유정은?
'씨즈온' 문화 전문기자다. 스크린의 마력에 푹 빠진 영화 마니아다. 대본에서 삶의 애환을 찾고, 액션에서 인생의 희열을 캐내고 있다. 그녀의 유려한 필체는 보는 영화를 읽는 영화로도 승화시킨다. yjlee12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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